거의 모든 시작은 우연이지만 필연적으로
평소 하지 않던 상점 셔터 물청소를 하고 점심 약속을 잡고 자리에 앉아있을 때였다. 오른쪽 목이 따끔한 느낌이 들더니 슬슬 간지럽다.
"뭐가 물었나?"
슥슥 문지를수록 간지럽고도 따끔한 느낌이 커진다.
"이거, 개미네. 개미한테 물렸네."
화풀이로 머리를 털었더니 툭, 테이블에 날개 달린 개미 한 마리가 떨어진다.
별로 크지 않은 사이즈.
'수개미인가?'
바깥세상으로 방생하려고 날개를 집어 밖으로 나가는데 문득 의문 하나가 따라온다.
'수개미 배가 이렇게 통통한가?'
여왕개미인지도 모른다. 개미마다 크기가 워낙 다르니 작은 개미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여왕개미일 수 있다.
바로 작은 실험을 시작한다.
하늘을 향해 날려 보내는 대신 지난 주말 마감재 통으로 만든 화분에 개미를 떨어뜨리는 거다.
수개미라면 다시 날아오를 테고 여왕개미라면? 무슨 일이 이어질까.
개미는 심겨 있는 담쟁이 줄기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어느 쪽으로 갈지 고민하는 듯싶더니 이내 뿌리 쪽으로 향한다.
'정말 여왕개미?'
놀라운 장면은 그다음에 펼쳐졌다.
개미 스스로가 자신을 날개 네 장을 모두 떼어낸 것이다. 마치 탈착을 명령하는 장치라도 있는 것처럼 너무 간단히 떨어져 나온 날개가 화분 위를 굴러다녔다. 조금만 늦게 돌아봤어도 놓쳤을 장면, 여왕개미가 확실했다.
날개를 모두 떼어낸 여왕개미는 본격적으로 땅 속으로 파고들 준비를 시작했다. 파기 적당한 자리를 찾는 듯 잠시 여기저기를 짚어보다 이내 땅속을 향해 몸을 움직인다.
천천히 하지만 놀랍도록 확실하게 날개를 잃은 몸이 땅 속으로 사라져 간다.
오늘 찍은 이 사진이 여왕개미와의 마지막이 되겠지만, 부디 그의 왕국이 번성하기를.
화분인 탓에 잦은 침수와 가뭄, 먹이 부족에 시달릴지 모르지만 행운이 함께 하기를.
목을 물린 인연, 화풀이로 머리를 털어내면서 시작된 만남, 심심풀이로 해본 별 것 아닌 실험.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지만 혹시 왕국의 시작이 성공적이라면 다음 일기에서 가가개미왕국의 오늘을 중계하기로 하자.
나를 물고 땅으로 내려온 여왕의 왕국이 오래오래 이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