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책방과 이슬아 작가
난 특별히 이슬아 작가 팬이거나 한 독자는 아니다. 그저 읽는 사람이면서 책을 파는 사람이라는 자리에 앉아있을 뿐이다. 브런치 스토리 작가가 아니었다면 브런치 독서챌린지 같은 건 알지도 못하고 지나쳤을 그저 앞만 보고 읽어나가는 눈 밝은 편은 못 되는 보통의 독자인 것이다. 브런치 독서 챌린지가 끝나고 또 한참 시간이 지났다. 설날도 지나가고 아직 정신이 온전하지 못할 때 브런치 독서 챌린지 스페셜 에디션이 도착했다.
바로, 오늘.
사실 대수롭지 않게 오늘을 넘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택배를 확인하고 내용물을 하나씩 꺼내고 보니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뭔가, 이것이야말로 와야 할 곳에 왔고 받아 마땅한 사람이 받은 것이라는 생각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왜일까. 이 생각은 어디서 왔을까. 왜 오늘 떠오른단 말인가. 질문이 여럿 떠올랐다. 필연적으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무언가 쓸 필요가 생겨나는 것이다. '것이다, 것이다, 것이다'하게 되는 것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인 결과다. 나는 쓸 수밖에 없었다, 오늘 밤이 가기 전에.
어쩐지 지금은 열기가 조금 식은 듯 하지만 여전히 인기 있는 굿즈인 키링, 자석이 양쪽에 달려서 종이 한 장이나 두 장 정도를 물고 있을 정도의 자력을 지닌 책갈피, 핵심이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슬아 장편소설 『가녀장의 시대』. 키링과 자석 책갈피를 꺼낼 때까지도 뭔가를 써서 오늘을 남길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책 표지 한편에 적힌 amado books라는 영문자와 서로 예의를 차리고 손을 맞잡고 선 두 사람을 봤을 때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책을 내려주고받는 남자들, 사람인지 마네킹인지 모르지만 쇼윈도 안에서 알로하 댄스라도 추고 있는 듯한 동작을 하는 여자와 대담하게도 책장 꼭대기에 앉아 있는 치즈냥이까지 시선을 강탈하는 게 하나둘이 아니었다.
정신이 어지러울 때마다 정리하는 버릇이 있는 내게, 이 상황은 분명 정리하고 넘어가야 하는 무언가였다.
마침내 표지를 넘기고 보니 세상 나를 닮은 악필이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마치 내 목소리를 닮은 누군가를 만나 놀라듯 천천히 해독해 나가는 동안 무엇을 남기고 싶었는지 조금 분명해진 기분이었다.
인연이란 어디서 오는가. 가야 할 것, 와야 할 누군가, 얻어야 할 무엇은 틀림없이 내 손에 닿거나 내 곁을 스친다. 만약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그건 무신경했거나 마음이 변했거나 지쳐버렸기 때문이다. 간절한 것,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 무언가는 기다리는 마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이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었다. 누구 못지않게 오래 기다리는 나에게. 고도처럼 스스로도 기다리는 게 무언지 확실히 말하지 못하는 내게 기다리던 무언가 중 하나가 도착했다고.
읽기를 그치지 말아라. 생각하고 써서 남기기에 게으르지 말아라. 좋은 것은 혼자 품에 숨기지 말아라. 느낌을 두고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아라. 하고 싶은 말을 하라.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라.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다. 2026년이 되어서야 2022년에 출간된 책을 읽는 게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그런 생각들이 떠올랐다고 한다. 오늘이 가기 전에. 2026년 2월 20일 22시 4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