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성찰집

글쓰기를 가르치는 마음

브런치 스토리가 만든 인연들

by 가가책방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이제는 시작한 날이 가물가물해서 2016년인가 2015년인가 오락가락하기도 한다. 찾아보니 2015년 9월에 첫 글을 올렸고 어제 쓴 글이 발행한 글로는 777번째구나. 글 번호는 894번인걸 보니 100편 넘는 글이 10년 사이에 발행을 취소했거나 지웠다. 무슨 말을 주워 담았을까. 어떤 마음을 되돌렸을까. 분명 태반은 부끄러워서 지웠을 거였다. 격한 감정이거나 불평이나 불만들. 그때는 사실이었고 의미 있던 무언가가 나중에는 의미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묻는 이는 없겠지만 10년 동안 늘 부지런했는가, 성실하게 썼는가 하고 누가 물으면 부끄러워하면서도 그렇지 못했다고 솔직히 얘기하려고 한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따라다니거나 바쁘거나 피곤하다는 핑계를 찾아다니던 때도 많았다. 연재를 하겠다고 계획을 세우고 지키지 않은 날은 더 많았다. 처음에는 지키지 못한 약속들이 부끄러워서 쫓기듯 뭔가를 적어보기도 했다. 그런 글은 뭔가 흡족하지 않았다. 왜 쓰려고 하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하는 물음에 답이 되기엔 부족했던 것이다.


쉬었다. 쓰고 싶을 때까지, 쓰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질 때까지. 안에서 저절로 나오려는 이야기가 생겨날 때만 썼다. 한 달이나 두 달을 쉬기도 하고, 연속으로 쓰기도 하는 날이 이어졌다. 적게 읽고, 적게 썼다. 계절에 겨울이 있듯 글 쓰는 마음에도 그런 계절이 오고 가는 거라고. 봄이 오면 싹이 트고 꽃이 피듯이 글을 쓰는 마음도 회복되고,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나는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이고, 글 쓰는 시간을 몹시 행복하게 느끼는 사람이니까. 그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그럴 거라는 확신이 흔들리지 않았다.


쉬는 동안 드물게 전에 쓴 글을 다시 읽어보기도 했다. 그즈음 지웠거나 발행을 취소한 글이 제법 많다. 못써서라기보다 그때 마음들을 오래 남겨두고 싶지 않아 져서다. 대부분 글이 문제 제기 거나,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요구, 누군가를 향한 비판이나 때로는 감정 실린 비난이었다. 그건 그때는 옳았지만 지금은 스스로도 의구심을 품는 감정들이다. 지나고 나서 알게 되는 사실들, 듣게 되는 마음들, 새로 경험한 세계가 확신을 뒤흔든다.

'그건 잘 몰라서 일어난 일이야.'

옳거나 그름, 맞거나 틀림으로 나눌 수 없는 시간이 필요한 일들이 많았다.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조차 지나서 보면 부족함을 느끼듯, 글도 그랬다.


가끔 글쓰기를 강의하지만 그때마다 제일 많이 배우는 사람은 오히려 나였다. 다 쓴 글을 다시 읽으며 퇴고하듯 쓰는 마음과 글을 대하는 마음을 찬찬히 돌아보는 시간. 그 시간들은 기준으로 삼을만한 몇 가지 마음 가짐으로 남았다.


첫째는 좋은 생각을 쓰는 것이다. 지적할 수 있고, 옳고 그름을 논할 수도 있고, 비판하거나 후회하는 글을 쓸 수도 있다. 많이 썼던 소재고 가장 많이 지운 글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면 분노나 억울함, 불만을 글로 써서 남기면서 곱씹을 일이 아니다. 그런 사건, 마음들은 좋은 마음이 다 덮고 회복할 수 있기에 오히려 좋은 기억을 써두는 걸 권하는 거다.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자리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순간조차 감정보다는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 관계를 정리해 두는 데 그치는 게 낫다. 나중에 다시 읽어본 사실 관계가 추가된 정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는 여지를 남겨두는 거다. 스스로의 감정을 부정하기 싫어하는 게 사람의 마음이기에 자신에게 관대해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변하는 마음, 생각을 더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너그러워지도록.


둘째는 길이나 완성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길게 써야 한다거나, 어느 정도는 분량을 채워야 한다는 마음은 목표로 삼을 수는 있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완성된 글만이 의미를 갖는다는 생각도 의문이다. 어떤 글은 완성에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 심지어 작가들도 그런 일이 흔하다고 하는데 우리들이 다를까.


셋째는 너그러워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글에 너그러워지고 자신이 쓴 글에도 너그러워지는 게 좋다. 좋은 작가가 반드시 좋은 독자는 아닐 수 있지만 좋은 독자는 거의 틀림없이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작가의 마음으로 읽고,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 글에서 좋은 생각을 떠올리는 친절하고 마음 고운 사람들. 이들은 틀림없이 좋은 독자다. 자기 글의 제1 독자는 당연히 자기 자신. 스스로에게 좋은 독자가 되어줄 수 있다면, 너그럽게 자신을 대할 수 있다면 세상이 더 열려 보일 테니.


넷째는 계속 쓰는 것이다. 쓸 수 있을 때, 쓰고 싶을 때, 좋은 걸 보고, 좋은 마음과 만났을 때. 드물더라도 그치지 않고 계속 써나가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연말이고, 새해고 어느 때보다 바쁘고 마음이 분주한 날을 보내고 있겠지 싶다. 그럼에도 잠시 시간을 내주기를 부탁하고 싶다. 마음이 쉬는 시간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간신히 문장 하나 혹은 단어 한두 개를 떠올릴 수 있다고 해도 충분하다. 그 별 것 아닌 한 문장이나 한두 단어가 당신의 오늘, 지금을 기억하고 응원할 것이다. 참 애썼다. 대단히 훌륭하다. 잘하고 있다. 그런 흔한 말도 부족함이 없다.


서부경이 쓴 글.jpg 이제 한글을 배우는 아이의 글_의미 없다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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