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희태 Mar 17. 2021

ABANDON SHIP - 퇴선(退船)

선박을 포기하는 것

퇴선 훈련 중 구명정을 갑판 라인까지 내려 놓아준 모습


지난 11일, 남위 27도 34.3분 동경 044도 13.6도 위치에서 도움을 요청했던 조난선인 SANAGA호는 결국 구조하러 간 배에 의해 26명의 전 선원이 옮겨지고 그냥 포기된 채 버려진 모양이다. 그런 무동력, 무인 상태로 물 위에 떠 있게 된 사나가호는 이제 떠 있는 동안에는 커다란 항해 장애물로 변하여 그 주변 해역을 항해하는 모든 선박들에게 특별히 주의하여 항행하라는 항행경보를 날려주게 만드는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배로 물이 새어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은 철판으로 둘러싸서 물 위에 뜨게 만들어 놓은 배를 마치 미세한 쇳조각이지만 결코 물 위에 뜰 수 없는 바늘과 같이 만드는 일이다. 사실 철판끼리 꼼꼼히 용접하여 가둬 놓은 부력에 의해 물에 뜨도록 설계된 배인 데, 물의 침투가 철판을 뚫고 들어와 마지막 내수 위에 다다르면 배는 부력을 잃어 순식간에 침몰하는 바늘 같은 신세되어 물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랬기에 배를 떠 있게 만들려고 배 안의 모든 펌프를 총동원하여 침수 량을 열심히 퍼내어 배출시켰을 것이다. 아깝게도 그 배출량이 계속 새어드는 침수 량을 이겨내지를 못하였으므로, 결국 배를 포기하고 퇴선을 결행하게 된 모양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가라앉지 못하고 물 위에 떠 있어 ABANDON SHIP을 결행하고 났을 때 제일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빨리 침몰하여 주는 것이 자신들이 배를 포기한 결정이 옳았다는 무엇보다도 확실한 증거가 되는데, 계속 떠 있으면 왜 빨리 배를 포기했는가에 의심이 맞춰지어 일종의 보험사기를 위한 행동이 아니었나? 등의 조사도 받을 수 있겠다. 그렇다고 마지막까지 시간을 벌어 보려고 우물쭈물하다가는 순식간에 찾아드는 침몰의 순간에 모든 선원의 목숨을 잃게 할 수도 있으니, 선장은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배의 포기에 대해 고심하고 결단하는 어려울 수밖에 없는 숙명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예전에는 많은 선장들이 ABANDON SHIP의 경우 아예 배와 운명을 함께 하는 길을 택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배를 살려 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면, 사람들이나마 무사히 살려내야 하는 큰 의무를 위해 근래의 선장은 끝까지 살아서 선원 구출의 이행과 함께 퇴선에 참가하고 있다. 사실 몸 담고 있던 자신의 배를 포기하여 일순간에 물에 빠져들도록 내버려 둔 채 배를 떠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경험하지 않아도 좋을 비극이다. 그 배의 선장은 잘 판단하여 행동했을 것으로 믿으며, 이제는 그 배로 인한 어떠한 해상오염 사고나 충돌 사고 같은 제2의 사고로 이어지지 않고, 그 배가 그대로 물속으로 사라져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아울러 그 배의 선원들을 모두 안전하게 옮겨 싣고 항해하는 구조선의 노고에 고마운 마음의 찬사를 보낸다. 사실 대양에서 구조 가능한 선박이 가까이 있는 일은 의외로 드문 편이며 아마도, 구조신호를 받고 상당한 거리를 달려오는 수고를 감내하였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업용 면장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