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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r 15. 2021

작업용 면장갑

소모 선용품의 공정한 선내 배분 방법

  포항에서 수급한 금년도 상반기 선용품을 정리하는데 면장갑을 부서별로 나누어 받는 문제로 갑판부와 기관부 간에 약간의 의견 충돌이 있었던 모양이다. 


  기관부에선 자신들이 기름 작업등 면장갑을 많이 사용해야 하는 일을 하니 자신들에게 많이 배정해 줄 것을 요청하는 분위기이고, 갑판부는 지난해 하반기 선용품 수급할 때에, 자신들은 면장갑 수급 총량의 30% 밖에 받지 못하였기에, 모자라는 것은 기관부에서 한번 쓰고 버린 기름때가 낀 면장갑을 주어다 빨아 쓰는 일까지도 했는데, 이번에 또 지난번 같은 식의 분배는 너무 한 것이 아니냐는 서로가 자신들의 입장만을 앞세워 주장하는 걸 굽히지 않고 있다. 


  서로가 일을 잘하려고 해서 생긴 일이지만 결과적으론 상대방 측 감정을 자극하여 인화를 깰 수도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 게 문제이다. 


   이런 일이 생기는 근본적인 이유는 회사가 면장갑을 착용하고 작업하는 것을 금하려는 의도 때문에 생긴 것이다. 


   선반 작업, 기관의 분해 조립 작업 과정, 기타 면 장갑을 끼고 작업하다 장갑이 기계에 끌려들어 미쳐 벗어내지 못한 장갑 때문에 손가락이나 손이 같이 끌려 들어가 다치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런 작업을 할 때에는 장갑을 착용치 말고 작업하라는 안전 지시가 벌써부터 나와 있다. 


   그렇기에 면장갑 청구는 공식적으론 받아지지 않으나 관행으로 지금껏 사용하던 양을 최소로 줄여가며 필요 최소량만 보급해주기에 이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껏 면장갑 사용에 길들여진 선원들은 예전의 패턴대로 사용하려는 무의식적인 행동에 빠져있어 선용품을 수급하여, 면장갑 배분 때 마다 약간의 얼굴 붉힘 같은 마찰을 생기게 한다. 

작업용 면장갑. 가는 국가에 따라서 많은 부두 노동자들도 달라고 할 정도로 베스트셀러...

  그러다 보니 항구에서 선용품 수급 작업을 할 때 각부의 당직자들은 서로 자신들의 관할 창고에 수급한 선용 품을 보관토록 하여 미리 챙기는 경쟁 아닌 경쟁도 벌리고 있다. 


  이번 수급 때는 지난해 하반기 수급 시에 면장갑을 적게 받았던 갑판부에서 선수를 쳐서 자신들의 창고에 넣어두었다가 50대 50 패턴으로 기관부와 나누려 했고, 이에 대해 기관부에서는 자신들에게 할당된 양이 적다는 불만을 일항사를 통하여 해온 모양이다. 


  계속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된다면 선용품을 수급할 때마다 언제나 같은 불평과 불만을 갖게 하여 쓸데없는 논쟁이나 인화를 해치는 감정적인 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니, 어차피 한 번은 이 일을 집고 넘어가 확실하게 그 해법을 만들어 양측 모두의 불만을 해소시켜 인화에 차질이 안 생기게 하는 게 내게 할 일로 남겨졌다. 

 

다음 주, 안전품질 회의에서 이에 대한 프리토킹을 유도하여 내 주장만 옳다고 우기는 일은 아예 하지 말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현실을 파악하여 가장 걸맞은 방안으로 이 문제를 해결토록 강구할 작정을 세워본다. 


  먼저 이런 불만이나 불평이 생기는 것은 궁극적으론 배의 일을 잘하기 위해서인 점을 감안하면 각 부서에서는 서로 일을 많이 하겠다고 경쟁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그런 좋은 다툼이 선의의 경쟁이 안 되고 때로는 감정을 상하게 하는 싸움(?)으로까지 되는 이유는 우리가 간과하고 넘기기 쉬운 <끼리끼리 이기주의>가 그 안에 내포된 때문인 것 같다. 

Daywork 중 휴식시간. 많은 선원들이 험한 작업 시에는 일부러 오래된 옷을 입는 것으로 스스로 물자를 절약한다.

  전체적인 배를 생각지 않고 무슨 부, 무슨 팀, 하는 식으로 너무 분할하는 것은 20여 명이 타는 작은 배 안에서 일의 능률을 위해 분담시켜놓은 부서를 마치 끼리끼리 똘똘 뭉쳐라, 다른 부서는 일단 배척의 대상이다. 하는 식의 바람직하지 않은 충동적인 편협된 동료 의식만 키우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부서를 나누어 생각하더라도 상대방이나,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자신의 입장도 충분히 설명하는 그런 분위기의 선내 생활을 만들 수 있다면, 이 또한 해결의 실마리를 주는 방안이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작게 나눈 외톨이로 동료를 대하기보다는, 넓게 함께하는 동료로서 우리를 보며 더하여 우리 배, 우리 회사, 나아가서는 해운계, 그리고 우리나라를 생각하는 넓은 동료의식으로 서로를 보며 존중할 수 있을 때 작은 다툼도 없어질 것이라 믿는다. 


  이런 갈등이 모두 더 크게 자라기 위한 과정 속의 한 계단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함께>라는 명제가 귀찮은 일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명쾌하게 해결해주는 실마리도 준다는 점을 믿기로 한다. 


①청구서를 작성할 시점에 각부에서 필요한 면장갑의 최소량을 미리 산출하여 청구서를 작성하고 

②회사에서 조정하여 보급해준 양을 청구 비율로 공평하게 나누어서 분배할 것이며 

③사람들이 바뀌더라도 그러한 합의 사항을 인계시켜서 새로 온 사람이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④회사가 면장갑의 사용을 될수록 지양시키려는 의도를 충분히 감안하여 그런 작업을 할 때에는 장갑 착용을 스스로 자제하도록 할 것이며 

⑤면 장갑뿐만 아니라 각 부서에서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소모품의 수급은 청구서 작성 시점에 내부적으로 부서별 양을 정해서 수급 시 쓸데없는 불만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 


  배에서는 이런 약속 하에 청구하고, 회사는 그에 준하여 보급해 준다면, 사람들이 교대하거나 형편이 바뀔 경우 등에도 궁극적으로는 다시 대화로서 새로운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선내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그런 더불어 사는 아량이 우리에게는 꼭 필요하다. 


  기승(氣勝)을 부리던 바람과 파도가 언제 내가 그랬느냐는 얼굴로 변하여 조용해졌고, 태양도 구름을 뚫고 얼굴을 내미니, 기온도 알맞게 오르기 시작하는 남쪽의 바다에 들어섰음을 알겠다.


  그렇게 겨울이 우리 앞에서 사라져 버린 것 같이, 면장갑으로 인해 붉혔던 얼굴도 어느덧 우리 선원들 사이에서 사라져 줄 것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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