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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재성 Dec 05. 2019

CJK에서 생긴 일

중국의 바다에서 만난 남과 북의 사람들

배타는 사람들에게 CJK라는 지명은 중국을 오지않더라도 몇 번은 들어봤을 곳이다. 원래 장강구(長江口 CHANG JIANG KOU)인 이 곳은 양자강과 동중국해가 만나는 수역이고 상하이와 난통, 난징이 연결되고 주변에 닝보라는 대도시가 자리한 위치 탓에 전세계에서 가장 배로 붐비는 해역이기도하다.  


최근들어 북한 선박의 해외입출항이 UN의 제재로 인해 어려워지면서 유일하게 북한에 우호적인 중국이 기항을 허용한 곳이 발해만 안쪽과 이 지역이었던 탓에 연안을 다니던 북한의 내항상선들이 이곳에도 자주 출몰하곤 하는데 지난번 CJK 투묘시에도 본선 6케이블 - 주: 케이블은 1해리인 1,852m의 1/10 거리로 185.2m를 뜻함. 따라서 6케이블의 경우 1,111m로 계산됨 - 밖에 북한상선 정방호가 닻을 내렸었다.


외국을 왕래할 목적이 아닌 국내만을 오가는 내항상선들이 갑작스러운 외국기항시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이 바로 언어문제인데 - 이 부분은 우리나라의 내항상선들도 마찬가지 - 정방호 역시 이로 인해 그날 큰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애초 난통으로 향하려고 했으나 양쯔강 하구의 갑작스러운 기상악화로 투묘한 본선과 달리 정방호는 닝보를 출항하여 톈진으로 향하다가 피항을 하러 본선 옆에 자리를 잡은 것인데 조용하던 WUSONG VTS(CJK를 관할하는 중국의 VTS)에서 투묘한 선박들을 하나하나 불러 전 입항지와 목적지를 묻고 특이하게도 목적지 대리점의 전화번호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Next port of call?'
'Nantong, China!'
'Nantong agent's mobile phone number?'
이런 식으로 진행되던 질문이 본선 차례를 넘어가고 결국 정방호로 향했다.


'Next port of call?'
'천진 차이나!'


하지만 다음 질문부터 정방호는 모범답안과 다른 질문에 엇나가기 시작했다.

(주 : VTS에서는 주로 그 배의 IMO 번호나 콜 사인을 물어볼 뿐, 대리점 전화번호를 묻진 않는다.)
대리점의 휴대전화 번호를 묻는 질문에 계속 IMO number로 대답하기 시작한 것. 몇 번씩이나 IMO번호가 아니라 대리점 전화번호를 불러달라는 VTS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이기 시작했고 그걸 VHF로 듣고 있는 나도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저기요! 차항지 대리점 전화번호 불러달라는 얘기입니다. IMO번호 말구요. 대리점 전화번호 불러주세요.'


내 참견에도 여전히 버벅거리자 참다못한 다른 북한 선박에서도 중계방송을 시작했다.


'고조 동무! 대리점 전화번호 불러주라요!'


그제야 말을 이해한 정방호. 무사히 대리점 전화번호를 불러주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난 후.


'남조선 동무래, 고맙소.'


정방호인지, 아니면 그들에게 다시 설명해준 북한 선박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맙다는 인사가 내게 날아들었다.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는 하지만 같은 언어를 쓰는 동포들에게 공치사를 받고나니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직도 북녘에 남아계신 큰할아버지와 작은 할아버지 생각도 나고....


그냥 중국 앞 바다에서 벌어진 짧은 해프닝이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좀 길게 남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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