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희태 May 13. 2021

Kingdom Of Heaven

예루살렘에 가다

수에즈운하를 통과하여 허위단심 찾아 온 이스라엘 아쉬켈론 항은 해군을 앞세워 보안에 대한 철저한 심사를 하고도 목적항에 들어가 투묘대기 하는 게 아니라 50마일 이상 떨어진 수심 1,000미터가 넘는 외해에서 기다리라고 안내한다. 그렇게 외해에서 기다리다가 조류와 파도에 밀리게 되면 다시 엔진을 써서 먼저 있던 자리 부근으로 움직이는 일을 되풀이 하다가 만 닷새 만에 내항으로 들어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새벽의 여명을 뚫고 내항 쪽으로 들어서니 때가 성탄절 시즌이라 예수님 탄생을 찾아 가던 동박 박사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동녘은 붉은 기를 머금고 우리 배 입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싣고 온 석탄을 사용하려는 화력발전소의 높다란 굴뚝이 연기를 뿜어 하늘을 찌르며 기다리고 있다.

저만큼 우리 배가 들어갈 자리의 부두에 접안하고 있는 붉은 색 배는 십여 년 전 거제도 S 중공업 조선소에서 신조 인수선으로 인연을 맺었던 오션뱅가드호 이다. 그 배가 내일 작업이 끝나고 출항하면 우리는 그 자리에 들어갈 것이다.

불어 오는 바람에 따라 뿜어내는 연기로 갖가지 그림을 하늘에 수놓는 발전소 굴뚝 옆 구름 사이에 태양과 함께 또 다른 빛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한국의 현대건설이 만들어 냈다는 돌핀형 부두에 접안을 한 우리 배의 모습.

아쉬케론 항구에서 약 100km 정도 떨어져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 달리던 차창 밖에 서있던 도로 표지판. 히브리어와 아랍어, 영어로 쓰여있었다.

JAFFA GATE(YAFFO)에 잇닿아 있는 DAVIT’S TOWER(다윗의 탑) 모습. 이제야 성지를 찾았다는 느낌이 다가왔다.

DAVIT STREET(SUQ EL BAZAR)로 들어서는 골목길 입구

예수님이 처음으로 넘어지신 곳. 엘 와드 거리에 있는 폴란드계 교회 입구 위 조각. 십자가 아래에서 쓰러지시는 예수님을 묘사한 사데우스 시엘린스키의 작품.

비탄의 성모 마리아. 아르메니안 가톨릭교회는 이곳을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만나신 장소로 기록하고 있다.

키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진 곳. 골고다로 올라가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예수님의 손자국이 남아있다는 돌판에 내 손을 대 보는 심정은...

베로니카가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린 곳. 십자가의 길 14처에서 6처에 해당한다.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신 곳.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신 곳. 이곳을 확인하며 살피려는 순례자들에게 자신의 상품을 악착같이 팔아보려는 상인이 전시하고 있는 물건으로 벽의 한 부분이 가려저 있다.

예수님께서 옷 벗김을 당하신 곳.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곳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거두어 지신 장소. 많은 순례자들이 그곳에서 기도하고 묵상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신 곳. 기독교계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성 세풀커 교회 아래의 주된 원형 건축물 중앙에 있다. 신성한 바위는 대리석으로 덮혀 있고 그 위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묘사하는 그림이 있다.

성 세풀커 바실리카 교회 10처에서 14처까지 품고 있는 교회의 천정부분의 모습

리소스트로트(Lithostrotos) 돌길(The Stone Pavement)시온의 수녀원 바로 밑의 커다란 돌길은 시대를 거슬러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의 특징을 나타내며 2세기경 예루살렘에 있었던 Aelia Capitolina의 공회소였다.

헤롯왕이 46년간 건축한 제 2성전 서쪽 벽인 통곡의 벽(הַכֹּתֶל הַמַּעֲרָבִ, Wailing Wall)

폭 60m, 높이 18m의 이 벽은 헤롯왕이 BC 20년부터 46년간 건축한 제 2성전의 서쪽 벽에 해당되는 곳이다.  AD 70년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해 성전과 성벽이 파괴 될 때 이 성전 벽이 일부 남았다고 한다. 이 벽을 남겨둔 이유는 후세 사람들에게 로마 제국의 위대한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로마는 유대인의 성전 출입을 금했으나 성전 파괴 일에 예루살렘에 들어 올 수 있도록 허가 해 주어서 유대인들이 이 벽 근처에 모여 슬퍼하며 통곡했다고 하여 "통곡의 벽"이 되었다. 이후 이슬람교의 오마르 왕이 유대인들이 이곳에서 기도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이곳은 요르단 땅이었는데, 1967년 6일 전쟁 당시, 요르단 강 서안을 점령할 때 격렬한 전투를 하여 이스라엘이 수복한 땅이다. 유대교식 정장을 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사진 촬영을 금하고 있었다.

성지 주변의 상점들. 엄청난 바가지 요금으로 손님을 대하고 있어, 부르는 값의 절반 정도에 사는 게 적정 가격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배가 고파서 그랬을까? 사먹은 빵은 아주 맛이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Hazira, India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