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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은 제대로 지켜야 규칙이다

만들어 놓고 사용 안 하는 규칙은 그 자체가 위반사항이다.

by 전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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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양을 보면서도 참견을 안 하고 못 본체 하고 있으려니까, 순간순간 욱하니 치미는 홧증을 식사 내도록 참느라고 애도 참 많이 썼다. 이번 항차 내려오면서 모두가 있던 점심 식사 자리에 오늘과 같은 복장 모습을 보고 앞으로 식사시간에는 기름때가 시꺼먼 작업복을 입고는 식탁에 오지 말라고 분명히 말을 했었다.


배까지 세우고 실시하는 보일러 작업이 힘들고 바빴음을 핑계 삼음일까? 2 기사가 그야말로 방금 작업장에서 올라온 시꺼멓게 찌든 작업복 차림으로 식탁에 들어선 것이다.

같이 온 실기사도 그보다야 좀 낫지만 역시 더럽혀진 작업복 차림이었고 일기사만이 좀 깨끗한 작업복으로 나타나서 식탁에 앉는다.


어제 세탁장에서 만났던 일기사가 보여줬던 당시 행동이 문득 떠오르며, 그때 잠깐 보여줬던 사고방식이 결국 이런 일을 만들어 내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란 깨달음이 퍼뜩 들어선다.

기름 때로 찌든 더러운 작업복을 일반 세탁물과 같은 세탁기로 사용하여 빨래를 할 경우, 자칫하면 깨끗해야 할 일반 빨래가 마구 사용한 세탁기의 오염으로 인해 색깔을 더럽히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곤 했었다.

따라서 모든 작업복은 지정한 세탁기 만을 사용하고 다른 세탁기 사용은 금하는 방안을 택하여 선내 생활을 하도록 정하여(룰의 개정) 실행해 오고 있다.


일기사는 작업복 빨래일지라도 작업복 세탁기에서 초벌로 깨끗이 세탁을 한 후엔 일반 세탁기로 옮겨서 한 번 더 세탁을 하는 것은 괜찮은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표출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바로 더러운 작업복 착용으로 식탁에 오는 것을 금하는 선내 규정에 슬그머니 위반하는 예외의 규정을 만들게 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여 결과적으로 더럽혀진 작업복으로도 태연히 식탁에 나타날 수 있는 경우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아예 하면 안 된다고 규정을 세웠으면(법을 만들었으면) 무조건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이지, 이 정도는 괜찮다는 자기류의 생각을 가미하여 행동함은 그 규정이나 법의 존재를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일로 슬그머니 변질되는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편하자고 규정이나 룰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그런 풍토가 점점 깊게 조성되면 규정이나 룰을 무시하는 경향 역시 불어나서 주위 사람들에게 준법정신을 해이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제공되는 것이니, 그런 규정이나 룰은 아예 처음부터 없거나 정해지지 않았던 것이 훨씬 나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 세탁기에는 작업복을 빨지 말자고 정했으면 그대로 따를 것이지, 자신의 판단으로 심하게 더럽혀진 상태의 작업복이 아니라고 여기며, 세탁기에 넣는 것 역시 근본적으론 안 되는 일이다.

또 작업복을 입고 식탁에 오지 말라고 되어 있으면 작업복을 입은 채 식탁에 오는 것은 피해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우리 배가 좀 낡은 배라서 기관부에 너무나 많은 작업이 있어 일에 찌들고 힘들어하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공통의 룰을 그들의 편의를 위해 구부리어 규정을 어기며 그냥 넘긴다는 것은 어찌 보면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 사고방식의 결정체라 여길 수가 있는 것이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우리의 주위를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통로를 쓸어내고 왁스칠을 해 놓는 작업이 한참인 마당에 그들은 시꺼먼 작업복에 작업화를 신은 채로 그 자리를 통과하여 식탁에 나타난 것이다.

이런 의식은 자신의 힘듬이나 편함만을 피하거나 추구하기 위해, 주위 동료들 입장은 생각지도 않는 이기주의의 극치를 달리는 소산이라 아니할 수 없다.


깨끗이 청소해 놓은 통로의 벽면이나 통로 자체에 청소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꺼멓게 기름 손자국이나 때를 먹이는 일을 발견했을 때 느끼던 허탈감.

그들이 한 짓이라 짐작은 하면서도 현장을 못 보았다는 이유로 욕은 못하고, 그래서 열심히 청소하고 닦아내는 사람들이 그럴 때마다 하는 푸념으로,

-누구는 청소만 하고 누구는 더럽히는 일만을 하는 사람으로 세상 따로 나왔느냐-고 입술 삐쭉이는 불만을 듣게 하는 대상이 바로 그들이라고 비난받게 되며 그것이 선내 분위기를 흐리게 하는 가장 첫걸음이라는 사실에 그들도 동의 안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음번 소집될 안품회의에서는 이 이야기를 할 때에는 예외를 두는 규칙을 없애기 위해서도 앞으로 작업복 차림으로 식탁에 안 오는 것은 물론 작업복의 세탁은 작업복 세탁기만을 사용토록 다시 한번 더 고집스레 이야기를 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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