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회를 먹었는데
그제 한 밤중. 그러니까 밤 열두 시가 다 되어서였으니 결국 어제 새벽인 셈이지만, 이곳에서 낚시로 잡은 물고기들 중 도미와 비슷하게 생긴 놈 한 마리를 골라내어 생선회로 뜬것을 나더러 먹으라고 특별히 생각하여 조리장이 갖다 준 작은 회 접시 하나가 있었다.
그래도 배에서는 제일 웃어른인 선장이라고 성의껏 차려다 준 것이기에 매정하게 물리칠 수가 없어 그냥 잘 자리에 들려던 중 다시 일어나서 몇 점 집어먹고 침대로 들었었다.
고기의 부드러움이나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어딘가 기분에 좀 미심쩍고 께름칙한 생각을 잠시 품으며 먹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별 이상이 없었는데 오후부터 속이 편치 않더니 설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어려움이야 없겠지 하는 조심하는 마음이긴 했지만, 그래도 세끼니 식사는 다 찾아 먹었고, 밤이 되어 맞이했던 잠자리에 들기 전 한번 더 변소를 다녀왔었다.
새벽에 속이 좋지 않은 느낌에 좀 일찍 깨고 보니 꾸르륵거리는 뱃속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얼른 변소를 찾아드니 사정없이 쏟아 내리는 데 물이 거의 전부인 변이고 나중의 한참은 가스까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나온다.
그 북새통에 잠까지 달아났는데, 은근히 드는 걱정이 하나 있었다.
예전에 캐나다에서 이번 일 같이 배에서 낚시로 잡은 광어를 회로 만들어 먹은 후, 멈출 수 없을 정도의 설사를 만나 한번 혼이 난 적이 생각난 것이다. 결국 병원 신세를 지고 난 후에야 멈추었던 일이 새삼 걱정스레 떠오른 것이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 2 항사가 정박 당직을 서고 있을 시간이니 그에게 지사제라도 얻어먹으려고 브리지로 전화를 걸었는데 수화기 들려지는 소리가 안 난다.
현재 바람이 세어진 것은 아니지만 나빠지리라는 예상까지 감안해가며 열심히 당직을 서야 할 친구가 그 자리에 없다는 것은 작은 일 같지만 중대한 정박 당직 결함 사항일 수가 있다.
현재 우리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승조원은 그를 믿고 편하게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한데 그가 당직서는 자리를 이탈한 상황 하에서 돌발적인 무슨 일이라도 발생한다면, 그래서 제때에 대응조처를 취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체된다면,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을 아예 심중에 두지 않고 의무를 소홀히 하는 당직 태도인 것이다.
방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역시 받지 않는다.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올라 밖으로 나가서 찾아보려다가, 서둘러 발길을 방으로 되돌려 들어왔다. 속이 좋지 않은 것이다.
화장실에 들렸다가 나오는데 전화벨이 울리다가 끊어진다. 브리지로 올라갔다. 2 항사가 방금 전화를 걸었다가 끊고 있다. 잠을 자거나 딴짓을 한 게 아니고 그저 제방에 좀 내려가 있었다가 온 것인데 하는 태도이지만 매우 어설프게 보이는 표정이다.
-혼자 당직을 서려니까 무서워?
사실 정박 중 혼자 당직을 서려면 바람이라도 부는 날은 혹시 닻이 끌리지나 않을까 조바심도 바짝 들게 되어 제법 두려운 기분이 드는 수도 있다.
-아닙니다.
황급히 부인하는 2 항사에게
-내가 설사가 나서 그러는데 지사제가 있으면 좀 구해 주렴.
당직 상태 불성실에 대해 꾸짖기보다는 그냥 무시한 체 약을 부탁했다.
이번 항차 포항을 떠나기 전까지 약국을 담당하던 3 항사에서, 출항할 때 2 항사로 진급한 친구이니 아직도 배의 약국 내의 어디에 어떤 약이 있다는 걸 꿰고 있을 것이라 믿고 청한 것이다.
-정 X환을 드릴까요?
한다.
내 방 냉장고에도 지난번 교대해줬던 선장이 쓰다 남기고 간 정 X환이 들어 있던 걸 본 기억이 나는데 그건 나 하고는 맞지 않으므로 원하는 약이 아니다.
-아니 그것 말고 로 X린으로 줘.
나도 배에서 보유하고 있는 약을 환하게 알고 있는 실력이니, 내가 처방하여 약을 타는 셈이다.
약방에 내려가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2 항사가 로 X린을 가지고 나타난다.
-한 번에 두 알씩 드시는 겁니다.
하며 열 알의 약을 건네준다.
얼른 두 알의 약을 빼어내어 냉장고에서 꺼낸 생수와 같이 빈속이긴 하지만 서둘러 삼켰다.
제발 캐나다에서 와 같은 일은 발생하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비는 마음으로 자가 치료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한 후 저녁을 들기 전쯤이 되어서는 많이 좋아진 상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굶어가며 치료에 나선 때문에, 워낙 배고픔을 느끼게 되니, 좀 나아진다 싶어 지니 미리 식당에 가서 죽을 쑤는 안에다 누룽지까지 긁어서 보태는 짓을 한 것이다.
결국 참지 못한 덕분에 커다란 냉면 그릇 하나 가득 찬 죽을 들면서 저녁 반찬으로 나온 불고기용 야채와 생 마늘 몇 쪽까지 사정없이 들고 보니 배도 부르고 위 속도 얼얼하니 느껴졌다.
아침에 혈당치가 82였고 점심 후 127이었던 당뇨 약을 들지 않은 상태에서 좋은 수치를 보여주던 숫자가 자그마치 213으로 껑충 뛰어 올라가 있다.
지금까지 중 가장 높은 기록을 하여서 약을 먹지 않고는 당뇨 조절을 할 수 없다는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결론을 확인받은 기분이다.
먹을 것을 가지고 내가 한 행동에 대한,-그래 그것도 못 참았던 거야? 하는- 연민의 정이 절로 생겨나며 스스로를 꾸짖는 기분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