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비칭(폐선 인도 ) 나흘 전, 선원 긴급 교대 이야기 나오다
22-비칭(폐선 인도 ) 나흘 전, 선원 긴급 교대 이야기 나오다
토요일.
아무 곳에서도 소식이 없어 대리점에 우선 이멜을 넣어 본선 동향 예정을 물어본다.
혹시 전화로 연락을 줄까 싶어 대리점이 빌려주고 간 전화기를 항상 들고 다닌다.
마침 전화벨이 울린다. 대리 점원이겠거니 하여,
-핼로 우!
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여보세요.
하고 한국 말이 나온다. 누군지 알고 있는 부산 지점에서 온 전화이다.
-선장님 죄송스러운 부탁 한 말씀드리려고요.
좀은 미안한 감도 품고 있는 어투의 말문으로 통화를 시작하고 있다.
-무슨 일이 예요?
우리 배의 스케줄과는 관계없는 일이란 느낌을 받으며 응대를 했다.
-예, 거기에 입항한 사선 씨. 에메랄드호가 있지요?
이곳에 짐을 부리러 이틀 전에 들어와 있는 자매선 이야기이다.
-예, 그런데요?
-그 배 2 기사가 작업하다가 손가락을 다쳤는데 치료에 12일이 걸린다네요.
-아, 그럼 2 기사 교대 때문에 그런 거여요?
대화를 다 끝내지 않아도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전화를 걸었는지 짐작이 든 것이다.
우리 배 2 기사를 그 배로 전선 보내려고 걸어온 전화인 걸 금세 눈치로 알아챈 거다.
-예, 그렇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지 않고 중도에 말을 끊었어도 상황은 전달되고 전달받은 셈이다.
운항 중인 배에서 종종 발생하는 일로서, 선원의 갑작스러운 교대가 꼭 필요해진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안전사고로 인해 같이 출항을 할 수 없게 된 그 배 2 기사는 다친 것이 억울하겠지만 갑작스러운 교대를 유발한 입장만큼은 참 딱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야말로 -청천 하늘에 벼락치기-이지 이제 집에 가서 좀 쉬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던 우리 배 2 기사야 말로 가장 큰 난처한 곤경에 빠져든 셈이다.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이야기의 중심에 서게 된 2 기사는 밤새 야간 당직을 서고 지금 한창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다.
회사의 현재 상황을 십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내 입장이 되었으니, 즉시 2 기사를 깨워서 전선(轉船) 가는 일을 될 수 있으면 동의하게끔 분위기를 이끌어 내야 하는 과제를 받아 든 셈이다.
-이 기사에게 연락해봐라.
마침 옆에 있던 당직사관인 3 항사에게 지시한다.
잠시 후 잠에서 덜 깬 푸석한 얼굴로 나타난 2 기사는 이야기를 다 듣고나더니 참 난감한 표정이다.
-지금 이 일을 못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하고 솔직한 내 의견을 묻는다. 나 역시 감당하기가 까다로운 질문이지만 그대로 내 심정을 이야기해준다.
-궁극적으론 이번 귀국한 후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생길 수 있겠지 뭐. 그러니 회사의 뜻에 한번 응해주어 앞날을 생각하는 것도 괜찮겠지 뭐...
좀은 무책임한 듯한 언급이지만 사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그리 되는 것이 이 세계의 불문율 같은 일 처리 방식으로 여겨진 그대로 대답해준다.
그러므로 내 개인적인 의견 그대로 되기가 쉽지만, 귀국 후 또 다른 배로 갈 수도 있는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직급에 따라 사람들이 부족한 경우 회사는 이런 거부에 대한 섭섭함을 묻어두고라도 다시 고용을 하는 경우가 자주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찌 회사의 곤란한 입장을 뻔히 보면서 그 일이 자신이 양보하면 해결될 수 있는데도 모른 체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내 생각을 곁들여서 해준 대답이었다. 그리고 회사에 전화를 걸어 양쪽을 이어준다.
몇 마디가 오고 간 잠시 후 2 기사가 나에게 수화기를 돌려준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좀 더 생각해서 확답을 주기로 하였다는 회사 담당자의 목소리가 받아 들은 수화기에서 흘러나온다.
오후 들어서 회사 차원의 확인을 위한 전선 동의서 서명요청이 왔을 때쯤 되어서 2 기사는 단호하게 전선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태도가 담담하지만 양보가 안 보이는 그의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회사는 지금 비상에 돌입했을 거란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지만 그러기에 다시 전선을 청해 올 것이란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카드는 우리 배의 2 기사가 전선 가는 것이 최상의 패이기 때문이다.
2기사에게 이 결정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라! 회사에서 또 연락이 올 것이란 언질을 주며 그때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를 하며 그의 뜻이 실린 동의하지 않음의 이멜을 전송하였다.
그러나 2기사가 교대자로 나서지 않는다면 차선책으로 우리 배의 3기사를 직급 변경하여 보내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갑자기 발생한 선원 교대 상황에서 우리 배가 교대 현장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인원 보충소 역할을 할 수 있는 부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기사의 전출 문제로 신경을 쓰고 있는 동안 여덟 명의 현지 경비원이 밤새우며 지키고 서 있는 본선에서 선미 갑판 바로 아래, 경 흘수로 인해 수면 상부로 드러난 선미부의 프로펠러와 타를 보호하려고 붙여 놓은 징크 아노드(아연판)를 여섯 개나 도둑놈들이 떼어갔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이런 식이라면 이들은 프로펠러도 물 위에 많이 노출이 되면 놋쇠로 보고 떼어갈 놈들이 되겠다. 찬탄과 허탈이 함께 혀를 차며 한숨을 불어내게 한다.
이렇게 강인한 삶을 살고 있으면서 방그라데시는 왜 그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지능의 발달이 잘못 들어선 경우를 보는 것 같다. 어디서부터 교육을 시켜야 하는 걸까?
또 한 번 더 방글라데시에 실망을 가지며 1970년대에 맺었던 인연과 별로 달라진 것 없는 상태로 여전히 연결돼있음을 씁쓸한 기억으로 반추한다.
그렇게 비칭 나흘 전으로 여겨지는 날이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