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본선 인도 닷새 전
21-본선 인도 닷새 전
사진 : 취사 담당의 경비원 모습. 수속 첫날 이들은 살아있는 닭을 열 마리 가까이 가지고 와 그동안 부식으로 소모하였다.
금요일.
이곳 방그라데시 에서는 공휴일로 쉬는 날이다. 대리점에서도 하루 종일 소식이 없다. 우리나라도 내일부터는 주말이 되어 연락이 안 되지 않을까? 약간은 걱정이 드는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목마른 놈 우물 판다-고 먼저 연락을 시도해 본다.
위성전화에 나온 담당자는 안 그래도 본선을 위해 알아볼 것을 챙기며 열심히 오늘을 뛴 결과를 알려주며 이멜로도 이미 통보해주는 전문을 넣었다는 대답을 해준다.
그렇게 알려주는 내용에서 최종 인도 일자를 27일 오후로 잡고 있단다. 그러나 본사의 최종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지금 닻을 내리고 있는 자리를 고수하라는 말이 덧붙여진다.
배에는 현재 우리 선원 23명 이외에 8명의 안전요원-경비원-이 더 승선해 있다. 이들은 매수자 측에서 자신들의 경비로 배치한 인원으로 이곳의 도둑들이 배를 침범하지 못하게 지켜주는 사람들이다.
생김새나 모양새로 보아서는 자그마한 체구로 보여 저런 사람들이 무슨 도둑을 막겠는가 싶지만, 도둑도 이들과 비슷한 사람들일 터이니, 그래도 이들이 있어 도둑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겠다고 믿기로 한다. 어쨌거나 그런 이들을 매도자인 우리 측에서 믿지 못하고 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어 보인다.
회사는 처음에는 이들의 승선을 2명만으로 제한하려 하면서 6명은 우리 측에서 쓰겠다는 의사를 갖고 있었든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입항 수속하는 터그보트에 같이 들어온 이들을 어쩔 수 없었는지 결국 그대로 승선시켜 근무하도록 허가한 것이 입항수속 때에 있었던 일이다.
사실 바이어 측에서 자신들의 경비로 경비원을 세우며 도둑을 지키려고 하는데, 셀러 측인 우리가 구태여 우리 돈을 들여 가면서 지켜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작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 인수할 의향을 굳히고 진행하는 과정으로 여겨지는데 이 단계쯤 되면 물건 하나 없어져도 그만큼 자신들의 손해랄 수 있는 시점이 되었으니 그들이 자신의 지출로 경비원을 쓴다는 것을 반대할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소박한 생각 때문이다
.
하여간 회사는 마지막 인도하는 순간까지 매도자의 권리를 꽉 움켜쥔 채 행사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게 일을 진행하고 있다.
아니면 너무 상대방을 믿지 못하고 있어 작은 신의와 성의를 보이며 좀 편하게 일을 진행시키기보다는 꼭 돈의 정확한 지불과 수취만이 속지 않고 이 일을 성사할 수 있다는 굳은 확신으로 행동하는 것 같다.
따라서 그동안 본선에 요청되는 지시사항을 두고 볼 때, 바이어에게 너무 빡빡하게 밀어붙이면서, 본선을 그런 상황에 맞추다 보니 무리한 운항이 요구되어 현장에서 앞장서서 일해나가는 내 입장이 참 고달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모든 사정들이 이곳에 와서 세 번이나 자리를 옮겨가며 닻을 내려야 했던 일을 만들어 낸 것이지만 그때마다 이 일이 꼭 필요한 걸까?라는 의문을 내 입장에서는 안 가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일들도 지나 놓고 보니 다 이유가 있었구먼!- 하는 정도로 이제는 뒤로 물러 서 있지만, 사실은 회사가 나한테 자세하게 알려주지 못하는 어떤 이유가 있어 그런 식으로 일을 진행했을 거라는 쪽으로 이해하려고 이미 맘을 돌려세우고 있웠던 것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기에 여기까지 별 불평 없이 따라온 것이다.
이제 마지막 비칭의 결행을 닷새 후로 두고 선원의 교대도 27일에 있을 거라는 연락을 끝으로 날이 저물어 가고 있다.
저녁에 비칭 마스터라는 사람한테서 전화가 와서 본선의 비칭의 세부 계획을 알려준 사항을 메모하였고 비칭에 참여할 모든 멤버들에게 알려준다.
1) 비칭 일시 28~29일 오후
2) 비칭 드라프트
선수 2.6미터~2.7미터, 선미 6.2미터~6.3미터 범위로 만들 것. (본선 자력으로 움직일 수 있는 최소의 흘수임)
3) 발라스트는 윙 탱크만 남겨두고 다른 탱크는 모두 비울 것.(발라스트는 동력 없이 배출 가능한 탱크만 채워둘 것)
4) 모든 항해 계기는 정상 작동시켜 둘 것.
5) 모든 해치커버는 비칭 하는 날 오전에 열어줄 것.
6) 근무인원은 총 인원 최소 10명 필요.
선교 - 선장, 당직사관, 조타수
선수 – 일항사, 앵카 요원
기관실- 기관장, 1 기사 , 전기사(2 기사 대무), 기관 당직 2명
7) 비칭 장소는 27마일 떨어진 곳이고 앵카엎(양묘)부터 반속으로 가다가 도착 45분 전부터 최대 속력으로 갈 것.
8) 비칭 컨디션 작성요. ( 2)번항 참조)
DRAFT FWD: AFT: (흘수, 선수, 선미)
탱크별 남아있는 발라스트 양 (DEAD BALLAST IF REMAIN 포함)
윙 탱크 tons
청수 tons
FO tons
DO tons
LO tons
9) PORT GANG WAY로 COMBINATION LADDER 설치요.
LADDER 각도 60-70도
수면상 0.5미터 파이로트 래더 설치 요
10) 기타 참조사항
본선 전속 전진 스피드 10노트, 앵카 올리는 시간 1시간으로 알려주었음.
비칭 마스터(Beaching Master) : CAPT. ANAM TEL 0X-7XX-7 XXXX6
그동안 우리가 두리를 넘겨주는 시점을 어떻게 구분하는 것일까? 궁금했었는데 비칭(Beaching)이란 단어로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해군에서 상륙정을 육지에 올려놓으며 상륙작전을 하듯이 폐선하는 선박을 폐선장 해안가에 얹혀주는 시점에서 600만달러가 좀 넘는 가격의 폐선이 되어 준 본선의 인도는 끝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