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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두리 호와의 인연기

20-쓰레기가 된 떼 주검들

by 전희태

20-쓰레기가 된 떼 주검들


치타공 외항 C-투묘지 구역에 닻을 내리고 본선을 폐선장에 인도해 줄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브리지 윙 데크를 맴돌며 아침 운동을 하는 데 어디선가 숨 가쁘게 들리는 육지의 풀숲에서나 들려옴직한 풀벌레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얼른 발걸음을 잠깐 멈추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눈길을 돌리어 소리의 주인공을 찾지만 눈에 뜨이지 않는다.


마침 윙 데크를 싸고 있는 벽면 사이를 본다. 지나치는 바람이 잠시 잠깐 회오리를 만들어 주는 그곳, 구석진 쪽에 스치는 눈길따라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여러 가지의 주검들이 눈길을 끈다.

제일 먼저 눈에 뜨이는 게 잠자리로, 가는 몸체가 떨어진 채 부스러져가는 모습의 주검이고, 그다음 통통한 몸매를 보이는 것은 다리 한쪽이 떨어져 나간 귀뚜라미이다.

090427 014.jpg 아마도 불빛을 보고 찾아왔겠지만

모두가 훌러덩 뒤로 젖혀진 모습으로 배를 하늘로 향한 채 꼼짝 안 하고 있건만, 잠자리만이 그 커다란 날개가 아직도 날려는 습성을 못 버렸는가 싶게 내가 지나치며 내는 바람결에 그만 빙그르르 돌아준다.


자세히 살피니 그 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의 동물-곤충-의 모습이 구석마다 숨어서 주검 되어 널브러져 있다.

실잠자리, 나방이, 베짱이, 유난히도 몸 색깔이 울긋불긋한 놈- , 통칭 부나비라 일컬어지는 녀석들, 심지어 파리까지 거들고 있는데 그 외에도 이름을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하루살이 종류의 곤충이 한데 얽히어 죽음의 함정에 참여해 있는 것 같다.


열대지방을 다니다 보면 장기간 묘박(닻을 내린 상태)하고 있을 경우 갑판 위로 바람이 휘익 지나갈 때마다 떠오르고 흩어지는 육지로부터 날아온 이들 곤충의 떼죽음 당한 모습으로 인해 마음이 좀 심란해지는 때도 있다.


지금 우리 배가 묘박하고 있는 곳도 해안선으로부터 3.1마일 떨어진 곳이니 우리들 릿수로도 약 14.4리 정도 되는 거리이다. 그 작은 날개를 가지고 어떻게 그 먼 거리를 날아오는지 하룻밤을 자고 나면 이렇게 많은 양의 주검이 흩날리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의문을 품곤 한다.


좀 전에 울음소리를 낸 녀석이 어떤 종류인지 궁금하여 가던 운동 걸음 멈추고 찬찬히 살펴본다. 아직 살아 있는 한 녀석이 구석에서 몸단장을 하듯 꾸물대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모양을 보니 귀뚜라미가 틀림없다. 우리나라 종류보다는 좀 덜 검은색이지만 윤이 나는 반지르르한 몸채는 오히려 더 커 보이는 통통한 살집을 가지고 있다.


아마 엊저녁 늦게 불빛 따라 이곳으로 날아와서 아직은 팔팔한 기운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녀석도 며칠 못 가서 제 모습 주검으로 변할 뻔한 운명을 아직은 모르고 있는 게 확실하다. 인기척에 멈칫하며 가만히 있는 녀석을 두고 다시 발걸음을 열심히 옮기는 운동을 계속한다.


포트 사이드(左舷)의 윙 데크를 그렇게 돌아 나와 이번에는 스타보드 사이드(右舷)로 들어서니 좌현보다 더 많은 수의 이들 떼주검이 보인다. 그쪽이 밤새 육지를 향하고 있었던 쪽이어서 더 많이 몰려들었던 모양이다.


비록 이미 죽은 것이고 하찮은 곤충의 몸뚱이 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번은 세상을 우리와 같이 살아온 생물인데 그렇게 죽은 것이라고 함부로 밟을 수는 없다는 마음에 발 밑 부근을 열심히 살피며 다시 걷기 시작한다.


아까 좀 어두울 때에 돌기를 시작했을 때 혹시 잘못해서 짓밟은 것은 없을까? 새삼 살피는 마음 조심스럽다.

그러고 보니 잠자리의 주검이 제일 많이 눈에 뜨인다. 그건 잠자리가 가지고 있는 날개로 인해 생긴 부작용인 모양이다.

다른 곤충이야 날개를 모두 갈무리해두고 있다가 필요할 때만 펴서 날면 되지만 잠자리는 항상 몸체에 비해 큰 날개를 펴 갖고 더불어 살아가니 어지간한 바람이 불어도 휩쓸릴 수 있는 약점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개로 이번에는 좀 쉬려고 갑판 위로 내려앉았는데 마침 그곳은 사람들이 시원하자고 만든 냉기를 가두어 둔 방의 천정이 되는 갑판인 것이다.

인공적인 냉기가 갑판 위로 전달되며 대기와 접촉하는 순간 이슬보다도 더 많은 양의 물기가 생기는데 어쩌다 날개가 그 물기에 닿게 되면 꼼짝 못 하고 붙어버려 버둥대다가 힘이 다 소진되면 죽음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거다.


어쩌다 아직 살아서 버둥대는 녀석을 보고서 그대로 들어 올려 브리지 내부로 데려다 날개를 말려 주면 어느새 날아가려고 유리창에서 푸드덕 대는 모습도 여러 번 경험한 바 있다


한낮이 되어 대기의 열기로 인해 그 물기들이 증발하고 나면 잠자리는 날개를 붙잡혔던 곤욕에서 벗어날 수는 있지만 이미 기력이 다 소진된 후인 것이다.

그렇게 날개 때문에 잠자리의 주검은 늘어나 결국 이 갑판 위에서 제일 많은 주검의 숫자를 가진 종류로 되어버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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