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비칭 이틀 전
24. 비칭 이틀 전
월요일.
처음에는 고조시의 높은 조고 차(潮高差)만 보고 비칭의 결행 하루 전으로 못 박고 날짜 셈을 하였던 날이었지만 결과적으론 바이어에게 넘긴다는 마지막 순서를 밟기 하루 전이된 셈이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양 종교가 모두 어울려 준 휴일의 퍼레이드로 인해 지난 24일부터 계속 어제까지 우리는 공휴일의 가운데 끼어서 노는 날도 되었다 일하는 날도 되었다 하며 지나다 보니 까딱하였으면 대리점의 농간에 놀아난 일도 진행할 뻔했었다.
본사나 부산지점에서는 아직 생각도 안 하고 있든 미얀마 선원들의 하선 결정이 바로 그런 일이었다. 이곳 대리점의 연락으로 하선이 당연히 회사도 알고 있는 사실로 진행되는 줄 믿고 있었는데 나중 회사에 문의하니 천만의 말씀이었다.
아 한번 더 두드려 보는 기분으로 통화를 했었는데 그걸로 어제의 선원 하선은 취소되고 내일로 넘어간 일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서 27일의 날이 밝아 왔지만 기다리고 있는 소식은 아직 없고 오늘도 힘들 것 같다는 안타까운 연락만이 전화로 전해왔다.
오늘은 이달 들어 가장 높은 조고를 가진 이틀 중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이 지나면 조고가 점점 줄어들어 비칭 실시 여부에 영향을 줄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은근히 든다.
사싷 비칭이 조고 차가 높은 날을 택하려는 이유는 그만큼 수심이 깊어있을 때를 택해 비칭을 실시하면 나중 물이 빠졌을 때에 그 조고 차가 갖는 양만큼 더 육지에 가까이 들어가서 배를 땅바닥(뻘밭)에 얹어 놓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또 하루를 이렇게 넘겨야 하는가? 이제는 체념하다시피 마음을 비우니 오히려 편안해진다. 그렇다면 이 시간만큼 더 봉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자는 생각을 가지기로 하니 편해진 것이다.
한편 이곳에 들어와 있는 사선에서 2 기사가 안전사고를 당해 급히 하선하게 되었는데 교대자를 급하게 수배할 수가 없어 우리 배의 2 기사를 데려가려던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 배 2 기사의 강력한 거부로 결국 3 기사가 대신 가기로 거의 합의가 되었다.
3 기사 역시 가고 싶은 마음은 별로이지만 친구인 2 기사의 곤란한 형편을 도와주는 역할도 겸해서 자신이 가기로 한 것이다. 그 둘은 아주 막역한 사이의 친구라고 3 기사가 말한 적이 있었다.
3 기사는 이번 우리 배에 나올 때에도 우리 배 스케줄이 회사의 이야기와 달라져서 결국 금전적인 피해까지 받게 되었는데, 그런 것도 나 몰라라 하는 회사가 섭섭하여 응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나지 않았단다.
그렇지만 주위 여건과 분위기로 봐서 누군가 그 배에 가야 그 배가 출항을 하게 되는 것이 명확한 일로 다가서니 대를 위해서 자신이 양보를 하겠다는 뜻을 갖게 된 모양이다.
이제 마음을 굳혔으니 다른 생각은 말고 전선하여 잘 지내게 될 것 만을 염두에 두고 혹시 그 배에 가서 분위기가 좋으면 연가 때까지 더 탈 수도 있으니 그런 마음 가짐으로 대처하도록 다독여주는 말을 해주었다.
-잘 알겠습니다. 타고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씩씩한 말을 남기며 3 기사는 제 방으로 돌아갔다.
이번 하선 후 집에 가면 상급 면허 시험을 보려고 작정했던 계획을 한 달 정도 더 뒤로 미루어야 하는 참으로 힘든 결정을 그가 해준 것을 회사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그건 알아주기를 바라기보다는 알아주도록 요청까지라도 해줘야 할 일이다. 마음속으로 그 총대는 내가 메겠다는 각오를 다져본다. 왜인지 3 기사에 대한 첫인상의 호감이 그렇게 내 마음을 이끌고 있다.
비칭 이틀 전의 저녁이 또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