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비칭 하루 전
25. 비칭 하루 전
화요일.
본선 3 기사가 2 기사의 교대를 대신하기 위해 전선 가기로 한 결정을 두고 회사와 대리점 간에 수북한 이멜이 오고 가며 양해가 되었기에 이제 대리점이 나서서 전선 시키는 일만 남았건만 아직 까지 정확한 교대 시간에 대한 소식이 없어 기다리고 있다.
28~29일 양일중에 비칭 할 거라 던 비칭 마스터라고 자신을 밝힌 사람의 전화 연락을 봐도 내일이 비칭 예정의 마지막 날인데 아직 배를 넘겨주겠다는 회사의 의사 표시가 잔금 입금이 안되었기에 나오질 않고 있다.
어쩌면 오늘 오후까지 기다려야 할 거라 던 담당자의 전화 알림이 야속하기만 했던 어제 오후부터의 시간이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까지 성사될 거라는 기대를 버릴 수 없어 아침부터 이멜을 계속 열어보며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
기약이 자꾸 늦어지는 하염없는 기다림으로 마음이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회사에 전화를 걸어 현재 상황을 알아보나 별 뾰족한 이야기가 나오질 않고 있다.
회사 역시 입금이 완료되었는지를 계속 체크하며 기다리는 중으로 입금 연락이 오는 대로 우리에게도 소식을 주겠다는 정도의 말 밖에 해 주질 못하고 있다.
어서 송금되어 온 돈이 확인되어야 하는데 은행 관계자들은 왜 이리 늦장 대응을 하는지~라고 생각해 보지만 은행이 늦장 부릴 이유가 하나도 없으니 그저 관행의 만네리즘이 그곳에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혼자 짚어 본다. 아니라면 진짜 큰 일이다.
바이어 측에서 아직도 돈을 지불하지 않고 있는 게 무슨 꿍꿍이 속이라도 있어서 그런 건 아닌지? 만약에 그러기라도 한 거라면 날짜에 맞춰 모든 일을 진행하고 있는 배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니, 당장 늘어지는 날짜만큼의 선원용 부식을 사야 하는 일이 만만치 않게 나를 압박하는 안건으로 떠 오르고 있다.
게다가 급하게 다른 배로 전선 가기로 한 3 기사에 대한 일정도 제대로 알려 주지 않고 있는 대리점은 또 무엇하는 곳인지. 도무지 맘에 드는 일이 하나도 없는 형편이다.
그래도 지난 23일 입항 수속하면서 가져간 본선 서류에 대해 돌려 달라는 이멜을 보냈더니 잘 가지고 있으며 선원 교대자 데리러 오는 배편에 보내준다는 대답이 와서 그나마 교대가 곧 있겠구나 하는 정도로 짐작하고 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던 보트가 드디어 고무신짝만 한 작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것도 온다던 예정 시간을 두 시간이나 넘겨서 온 것이다. 달랑 사람(3 기사)과 하선 짐만 가지고 나간다는 이야기인데 그 작은 보트에 이미 세 명이나 타고 왔다.
나더러 수속 서류를 다 준비해서 보내라고 해 놓고 서류는 몽땅 자신들이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전화를 연결하여 서류의 행방을 확인시키고 그들이 수속하기로 이야기를 확실히 끝내고 3 기사를 하선시킨다.
본선을 폐선장에 넘겨준 후, 같이 귀국한다는 예정으로 나와 같이 본선에 승선했던 3 기사는 혼자만 먼저 떠나는 쓸쓸한 마음을 감춘 채 그래도 웃으며 작별 인사를 하면서 그 작은 보트에 옮겨 타려 하고 있다.
조석이 바뀌면서 빠른 유속으로 뒤로 빠지는 흙탕물의 구불렁거리는 흔들림의 물결이 곁들여진 본선 옆구리에 접안하게 된 통선이다. 위태로워 보이는 폭이 좁은 그 통선 위로 어렵사리 내려선 3 기사는 흔들리는 몸을 용케 바로 세워가며 위를 쳐다보더니 힘들게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보낸다.
뱃사람들의 기약 없고 예정에 없든 이별은 이렇게도 찾아와 모두의 마음을 착잡하게 흔들어 주고 있다. 조류에 떠밀리듯이 떠난 작은 보트는 짙은 흙탕물 위에 흐릿한 스크루 흔적만을 남겨주며 금세 사라졌다.
지금껏 하고 있는 대리점의 일하는 행태로 보건대 틀림없이 3 기사 하선 후의 행적을 본선으로 안 일러 줄 것이라 예상되어 전선 가게 될 배의 선장에게 3 기사의 하선 시간을 알려주며 그 배로 무사히 전선 오면 본선으로 알려 줍시사 이멜을 넣어 놓았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올라와 이멜을 열어보니 방금 17시에 3 기사가 자신의 배에 승선하였다는 씨 에메랄드 선장의 연락이 와 있다. 3 기사의 행보에 대해 나에게 지워져 있던 모든 일에서 드디어 해방된 것이다.
이제 3 기사의 일은 자신이 하는 대로 일이 매어지는 상황이 되었으니 나도 더 이상 걱정하며 신경을 안 써도 되게끔 되었지만, 그렇게 유순하게 회사의 험한 일에 협조한 부하직원으로 각인되었으니, 앞으로 어찌 지나고 있는지를 계속 지켜보아야 하겠다는 다짐을 가져본다.
회사로부터 배를 바이어에게 넘겨주라는 시간 연락은 오늘도 오지 않고 넘어가고 있다.
저녁때 담당자에게 전화를 거니 이제 내일 오전 중에는 해결될 실마리가 보인 단다. 순간 가슴이 시원 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종일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던 분위기가 그냥 걷히며 내일에의 희망사항이 조바심으로 뭉쳐 있던 가슴을 시원하게 헤집어 놓을 수 있는 소식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녁 9시 40분. 대리점에서 전화가 왔다. 내일 새벽 6시에 터그보트가 본선을 찾아올 것이란 내용의 통보를 해온다. 그러고 보니 앞으로 8시간가량 지나면 진행될 일이다.
아직 본사로부터 아무런 지시가 없고 단지 내일 오전 중에 타결될 기미가 보인다는 정보만 가지고 있다고 알리며 일의 진행은 본사의 최종 지시에 따르겠다고 이야기해주고 전화는 끊었지만, 이제 본선의 인도가 확신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