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장 May 07. 2024

한 수 배우겠습니다.

출처 : 불치하문(不恥下問) < 명경대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강원도민일보 (kado.net)



  아가와 함께 바깥나들이를 이어가고 있다. 하루에 한 번은 꼭 외출을 할 정도로 아가와 함께 집을 나서는 일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가와 단둘이 아파트 단지 안을 산책을 하는 것조차 조마조마한 일이었는데, 지금은 차를 타고 가까운 공원이나 카페에 다녀오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로 여기게 되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처음이 어렵지 그 이후부터는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대담하게 집 근처 어느 마트의 문화센터 강좌를 수강하여 참여하기 시작했고, 얼마 전에는 시(市)에서 운영하는 아가 놀이터를 예약하여 다녀오기도 했다. 겉모습만 보면 아가를 둘러메고 집을 나서는 나의 행동이 무척이나 대담해 보인다. 하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집을 나설 때마다 나의 마음은 '콩닥콩닥'... 쉬이 진정되지 않는다. 



  육아휴직한 아빠가 많아졌다고 하는데, 홀로 유모차를 밀고 있는 아빠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문화센터 강의실에서도, 아기 놀이방 장난감 사이에서도 홀로 있는 아빠는 언제나 내가 유일무이하다. 누구도 무어라 하지 않지만, '청일점', '외톨이' 아빠라는 사실은 알게 모르게 나를 위축시키고 주눅 들게 만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 아가에게로 바싹 다가선다. 내가 아가의 보호자인지, 아가가 나의 보호자인지... 가끔씩 헷갈릴 때도 있다.



  여기를 봐도 아가와 '엄마', 저기를 봐도 아가와 '엄마'인 상황,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우리 아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뿐. 아가를 안전하게 돌보기 위한 목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의 어색함과 낯섦, 부끄러움과 쑥스러움을 면하기 위해 이만한 '고육지책'이 없는 듯하다.



  이리저리 기어 다니는 아가의 뒤꽁무니를 좇다 보면 어김없이 다른 아기와 그 아기의 엄마를 마주하게 된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혹여나 우리 아가가 다른 아기에게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까 바싹 다가가 아가를 잡아챌 준비를 한다. 아가는 이내 포복자세에서 재빠르게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앉아, 다른 아기와 아기 엄마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한다. 



  낯선 아가와 시커먼 아빠?의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열이면 열, 모든 아기 엄마들은 밝은 미소와 친절한 인사를 건네준다. 물론 엄마 옆에 앉아 있는 대부분의 아기들은 급히 경계 태세를 갖추는 듯한 모양새지만 말이다. 그들이 뭐라 하건, 누가 되었건, 우리 아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이다. 그저 '여긴 어디, 너는 누구?'하는 표정이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데에는 역시나 가벼운 인사말이 최고.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유심히 다른 생명체들을 관찰 중인 우리 아가에게 "친구한테 안녕해 안녕~"이라고 말하면, 아가는 대략 몇 초 정도의 반응 시간을 거쳐 느리적 느리적 팔을 들어 올리며 채 다 펴지지 않은 손을 천천히 흔든다. 멍한 표정으로 팔을 허우적거리는 우리 아가를 보고 웃음을 터뜨리지 않는 엄마는... 다행히 아직까지 없었다. 어색함 is the end.



  '거절은 거절한다'라는 마인드를 가진 것일까? 바닥에 두 팔다리가 닿기가 무섭게 뽈뽈대며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는 이 작은 아가야말로 '영업의 신'이자, '친화력의 끝판왕'이 아닐까 싶다. 호기심인지, 당당함인지, 그것도 아니면 뻔뻔함인지 잘 모르겠지만, 뭐가 되었든 아빠는 너를 따라다니며 네가 가진 것을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만치 앞서 기어가던 아가는 이따금씩 잠시 멈추어 뒤에 있는 나를 돌아본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씨익 웃으면서 뭐라 말하는 것 같은데... 


  '아빠! 나만 믿고 따라와!'라고?





작가의 이전글 습! 습! 후~ 후~ (4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