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위로 두둥실 떠올라, 조종석 발밑 아래 펼쳐진 산과 들 그리고 작디작은 크기로 보이는 수많은 건물들과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어쩌다 조종사가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나는, 좀처럼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무실 파티션 뷰를 바라보며 일하던 회사원이었는데.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도 한때는 평범한 직장을 다니는 회사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비즈니스 캐주얼'이라는 애매모호한 성격의 옷을 입고, 서류 가방의 손잡이를 움켜쥔 채, 지하철과 버스를 옮겨 타며 회사와 집을 오가던 때가 말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하루 종일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에 온갖 파일들을 잔뜩 띄워 놓고 'ALT+TAB' 키를 눌러대기 바빴는데.
육아휴직으로 잠시 일터를 떠나 있는 지금도, 조종석에 앉아 있는 순간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린다.하지만 구성원 모두가 조종사인 직장에서는 누구 하나 '조종사'라는 직업을 특이하게도, 특별하게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어디에서나 희소한 성격을 가져야지만 낯설고 신기함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직장 동료들은 오히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나의 경험과 이력을 궁금해하는 듯할 때가 많다.
조종사 교육을 마치고 처음으로 출근했던 날이 생각난다. 만나는 선배 조종사마다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뭐가 좋다고 여기 왔냐'라는 질문을 많이들 던졌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여차여차해서 어찌어찌하여 이렇게 되었습니다!"라고 답을 했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뭘 얼마나 알았겠나 싶다. 그저 하늘을 나는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지 않았을까?
'백견이불여일행'이라고, 상상 속에서나 그리던 조종사의 삶을 직접 몸으로 겪어보니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진짜 조종사가 되어 수 백번 조종석에 올라앉아보고, 1,000시간 가까이 비행을 해보니 이제 조금은 조종사의 삶을 알 듯하다. 그래서 지금은 누군가 '회사 다닐 때보다 뭐가 더 좋냐'라고 물으면 한 가지는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다. '성취감이 아주 분명하고 명확하다'라고.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라고 했지만, 다행히 회사를 박차고 나온 나의 무모한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물론 회사원으로 살 때보다 더 힘들고, 더 어렵고, 더 불편한 것들 투성이었지만, 조종사가 아니었다면 감히 상상도 못 했을 특별한 경험에 비하면 작디작은 단점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내가 해야 할 일이 명확하고, 일의 처음과 마지막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일에 대한 책임감과 만족감을 더욱 고취시켜 주었고, 일터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큰 행복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임무가 주어지는 순간, 나의 일은 시작되었다. 주어진 임무를 완벽하고 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다각도로 연구하며 비행을 준비했다. 비행 당일, 헬리콥터 엔진에 시동을 걸고 하늘로 날아올라 계획된 임무를 수행하고, 임무가 끝나면 다시 기지로 돌아와 프로펠러가 완전히 정지하는 것을 보는 것으로 일의 끝을 만날 수 있었다. 시동이 꺼진 헬리콥터 조종석 앉아출입문을 열어놓고 헬멧을 벗을 때의 그 성취감이란...! 이 짜릿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말도 못 하는 아기를 돌보는 육아 라이프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때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침이 오면 어제와 비슷한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 종일 아가를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입히다 보면 다시 밤이 찾아온다. 그렇게 비슷비슷한 하루를 견디고 버티느라 몸과 마음은 늘 분주하다.
이따금씩 아가의 환한 미소를 보면서 힘을 얻기도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반복되는 하루하루에 몸도 마음도 금세 지치기 일쑤이다. 그러던 중, 아주 오랜만에 헬리콥터의 시동을 끄고 헬멧을 벗을 때 맛보았던 짜릿한 성취감을 느끼는 사건을 겪었다. 바로 아가의 돌 스냅사진 촬영!
사실 촬영 전부터 정말 걱정이 많았다. 적지 않은 비용을 들이는 만큼 이쁘고 즐거운 추억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한시도 가만있질 않으려는 아가를 촬영 시간 내내 잘 어르고 달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뭐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려는? 아가에게 한복을 입히고 이리저리로 붙들고 다녀야 할 텐데, 아가는 얼마나 답답할 것이며, 혹여나 갑자기 아가가 배가 고파하거나 졸려하기라도 하면 얼마나 엄청난 비상사태가 벌어질지...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다행히 결과는? 大성공 & 大만족이었다. 전날 비가 와서 촬영에 지장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촬영 장소에 도착하니 맑은 하늘에 시원한 공기까지 모든 환경 조건이 완벽했다. 아가도 낮잠을 잘 자서 그런지, 카메라를 들이대는 족족 밝은 미소로 엄마, 아빠 그리고 사진작가님과 스태프 분들을 기쁘게 해 주었다. "아 이쁘다 !"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가는 순식간에 기절 모드로 들어섰다. 엄마, 아빠도 당연히... 녹다운! 우리 아가가 벌써 첫 생일을 맞이한다니.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부족한 초보 아빠랑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내줘서 그저 고마운 마음이 가득할 뿐이다.
내일이면 언제 또 그랬냐는 듯 어제와 비슷한 하루를 맞이할 테고,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육아의 고됨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아주 시시때때로 만나는 육아 세계의 큰 미션을 해결하다 보면지친 일상에 활력이 생길 것이고, 초보 아빠에게도 조금씩 육아에 대한 자신감이 더해지겠지? 그렇게 한 단계씩, 아가도 아빠도 성장해 나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