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장 May 09. 2024

必) 안 자면 잘 때까지! (勝

출처 : MBC '진짜 사나이' 中



  아가 울음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듯 은은하게 들려온다. '꿈인가, 생신가' 싶은 비몽사몽한순간도 잠시. 잔잔하게 흐르던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몽롱한 정신으로 휴대폰 화면을 켜본다. 아직 새벽 3시가 되지 않은 시간. '베이비 캠' 앱을 열어 아가 방 상태를 살핀다. 오늘도 역시나 아가는 침대 가장자리의 펜스를 붙잡고 대성통곡 중이다.


  아내가 깨지 않게 조용히 안방 문을 닫으며 거실로 나온 뒤, 까치발을 들고 총총총 아가방으로 달려간다. 방문을 열기 전, '아가가 스스로 잠들 수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볼까' 고민해 본다. 하지만 아빠가 온 것을 알아차린 것일까? 아가는 더욱 소리를 높여 숨이 넘어갈 듯 울어젖힌다. '오늘도 실패...' 


  아빠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기가 무섭게, 아가는 펜스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침대 매트리스 위로 '철퍼덕!' 몸을 던진다. 아빠는 아가를 살짝 들어 침대 머리맡으로 옮긴 후 그 옆에 나란히 눕는다. 아주 아깝게 얼굴을 맞대고 있지만, 아직 동공이 어둠에 적응하기 전이라 아가의 얼굴 형태조차 보이지 않는다. 눈을 떠도 어둡고, 눈을 감아도 어둡다. 칠흑같이 어두운 순간이다.


  눈이 점점 어둠에 적응하고 있는 듯하다. 옆에 누워 있는 아가의 형태가 점점 눈에 들어온다. 눈을 뜨고 있는 것인지 감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오물오물 입을 움직여 공갈젖꼭지를 쩝쩝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느새 신고 있는 양말도 벗어서 손으로 조물락 조물락 거리고 있다. 아빠는 그저 아무 말 없이 아가의 가슴을 토닥여준다. 


  그윽하게 울려 퍼지는 '쩝쩝' 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아빠에게도 쉬이 잠들지 못했던 순간이 있었던가 떠올려본다. 역시나 가장 인상 깊었던 '잠자리'에 대한 기억으로 군(軍) 생활 당시의 것을 빼놓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 세탁했는지 알 수 없는 퀴퀴한 모포(이불), 고개를 살짝만 돌려도 부스럭 소리를 내는 차디찬 베개... '윽, 갑자기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사실 아빠는 잠자리에 예민한 편은 아니다. '포근한 이불'조차 꿈도 꿀 수 없었던 해병대 군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불빛 하나 없는 산속에서 우의 하나만 깔고 누워서도 잘만 잤고, 차디찬 기운을 내뿜는 자주포 안에서도 허연 입김을 후후 불어가며 단잠을 이루었다. 한반도를 가로지르며 전지훈련을 떠나는 기차 안에서도, 남해안을 돌고 돌아 훈련장으로 향하는 상륙 함에서도, 굉음을 내뿜는 수송기 짐칸에서도 꿀맛 같은 잠을 맛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너는 왜... 너는 아빠 딸인데... 왜 잠을 자다 말다 하는 거니? =_=


  이곳저곳 여러 잠자리를 누비던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쩝쩝' 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오! 드디어 이 녀석이 잠에 들었나 보군'. 최대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하며 아가의 침대를 빠져나온다. 이제 본격적으로 꿀잠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휴대폰 화면 속 시계를 확인하는데, 벌써 6시... '이상하다, 나는 분명히 생각 중이었는데...'



  요즘은 새벽이 오는 게 너무 무섭다. "귀신 잡는 해병"이었던 아빠는 어둠 속 귀신은 무섭지 않지만, 새벽녘의 너의 울음소리는... 이제 쪼금 무섭다. 그래도 어쩌겠니, 아가가 못 자겠다고 우는데 아빠가 재워줘야지! 해병은 "안 되면 될 때까지!"라고 하니까, 


우리 아가는 "안 자면 잘 때까지!!"아빠가 꼬옥 붙어 있을게!





작가의 이전글 이러다 미쳐 내가 ~~ (4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