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피바라 Dec 09. 2024

#4. 미국 직장생활 2년 차의 만족도는?

꿈꾸는 회사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꿈의 직장이지만...

미국에서의 직장 생활을 결심했을 때, 몇 가지를 원했던 것이 있다. 하지만 지금 다니는 회사는 그 조건에 완벽히 부합하지는 않는다. 


첫 번째로, 나는 원격근무를 하지 않는 회사에 가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주 5일 재택근무 덕분에 로스쿨을 결심하고 준비할 수 있었지만, 처음 미국 회사에 입사할 때는 미국 기업 문화를 100%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미디어에서 보이는 실리콘 밸리 회사들처럼 무료 음식과 커피가 넘쳐나고, 회사 내부가 테마파크처럼 꾸며진 그런 오피스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프리랜서 때 잠시나마 원격근무를 해본 경험 때문에, 회사 생활을 원격근무로 시작하는 것에 대해 조금 망설여졌다.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사람들과의 신뢰를 쌓거나 업무를 파악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직장에서는 주 2일 정도는 직접 출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두 번째로, (그놈의) FAANG...

명문대와 대기업을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이름은 허울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그 이름이 주는 힘과 기회를 알기 때문에 조금 더 이름이 알려진 회사에서 미국 커리어를 시작하고 싶었다.

물론 지금 다니는 회사도 사업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크고 해외 지사가 여럿 있는 대기업이지만, FAANG에 해당되지 않아서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세 번째로, 대리급(mid-level)으로 시작하고 싶었지만, junior(사원) 포지션으로 입사했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내가 아직 누군가를 이끄는 데 부족하다는 걸 살벌하게 깨닫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4년간의 경력을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신입 (entry level) 연차로 다시 시작하는 건 아무래도 자존심이 상했다.

(그런데 막상 일을 해보니, 좋다... 낮은 연차 덕에 대량 해고(layoff)의 물결/칼부림에서 간당간당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고, 실수도 용납되고 책임도 적어서 부담 없이 다닐 수 있어서 좋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면서 생각했던 바와는 조금 다르지만, 그럼에도 지금 다니는 회사에 정말 감사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취준 생활을 끝내주고 불가능해 보이는 미국으로의 이직을 가능케 해 준 곳이기 때문이다. 앞서 포스트에서 언급한 네 곳의 회사와 최종 단계까지 가기는 했지만, 정규직으로 내가 원하는 연봉 그 이상을 제시한 곳은 이 회사뿐이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직장생활 2년 차인 지금, 너무나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말도 안 되는 워라밸이다.

한국에서 다녔던 회사에서는 워라밸이라는 개념은 사치였다. 매일 야근을 했고, 정상이 되어버린 비정상적인 요구와 타임라인을 맞추기 위해 10시간 이상 일하는 게 일상이었다. 커리어적으로 많이 배우고 성장한 시기였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회사는 거의 2년을 다녔지만 야근을 한 적이 아예 없었고, 금요일에는 90% 확률로 회의가 없다. 게다가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연차를 주기는 하지만, 근무 시간이더라도 미리 말만 하면 개인적인 일로 2~3시간 정도 자리를 비워도 된다. 또한, 아이를 가진 부모의 경우, 아이 등하교 시간에 맞춰 출퇴근을 자유롭게 해도 되고 회의를 빠져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연차를 사용할 때도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되고,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이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한국과는 다르게 언제든 해고될 수 있기에, 본인이 맡은 바는 확실하게, 제대로 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팀장님!

한국에서 일할 때, 조직 개편과 회사의 방침 때문에 정말 많은 팀장들과 일해볼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인성 좋은 팀장과 일할 때 효율도 행복도 높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능력도 좋고 사람 됨됨이도 훌륭한 팀장이면 최고겠지만, 능력은 뛰어난데 폭언을 일삼거나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상사와 일할 때 나는 주눅이 들었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었다. 

다행히 지금의 팀장님은 너무나도 따듯하다. 내가 팀장의 첫 팀원이라 그런지, 아니면 내 연차가 낮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정말 잘 챙겨준다. 프로젝트 투입 전에 내 동의를 구하는 둥 나를 직장 동료로서 존중할 뿐 아니라, 개인적인 고민도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다. 언제든 나의 말을 존중하고 믿어줄 사람이라, 여러모로 따를 수 있는 팀장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꿈꿨던 미국에서의 직장과 지금의 회사를 떠나려고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