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출판 편집자가 그럴 테지만, 나 역시 보조 용언의 띄어쓰기는 하나의 책 안에서 원칙만 통일해서 쓰라고 배웠다. 붙여 쓸지 띄어 쓸지를 말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그런 규칙은 없다. 편집부의 명분이나 편의성을 이유로 생겨난 관습적 지침일 뿐이다. 다만 국립국어원의 한글 맞춤법 어문 규정을 따르는 일은 여전히 의미 있다고 느끼는데, 비교적 일관된 논리로 문법을 이해하고 스스로의 원칙을 정립하는 데 받침목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간 어문 규범상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게 있다. 본용언이 합성어인 때뿐 아니라 파생어인 경우에도 붙여쓰기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으로, 여태까진 활용형이 3음절 이상의 합성어일 때만 붙여쓰기가 허용되지 않는 줄 알고 있었는데 파생어의 경우에도 3음절 이상이면 띄어 쓰도록 몇 년 전 규범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게으르고 무지해서….)
이쯤 되면 보조 용언을 일괄적으로 띄어 쓰는 게 속 편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겐 그게 쉽지 않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본용언과 보조 용언을 적절히 붙여 씀으로써 구문의 정확성과 전달력에 도움이 되는 부분을 놓치고 싶지 않기에 그렇다. 일례로 ‘잡아왔다(잡아 왔다)’와 같이 보조 용언을 붙여 쓰는 것만으로 의미가 한결 분명해지는 경우들 말이다. 그래서 이참에 다시 세워본 띄어쓰기 원칙은 이렇다. 1) 본용언이 복합어이며 활용형이 3음절 이상일 땐 국립국어원 어문 규정에 따라 당연히 띄어 쓴다. 2) 본용언의 활용형이 단일어나 2음절의 복합어인 경우엔 국립국어원 어문 규정에 따라 보조 용언의 붙여쓰기 허용을 적용한다. 3) 물론 예외를 둔다. 보조 동사 ‘있다’ ‘마지않다’ ‘척하다’, 보조 형용사 ‘만하다’ ‘듯하다’ ‘법하다’ 따위는 모두 띄어 쓴다.
앞으로는 출간 도서에 이 원칙을 적용할 예정인데, 이리 되면 6음절짜리 ‘만들어버리다’는 붙여 쓰면서 5음절짜리 ‘발명해 내다’는 띄어 쓰게 될 것이고 혹자는 이런 점을 불편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어문 규정상 틀린 것 아니냐고, 무규칙하다고 꼬집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틀린 것은 아니고 무규칙한 것 또한 아니다. (실은 틀리지 않고 규칙성을 부여하고자 이러는 거….) 그러니 단지 보조 용언의 붙여쓰기를 포기할 생각이 없어서일 뿐이라고 너그러이 이해해 준다면 좋겠다. 물론 이런 것을, 이런 사정을 눈여겨볼 사람이 딱히 있으리라 생각진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