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넷 끝자락

엄마의 무게

by Caraish

바람 앞에 촛불같이 휘청거리던 1월도 지나고 루틴과 리듬을 다시 쌓아가던 2월도 금방 지나고 이제 추위가 움츠러들고 제법 따뜻해진 3월이다. 그리고 어느덧 삼십 대 중반 앞에 놓여있다. 다음 주면 벌써 서른다섯이라니.


오미크론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올해 초, 꿀 같은 재택근무를 뒤로하고 이제 다시 오피스 출근을 강행한 지 몇 주가 지났는데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항상 피곤을 달고 산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빨아놓고 건조기에 며칠째 들어가 있는 빨래들, 높낮이만 다를 뿐이지 항상 싱크대에 쌓여있는 설거지들을 보며 한숨이 나온다. 당장 내일 아이들 런치메뉴가 걱정이다. 얼마 안 되지만 아이들 숙제도 봐줘야 한다. 아이들을 재우고는 우아하게 티 한잔하며 독서를 하고 싶기도 하고 시원한 맥주를 곁들여 다음 에피소드가 엄청 궁금했던 드라마 시청도 하고 싶지만 사실 아이들을 재우며 나도 같이 쓰러져 자기가 일쑤다. 쓰러진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솔직히 그냥 하루쯤 쉬고 싶다. 아이들 없는 집에서 그냥 하루쯤 빨래도 청소도 설거지도 저녁 준비도 오롯이 내 페이스대로 하고 싶다. 쫓기지 않게 여유롭게 장도 보고 싶고 낮잠도 자고 싶다. 매일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잘하고 있다고 위로하지만, 그리고 본인도 빠듯하지만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남편도 곁에 있지만 자꾸 내 자리에서, 엄마 그리고 와이프로서 또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분산되는 느낌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가정 안에서 엄마는 나머지 가족 구성원들과 끈끈하게 연결된 유기체 같다. 나와 아이들이 친밀도가, 나와 남편의 친밀도가 우리 가족의 분위기, 전체적인 동선을 결정짓는다. 물론 남편과 아이들의 관계, 아이들 사이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엄마인 내가 스스로 어떤 상태인가에 따라, 남편과 아이들과 주고받는 말, 행동, 태도를 포함한 상호작용에 따라 매일 저녁 메뉴가 결정되고 아이들이 참여하는 액티비티가 결정되고 시댁에 얼마나 자주 갈지가 결정되고 올해 여행 스케줄이 결정된다. 쉬운 말로 해서 한 가정에서 엄마가 갖는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 머리로는 당연히 알고 있는 진리이지만 막상 곱씹어 되새겨보면 부담스럽다. 오늘은 피곤하니까 다음번에 하자라고 미루는 작은 것들, 혹은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서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들이 우리 가족의 다이내믹을 알게 모르게 좌지우지하고 있고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기억할 유년기의 기억의 이미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거다. 너무 멀리 간 것 같다. 근데 틀린 얘기는 아니다.


일에서는 어떤가. 커리어도 이제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나이가 돼버렸다. 조급해할 필요는 없지만 일에서도 미묘한 정치싸움 기싸움이 느껴지고 다음 무브를 슬슬 준비하고 플랜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한창 실력을 쌓고 내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야 할 삼십 대 중반. 사회 초년생 때 할 수 있는 귀여운 실수들은 이제 용납이 안된다. 커리어 측면에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멘토들과 네트워킹도 꾸준히 해야 한다. 드라마에서 보면 이 나이 때 사람들은 다 디렉터고 원장이고 대표직이다. 물론 드라마 설정이겠거니 하고 넘기지만 나에게도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다행히 그 길이 잘 보이고 나에게 더 나아갈 역량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 과정에서 아직 어린아이들을 내가 더 많이, 빨리 가지 못하는 핑계로 쓰고 싶지는 않다.


이 모든 게 가족이 곁에 있었으면 조금 더 수월했을까라는 필요 없는 생각을 또 한다. 외국에 살지 않고 한국에 살면서 엄마랑 언니네 문턱을 드나들며 반찬을 나눠먹고 시시콜콜한 대화를 주고받고 툴툴거림을 내뱉을 수 있는 가족이 가까이 있었다면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떨까. 육체적인 힘듦이 육아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신생아-토들러 시기 때는 누군가 잠깐 와서 아이들을 케어 줄 수 있는 도움이 절박했다. 지금은 절박한 시기는 지난 것 같다. 근데 또 다른 공허함이 있다.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그리움이다. 나이가 드나 보다.


얼마 전에 소셜 미디아에서 우연히 스친 글이 머리를 망치로 한 대 꽝 치는 것처럼 와닿았다.


"We expect women to work like they don't have children, and raise children as if they don't work."


여성에 대한 기대치. 우리 사회가 일에서는 아이가 없는 것처럼 일하길 원하고 자녀 양육면에서는 일하지 않는 것처럼 아이를 키우기를 원한다. 백 프로 일에 헌신하고 백 프로 아이들에게 희생하지는 못하지만 그 중간 어디쯤에서 나를 먼저 돌보고 사랑하고 계속해서 남편과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하며 서른넷의 막을 내린다. 일주일 뒤면 분명 또 힘들다고 투덜거리겠지만 자꾸 사랑하기로 마음먹고 오늘에 충실하다 보면 내가 꿈꾸고 그리는 그림 언저리에는 와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