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데이트 다녀올게
둘째가 생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과 육아에 지친 우리 부부는 한 달에 한 번 '데이트 나잇 (Date night)'을 갖기로 했었다.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 혹은 가족이 가까이 사는 부부에게 한 달에 한 번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건 쉬운 일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족과 떨어져 사는 우리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일하는 주중에는 아이들을 데이케어에 보내니 상관이 없지만 저녁이나 주말에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베이비시터를 구해야 했다. 아직 아이들의 언어구사력이 완벽하지 않아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말해줄 수 없으니 믿을만한 사람 이어야 했고 첫째는 유독 낯가림이 심하고 둘째는 아직 신생아라 손이 많이 갔다. 내 맘에도 들어야 하지만 특히 첫째 맘에도 쏙 드는 사람 이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나가서 데이트는커녕 아이들 걱정만 하다 돌아올 것이 뻔했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첫째가 예전에 다니던 데이케어 담당 선생님이었다. 현재 등원하고 있다면 개인 베이비시터로 쓸 수 없는 것이 규정이었지만 이제 더 이상 그곳에 다니지 않으니 규정에서 자유로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직 가지고 있던 연락처로 문자를 해봤다. 흔쾌히 해주겠다고 했다. 문자로 급여를 조정하고 여러 가지 사항을 확인한 후 당일에 우리 집으로 첫 출근을 했다. 물론 첫째에게는 며칠 전부터 그 선생님이 올 거라고, 그리고 선생님이 오면 엄마 아빠는 잠깐 나갔다 올 거라고 계속 리마인드 시켜주었다. 워낙 엄마와 떨어지는 것에 예민하고 낯선 사람, 환경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아이라 걱정이 많았다. 둘째가 먹을 분유도 미리 타놓고 비상용 스낵도 두둑이 준비해두고 좋아하는 장난감도 선생님이 오기 전에 꺼내 놓았다. 결과는. 다행히 별 탈 없이 지나갔다. 오케이! 이제 매달 우리도 데이트를 해보자.
우리는 데이트할 때 즐겨 가던 레스토랑, 혹은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엔 불편할 것이 뻔히 보이는) 레스토랑 위주로 데이트를 즐겼다. 고작 세 시간 정도였지만 식사 후 느긋하게 디저트를 먹고 가끔은 드라이브, 또는 바닷가 산책도 즐겼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주말에도 일해야 하는 남편 일의 특성상 스케줄 맞추기, 갑작스럽게 아이들이 아파서 취소되는 경우 등등 여러 가지 변수가 나타날 때도 있었다. 그리고 굳이 따지면 경제적으로도 손해 보는 일이었다. 집에서 편히 한 끼 먹으면 될 것을 베이비 시터에게 지급해야 하는 페이, 외식으로 돈이 이중으로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해 캘린더를 체크해보니 열두 달중 열 달은 성공했다. 퍼센트로 따지면 83%, 학점으로 보면 B,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해가 되었을 때 우리 삶에 달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이었다. 아이들과 집콕하며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우리 둘만의 데이트는 한동안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 상황이 차츰 나아지던 작년은 결혼기념일과 남편의 생일을 핑계로 두어 번 겨우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가졌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새해. 아직도 코로나는 기승을 부리지만 우리 부부는 꾸역꾸역 시간을 내서 다시 데이트를 해보려고 한다. 올해 첫 데이트는 다음 주 주말, 라이브 음악이 있는 레스토랑으로 이미 예약을 마쳤다. 우리 부부가 그토록 데이트에 목말라하는 이유는 한 가지, 바로 관계 회복이다. 아이들 이야기는 최대한 하지 않고 너와 나, 나와 너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올해 결혼 10년 차에 접어들지만 서로를 계속 알아가려고 노력해야 하는 걸 알기에. 다른 관계도 그러하지만 특히 부부간의 인연은 물을 주고 햇빛을 비춰주며 가꿔줘야 하는 화분처럼 지속적인 노력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3년 전 부부 상담을 받았을 때 상담사 분께서 한 말 중에 오랫동안 기억에 각인된 말이 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손이 많이 가는 힘든 시기임이 분명하지만 하루에 단 5분, 10분이라도 둘만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 아무리 바빠도 손을 꼭 잡고 둘만의 대화 시간을 확보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야 단지 전우애로 똘똘 뭉친 육아 파트너만이 아닌 '친구'로서의 intimacy, 친밀함을 유지할 수 있고 서로의 마음에 자리를 내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었지만 그 당시 속으로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매일 퇴근 후 육아에 치여 쫓기며 잠드는 일상에 오롯이 남편에게 내어줄 만한 시간은 단 5분, 10분도 없는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마음먹으면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각자 날카롭고 울퉁불퉁한 못난 마음을 가지고 지내던 힘든 시기라 그 마음먹기까지의 여유도 없었다. 대화 중 아이들이 끼어들면 예민해졌고 남편보다 아이들에게 시선을 내어주는 나를 남편은 서운해했다. 우리 관계에 나갈 구멍이 없어 보였고 다툼이 잦아질 때마다 더 내려갈 곳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매번 더 낮은 바닥이 보였다.
아이들이 클 때까지 기다리려면 너무 늦어버릴 것 같다. 그래서 올해는 더욱 둘만의 데이트에 집중하려고 한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한 번 더 따뜻한 눈길과 손길, 말을 건네기 위해. 서로의 다름이 틀림이 아님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시간이 되고 계속해서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