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Caraish


최근에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의 다큐멘터리, 비커밍(Becoming)을 볼 기회가 있었다. 육퇴후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반사적으로 아이패드를 열고 넷플릭스를 눌렀다가 홈페이지 정 한가운데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약간 찌푸린 듯한 미간은 치아가 드러나는 미소를 더욱 돋보이게 했고 카리스마 넘치는 그녀의 눈빛에 반해 무언가에 홀린 듯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녀가 현재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지, 전 오바마 대통령 임기 당시 퍼스트레이디로서 어떤 삶을 살았었는지, 그리고 그녀를 오늘날 여기까지 있게 한 과거의 스토리까지 모두 잔잔했지만 힘이 있었고 흥미진진했다. 그녀의 어릴 적 이야기도 자주 했다.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그녀의 어머니와 친오빠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하지만 나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은 그녀가 예전에 태어나고 자란 집을 방문했을 때였다. 어머니와 브루클린 옛 집에 돌아간 그녀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주 앉으셨다던 거실 의자에 앉아보기도 했고 처음 피아노 레슨을 했던 피아노 의자에 앉아보기도 하며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녔고 취재진은 그녀의 뒤를 따라 집안 곳곳 발걸음을 함께 했다.


아 부럽다. 그녀가 부러웠다. 유년기를 보낸 추억의 장소에 다시 발 디딜 수 있다는 것. 그 집이 다른 사람의 소유지로 변질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보존되었다는 것. 그 집에 어머니와 현 가족들과 함께 다시 방문할 수 있다는 것 모두 너무 부러웠다.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늦은 밤과 이른 새벽 사이 즈음 이미 잠에 든 남편과 아이들 옆에 조용히 누워 잠을 청했다. 하지만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사실 최근 몇 달간 꿈에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이 이상하리만큼 자주 등장했다. 언니와 공유했던 이층침대와 책상 두 개가 나란히 있던 우리 방, 낡은 소파와 컴퓨터가 있던 거실, 아빠의 책상과 책들로 둘러싸여 서재인지 침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던 안방, 할머니 냄새가 났던 할머니방, 항상 차갑고 습한 공기가 맴돌았던 베란다. 지금도 지그시 눈을 감으면 난 언제든지 그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눈을 감고 아파트 입구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을 지나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는 지름길, 꼬박 6년을 오간 초등학교 등하굣길, 엄마와 자주 갔던 건너편 상가 마트, 학원가로 둘러싸인 먹자골목. 모두 눈을 감고 손을 내밀면 닿을 것만 같이 아른거렸다. 어렵게 잠이 든 그날 밤, 역시나 난 어릴 적 살던 집을 배경으로 한 꿈을 꾸었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기억하지 않기로 아주 오래전에 선택해 버렸을 뿐. 스틸컷처럼 가끔, 하지만 소름 돋을 정도로 선명하게 떠오르는 유년기의 기억들을 모아보려 한다. 과거에 그대로 눌러앉아 청승 떨자는 의도가 아니라 잊고 살았던 나를 찾기 위해. 그래서 지금의 나랑 더 친해지기 위해. 일기이든 편지이든 산문이든 무슨 형태이든 간에 써내려 가다 보면 뚝뚝 끊어진 스틸컷 몇 장이 흐름 있고 생기 있는 하나의 동영상이 되겠지. 그게 단 10초이건 1분이건 간에 지금보다는 조금 더 유연한 추억이 될 거라 생각하면 뿌듯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솔직히 막막하다. 신이 나기도 하고 겁이나기도 한다. 떨리기도 하고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고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고 해야 할까. 서른 여섯, 미국 캘리포니아에 산지 어느덧 스무 해가 지났는데 데 내 삶의 처음 반토막, 한국에서 열여섯 살 때까지의 기억이 희미해져 버렸다. 마치 담배연기처럼 뿌옇고 자욱한 것들이 사방을 꽉 채우고 있어서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를 것 같은 느낌이다. 잘 헤치고 가야 할 텐데 말이다. 어릴 적 집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할머니 품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싶더니 뒷 동네에서 아이들과 우르르 어울려 따먹던 꽃향기가 나는 것도 같다.


시간은 물 흐르듯 흐르고 결혼과 임신, 출산과 육아로 지난 몇 년간을 참 치열하게 살았다. 가족과 떨어져 먼 미국 땅에서 아이 둘의 워킹맘으로 산다는 건 녹록지 않았다. 아무런 훈련도, 무기 체계도 없이 전쟁통 한가운데 뚝 떨어진 것 같았다. 보이는 대로 양 옆에 있는 걸 주섬주섬 주워서 그나마 쓸만한 무기로 갈고닦아 가며 이 싸움을 유지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우아하게 앉아 글을 쓴다는 건 아무래도 사치같이 느껴졌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다시 유년기의 기억이 날 찾아왔다. 가끔은 선명하다 못해 날카로웠고 또 가끔은 푹신하고 따뜻했다. 엄마가 되어보니 나의 어린 시절 엄마, 아빠, 할머니, 선생님, 친구들, 친구들 부모님을 보는 시각이 모두 달라졌다. 꼭 초등학교 때는 그렇게 커 보이던 학교 운동장이 성인이 돼서 보니 작아 보이는 느낌이었다. 이해가 되기도 했고 궁금해지기도 했다. 내 삶에서 꼭 그 자리에 그렇게 있어준 사람들. 때론 눈엣가시처럼 미워도 하고 벽을 만들기도 했던 관계에서부터 마음 주고 정을 나눈, 같이 웃고 울었던 그들까지. 지나가는 바람처럼 혹은 곁에 머무는 따스한 바람처럼. 그렇게 수많은 기억으로 뒤엉킨 실타래를 풀어보고자 다시 키보드를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