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투른 익숙함
미국으로 이민 오기 전까지 부모님의 직업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다. 두 분이 부부로 인연을 맺게 된 시작점도 교대 동아리이고 외할머니도 선생님이셨으니 사실 우리 집안에는 분명히 교육자의 피가 흐르는 셈이고 내가 지금 교육계에 몸 담그고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닌듯하다. 성인이 되고 결혼 12년 차인 지금, 부부간에 같은 직업을 공유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두 명의 다른 인격체가 만나 결혼이라는 벤다이어그램을 이룰 때 같은 직업을 가졌다는 것은 그 교집합이 넓어지는 것을 뜻할 것이다. 그만큼 저녁 식사 자리에서 같이 대화할 거리가 풍부해지고 서로에게 더없이 좋은 지원군이자 동료가 되어줄 수 있으며 하다못해 그 세계에 발 담그고 있어야만 알 수 있는 가십거리, 혹은 흥미진진한 정보들도 공유할 수 있으리라. 적어도 우리 부모님은 그랬다. 어쩌다 두 분이 따로 대화하시는 걸 듣게 될 때면 일과 관련된 얘기가 오갔던 기억이 심심찮게 있다. 대략, 그 선생님은 어디로 전근 갔다더라, 그 학교에 이번에 새로운 교장이 누구라더라, 교육청에서 이런 지시가 새로 나왔더라, 학부모 특별 수업이 언제라더라, 이런 종류의 시시하고도 중요한 토픽들이었다.
부모님은 선생님이라는 직업 외에 교사 선교회라는 기독교 단체에 몸담고 계셨고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으셨다. 선교회의 특성상 두 분이 가르치는 제자들을 만나볼 기회는 많았다. 일 년에 한 번 제자들을 동반한 수련회, 연중 단합대회, 혹은 그때만 해도 선생님 집에 제자들을 초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우리 집에도 데려온 기억이 있다. 제자라고 해봤자 초등학생들이었지만 그 당시 엄마가 고학년 담임이라도 하시게 될 때면 3학년인 내가 볼 때는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존재였고 숫기가 적었던 나에게는 반갑기보다는 부담스럽기도 했다. 이렇게 사적인 자리가 아닌 부모님이 일하셨던 근무지, 학교에 간 기억은 많지 않은데 딱 한 번 생생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그날은 왜 아빠를 따라갔는지 모르겠다. 두 분이 맞벌이셨지만 아무래도 주 양육자는 엄마에 가까웠기 때문에 일이 있어도 엄마를 따라갔을 텐데 그날은 엄마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는지 아니면 시간이 애매하게 안 맞아서 잠깐 그랬는지 모르지만, 아빠의 근무지로, 그러니까 아빠가 담임을 맡은 교실에 가게 되었다. 지루한 수업이 하나 끝나고 다음은 음악 시간이었다. 음악책을 집어 든 아빠가 칠판 앞 탁상 옆자리에 자리 잡고 있던 풍금 뚜껑을 열고 의자에 턱 앉으셨다. 나의 눈은 단연 초롱초롱해졌다. 아빠가 노래하는 건 들어본 적이 있지만, 풍금은커녕 악기를 다루는 모습은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그들의 음악책을 꺼내 뒤적였다. 하지만 선생님 의자에 쥐 죽은 듯이 앉아있던 나에겐 내 눈앞에 벌어진 재밌는 광경에 속으로 이만저만 신이 난 게 아니었다.
드디어 아빠의 서툰 풍금 연주가 시작되었다. 무슨 노래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릴 법한 가곡, 동요, 혹은 민요이었으리라. 전주가 끝나고 노래가 시작되자 학생들은 풍금 음색 위에 제각기 목소리를 보태었다. 아빠의 연주는 뛰어난 솜씨는 아니었지만 제삼자가 듣기에 그리 불안정하지도 않았다. 멜로디를 따라 바쁘게 건반을 움직이는 스타일이 아닌 코드만 묵직하게 누르며 세네 마디에 한 번씩 코드를 바꾸는 정도였다. 분명 서툴렀지만 한 두 번 연주해 본 솜씨가 아니었기에 그 서투름마저도 익숙하게 들렸다.
이 희미한 기억 너머 광경 속 오래된 교실 안의 아빠는 젊다. 풍금을 처음 배웠을 당시 아빠는 더 젊었겠지. 그 당시 초등학교 선생님이란 직업의 특성상 예체능 과목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가르칠 수 있어야 했기에 전문가 수준은 아니어도 기본적인 음악, 미술, 체육 교육과정은 교대에서 수료하셨을 것이다. 음악 수업을 듣는 아빠는 어땠을까. 그냥 졸업을 위해 이수해야 하는 과목 중 하나였기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대충 때우다시피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어차피 넘어야 할 산, 혼신을 다해 즐기셨을 수도 있다. 내가 아는 아빠는 후자에 속한다. 모든 하나 대충 하시는 법이 없고 뭐든지 깊숙이 파고드는 열정과 집중으로 채워진 분. 그 끈기와 집념은 내가 부족한 부분이기도 하고 닮고 싶은 점이기도 하다.
서툰 아빠의 풍금 연주가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이토록 기억에 뿌리 박힌 이유는 바로 그 점이 아닐까. 평소에 내가 알던 아빠의 모습이 아닌, 색다른 환경에서 마주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접한 그 이질감은 사실 하나도 색다른 것이 없는 아빠의 일상이었다는 것. 단순히 ‘부모님 직업 방문 체험기’ 정도에서 의미부여를 그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 건, 분명 익숙했을 리 없는 악기를 몸소 배우고 익혀서 본인 것으로 만들어낸 아빠의 젊은 날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서다. 난 지금 무엇을 새로 익히고 내 것으로 만들고 있는가. 전문 분야에 관한 공부이든 개인적인 취미로 시작한 그 어떤 열정이든 작은 것이라도 내 것으로 만들어나가는 뿌듯함을 느끼고 있는가. 나중에 딸들이 커서 나의 삶의 단면에서 그것을 목격할 날이 올 때 자신 있고 담담하게 나의 배움의 과정을 얘기해 줄 수 있길 바라본다.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