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이가 된 미선이

장애 아동이면 어때

by Caraish

현정이를, 그러니까 미선이를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것 같다. 김미선. 키는 또래에 비해 살짝 작았지만, 몸집은 평균 이상이었고 힘도 세었다. 숱이 많은 단발머리에 항상 옅은, 하지만 밝지 않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말은 살짝 어눌했지만,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힘들지 않았다. 같은 말을 자주 반복하기는 했다. 미선이는 지적 장애 아동이었다.


꽃샘추위가 기승인 3월 우리는 한 교실에서 만났고 그 첫인상은 강렬했다. 맨 앞줄 오른쪽 코너가 그녀의 자리였는데 난 우연히 그녀의 바로 뒷자리에 배정되었다. 미선이는 손톱으로 머리를 심하게 긁고 있었고 심하다 못해 두피가 다 상했는지 잠깐 손을 머리에서 떼었을 때는 손톱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 손은 다시 머리를 향했다.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일 년 내내 난 그 줄에 앉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이가 지긋이 있었던 담임 선생님은 날 그 ‘구역’에 고정하셨다. 한 마디로 난 ‘미선이 담당’ 친구 중 한 명이었다.


미선이는 학급 아이들에게 자주 놀림을 당했다. 고작 2학년이었지만 난 본능적으로 미선이가 약자임을 단번에 알았다. 굳이 팔을 뻗고 나서서 미선이를 보호했던 건 아니었지만 놀리는 쪽에 가담하지는 않았다. 미선이는 나에게 자주 말을 걸었다. 그녀 특유의 옅은 미소를 띠며 “너, 이주예지?”를 매번 반복했다. 난 짧게 “응”이라고 대답했고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2학기가 되었을 때 우리는 새 담임 선생님을 맞았다. 나이가 꽤 많으셔서 사실상 나에게는 할머니나 다름없으셨던 선생님은 정년 퇴임을 하시고 흰 피부에 동그란 안경을 쓰시고 긴 생머리를 한 젊은 교생 선생님이 우리 반을 맡았다.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미선이가 새로운 선생님이 오시고 후부터 하지 않던 행동을 하기 시작했는지, 아니면 방학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선이의 행동이 날카로워졌다. 아이들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고 선생님께 반항하고 힘으로 저항하기도 했다. 교생 선생님은 무척이나 힘들어하셨다. 2학년인 내가 보기에도 안쓰러울 때가 있었고 결국 참다못한 선생님은 교탁 앞에 서서 우리를 크게 호통치시며 눈물을 보이셨다. 그렇게 힘든 가을 학기가 끝나고 3학년이 되었을 때 미선이는 우리 반에 없었다.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굳이 물어볼 마땅한 사람도 없었다.


새 학기에 적응할 무렵 복도에서 그녀를 우연히 마주쳤다. 아니나 다를까 미선이는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너 이주예지?”

“응.”


이번엔 대화가 좀 더 길게 이어졌다.


“나 이제 현정이야. 김현정.”

“아 미선이는?”

“나 이제 김현정이야”.


그렇게 말하고 ‘현정’이는 유유히 걸어가 복도 끝 코너에 위치한 교실로 들어갔다. 교실 팻말을 보니 “특수반”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날 이후에도 가끔 난 현정이를 목격했다. 등하교 시간에 혼자 책가방을 메고 걸어갈 때면 뒤에서 아이들이 쫓아가 놀리는 장면이거나 특수반 아이들과 줄지어 복도를 걷는 모습이었다. 눈이 마주칠 때면 현정이는 나에게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사실 그 뒤로 현정이가 어느 학교로 진학했는지 소식은 영 듣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 기억에 또렷이 존재하는 그녀. 길거리에서, 혹은 텔레비전에서 지적 장애아동들을 볼 때면 어김없이 내 기억 속에 자리한 ‘미선이’가 떠오른다. 그녀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지낼까.


성인이 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그 당시 미선이를 떠올리면 마음 한쪽이 무겁다. 90년대 초반 우리 사회가 장애 아동들을 바라보았던 시각. 마음에 못이 박힐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내뱉었던 아이들과 그걸 듣고만 있던 미선이. 미선이의 엄마는 얼마나 많은 좌절의 순간들을 감내해야 했을까. 학교에서 해야 할 것들과 하지 말아야 될 목록을 수도 없이 당부시키며 미선이의 손을 꼭 잡고 초등학교에 입학시켰을 테고 학교에 아이를 보내 놓고도 물가에 어린아이를 내어놓은 것처럼 마음 졸이고 걱정되었을 것이며 결국 보통 학급에서 견디지 못하고 특수반으로 옮겼을 때는 미선이가 ‘특수’ 하지 않고 그저 평범하게 자라주기를 간절히 바라셨을 것이다. 미선이에서 현정이로 개명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겠지. 현정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는 것이 그 간절한 바람을 성취하는 데 한 줌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셨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에서 처음 고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 받은 수많은 문화 충격 중 하나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였다. 휠체어를 타고 학교 구석구석을 누빈다고 해도 장애 학생들이 가지 못할 곳은 없다. 교실과 복도는 물론이고 화장실과 계단 모두 몸이 불편한 장애 아동들이 최소한의 불편함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 공립학교마다 특수반이 따로 있고 그들의 학업 스케줄은 다르게 구성되어 있지만 '일반' 학생들이 그들을 대하는 태도는 대부분 성숙하다. 이상한 눈길을 주거나 조롱하는 듯한 태도는 보기 힘들다. 몸은 건강하지만 배움이 더딘 친구들을 위한 배려도 엄청나다. 학교마다 배치된 교육 심리전문가에게 진단을 받을 수 있고 결과에 따라 그 아이를 위한 팀이 꾸려진다. 상담교사, 언어치료사, 간호사, 담임교사, 부모, 학생이 함께 회의를 하고 경과를 지켜본다.


지금 미선이는 어디서 자기 자리를 마련해 살고 있을까. 한국 사회는 앞으로 태어날 고귀하고 소중한 생명체들, 수많은 미선이에게 발붙이고 적응할 곳을 내어줄 준비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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