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햇살

새얼백일장

by Caraish

생각해보면 난 어려서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다. 말수가 많지 않고 숫기가 없었던 나에게 말보다는 글로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편했다. 여름 방학 과제 중 그림일기, 독후감은 아무리 밀려도 나에게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었고 혼자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내 흥미진진한 소설을 써 내려가기도 했다. 다시 읽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지금 어디에 묵혀서 숙성되어 있으려나.


나의 국어 사랑은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들 눈에도 띄었는지 교내 여러 글짓기 대회, 국어사전 찾기 대회가 매년 주최될 때면 나를 추천하시곤 했다. 국어사전 찾기 대회라니.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법하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땐 그런 대회가 있었다. 현시대로 생각해보면 아마도 ‘구글링’ 대회쯤 되지 않을까 싶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 모든 것을 사전에 의존할 1990년대. 매년 최신 디자인으로 서점에 수두룩하게 찍혀 나오고 교실에도 하나씩은 꼭 여분으로 두었던 종류도 다양한 사전들. 국어사전 찾기 대회는 별것 아니다. 학급에서 한두 명씩 선수들이 모인다. 대회가 시작되면 초등학생들에게는 어려울 법한 낱말들로 채워진 종이 한 장씩을 받는다. 땡 하고 종이 울리면 얇디얇은 종이를 넘기며 모든 낱말의 뜻을 신속하고 정확히 찾아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속도로 다른 종이에 옮겨 적는다. 쥐 죽은 듯이 고요한 교실에는 홱홱 빠르게 사전을 넘기는 소리밖에 나지 않는다. 주어진 임무를 끝내고 제일 먼저 나가 답안지를 선생님께 넘기는 쾌감이란. 내가 실제로 상을 탔었는지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새얼 문예 백일장에 나갈 학생을 선출하는 과정도 아마 비슷했으리라. 4학년 각 반에서 글쓰기를 좋아하고 국어 점수가 나쁘지 않은 아이 중 한 명으로 뽑혀 방과 후 집합했다. 친구와 나란히 앉아 교실을 둘러보니 다들 눈에 익은 선수들이었다. 적어도 우리끼리는 그렇게 서로를 알아봤다. 이번 백일장을 맡으신 선생님이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셨고 선생님 눈은 우리가 아닌 책상에 수북이 쌓인 종이를 향하고 계셨다. 선수들이 여태까지 썼던 글짓기 샘플을 훑어보고 계신 듯했고 이름을 부르신 후 우리가 쓴 글에 대해 한 마디씩 짧고 굵게 코멘트를 남기셨다. 나름 선생님들께 칭찬을 받았던 터라 난 기대하는 마음으로 내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주예”.

“네.”

“글씨가 너무 작아. 더 크게 써.”


순간 기대와는 다른 말을 들은 난 쥐구멍으로 숨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훈련은 시작되었다. 새얼 문예 백일장은 매년 4월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해진 집합 장소에 모여 그날의 주제를 발표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주제와 관련된 수필을 작성해 제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글쓰기의 주재료인 주제는 당일이 되어서야 알 수 있으니 우리는 매일 방과 후 같은 교실에 모여서 다양한 주제로 글쓰기를 연습했다.


드디어 백일장 날이 되었다. 주중이라면 불가능했겠지만, 주말이라 엄마가 나와 같이 갔다. 4월의 맑은 토요일 오후였다.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 내려보니 이미 수많은 인파가 백일장 대회 장소를 향해 걷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중고등 학생 언니, 오빠들부터 엄마 손을 나란히 잡고 걷는 초등학생인 우리 선수들까지. 엄마와 잠시 작별 인사를 나누고 같은 학교 학생들과 선생님과 만나 잔디밭에 둘러앉았다. 곧 주제가 발표될 모양이었다. 주제가 발표되고 공원에 모인 수백 명의 학생들은 잔디밭에 제각각 앉아서 주어진 원고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아직 이른 봄이었지만 햇볕이 제법 따가웠다. 난 아직 방향을 잡지 못해 곰곰이 생각에 잠겼고 첫 문장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든 학생이 4월의 눈 부신 햇살 아래 초록빛 잔디 위에 앉아 조용히 턱을 괴고 생각하거나 집중해 글을 쓰고 있었고 그 순간 난 설명하기 힘든 소속감 같은 것에 사로잡혔다. 자발적이든 누군가에 의해 등을 떠밀려 이 자리에 왔든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각 같은 주제로 연필을 쥐고 흰색 원고지에 글자를 채우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이상하기도 했고 경이로웠다. 그리고 지금도 4월이 되고 햇살 좋은 날이 되면 그날의 광경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저만치 떨어져 있던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며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몇 시간 동안 날 기다렸을까. 지금처럼 스마트 폰이 있던 시절도 아닌지라 뭐라도 읽을거리를 가져오셨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그 자리에 모인 다른 엄마들과 담소를 나누셨을까. 그도 아니라면 그저 따뜻한 4월의 햇살 아래 몸을 담그고 일광욕하셨을 수도 있겠지.


지금 생각해 보면 수필에 대한 나의 애정은 그때 시작된 것 같다. 주제가 대부분 일상에 근거를 둔 소박하고 소소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작년 혹은 어제 일어난 일, 주변의 인물들, 매일 보는 일상의 물건들에서 재료를 찾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평범한 것들에서 의미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그 습관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고스란히 배어있다. 매일 물 흐르듯 지나가는 평범한 일들 속에 의미를 부여하기. 일상 속의 사건과 사건들 사이에 연결고리를 찾기. 어떤 이에게는 시간 낭비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모두 재미있는 일들이다. 이 모든 걸 글로 옮기는 건 더더욱 그렇고.


백일장이 끝나고 몇 주 후 소식이 왔다. 장려상을 받았다고 했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난 제대로 글을 마무리 짓지 못했고 씁쓸하다 못해 찝찝한 기분으로 그 공원을 엄마와 떠났다. 낯선 광경의 경이로움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는지, 제한된 시간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난 장려상을 받은 것만으로도 기뻤다. 말 그대로 ‘장려’하는 의미였으리라. 앞으로 계속 글을 쓰라는 장려. 계속해서 수필을 읽고 창작하라는 장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늘까지 난 계속 일기를 써오고 있다. 대학 시절까지는 직접 펜으로 내려쓴 일기장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말이다. 그때의 이름도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우리 선수들, 그리고 날 추천해서 그 잔디밭에 앉혀주신 선생님께 사뭇 감사하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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