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검지 손가락
어릴 적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에게 절친이 있었으니 바로 두 살 반 터울의 언니였다. 학년으로는 세 학년 차이가 났지만, 언니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하루 일과를 물밀 듯이 쏟아지는 학원과 과외 스케줄로 채우기 전까지는, 혹은 그 시기와 맞물려 언니가 사춘기에 접어들기 전까지 우리는 유년기의 수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동네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우르르 몰려다니며 셀 수 없는 술래잡기와 얼음땡을 했고 인터넷이 처음 대중에게 도입되던 시절 부피도 어마어마했던 큰 컴퓨터 앞에 돌아가며 앉아서 마리오 게임을 했으며 서로 머리채를 잡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그날도 아마 친구들과 같이 동네 여기저기를 바쁘게 뛰어다니며 한창 땀을 흘리고 있었으리라. 벽산 빌라.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와 같이 살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없던 빌라에 아마 일 층에 집을 구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입학 전 유치원 때 길어야 불과 1-2년을 살았던 곳이라 집 주변이 자세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집에서 정확하게 기억나는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첫째는 우리 바로 옆집에 상이 나서 옆집 아주머니께서 밤새 오열하셨던 것, 그리고 둘째는 바로 손가락 사고였다. 자세한 경위는 기억 속에 희미하다. 언니와 뛰어놀다 집에 와서 급하게 현관문을 열었다가 차마 도어록 반대쪽 문틀에 내 오른손이 끼어있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쾅하고 세게 닫았던 것 같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마어마한 양의 피가 오른손에 흐르고 있었고 온몸의 신경이 곤두세워져 있는 사이 손가락을 살펴보니 검지 손가락 첫마디의 반 이상이 잘려 나가 있었다. 잘못 건드리면 그대로 내 몸에서 아예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겁에 질려 울음도 잘 나지 않았다. 할머니와 언니가 보자는 걸 극도로 두려운 마음에 방으로 혼자 뛰어와 근처에도 못 오게 했다. 몇십 분이 지났을까. 일에서 놀라 뛰어온 엄마가 나를 데리고 근처 병원에 데려갔다. 손가락을 부분 마취하고 꿰매야 한다고 했다. 수속을 마치고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수술실에 들어가기를 기다렸다. 엄마와 함께 있어서 그랬는지, 어려서 상황 파악이 안돼서 그랬는지 몰라도 난 오히려 덤덤했고 엄마는 내 손가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임시방편으로 손가락 마디가 떨어지지 않게 반창고로 대충 감아놓은 상태였다. 고개를 돌려 엄마를 보니 엄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그 장면이, 엄마의 눈물이 쉽게 잊히지가 않는다. 엄마가 된 지금의 나는, 특히 워킹맘으로 아이들을 시설에 맡겨놓고 출근해야 했던 나로서는 그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뼈저리게 잘 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일하는 도중 아이들 데이케어에서 문자가 올 때면, 혹은 긴 미팅 후 셀폰을 봤는데 데이케어에서 부재중 통화가 와있을 때면 내 가슴은 여지없이 이미 쿵쾅쿵쾅 뛰고 있다. 이번엔 무슨 일일까. 어디가 아픈 걸까. 다친 데는 없는 걸까. 오늘은 정말 바쁜데 남편이 픽업 못 간다고 하면 어쩌지. 셀폰 락을 해제하고 문자를 확인하기까지 그 짧은 몇 초간 나는 벌써 이 수많은 질문들을 하고 있고 응급 상황을 대비해 상사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계산하고 있다. 일하다 말고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뛰쳐나와 병원에서 내 손가락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엄마는 아마도 미안함을 넘어선 죄책감에 사로잡혀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계셨을 것이다. 사실 엄마인 나는 잘 안다. 워킹맘이건 스테이홈 맘이건 사건사고는 예측할 수 없이 벌어진다는 것을. 아이와 같은 공간에 있어도 잠시만 눈을 떼면 벌어지는 게 사고이다. 하지만 워킹맘의 죄책감은 그와는 조금 더 농도가 짙다. 내가 아이와 같이 있었더라면 이런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시설에 보내지 않거나 연로하신 시어머니 옆이 아닌 내가 케어했다면 좀 더 재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과연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사건의 경과를 얘기하자면 다행히 부분 마취 수술을 잘 끝났다. 덕분에 난 누워서 가슴에 천막을 얹혀 놓고 고통은 없지만 꿰매는 느낌은 또렷이 느껴지는 수술을 경험해 보았다. 연신 아프냐고 괜찮냐고 물어보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수술대에 누워서 천장을 말똥말똥 쳐다보며 “네.”라고 무덤덤하게 대답한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상처는 아물었지만 꿰맨 과정에서 미미한 착오가 있었는지 오른쪽 검지 손가락 첫마디에 지금도 꿰맨 흉터가 선명히 남아있고 그 손톱도 삐뚤삐뚤 자란다. 물론 통증은 없을뿐더러 살아가는데도 지장은 전혀 없다. 다만 가끔 이 삐뚤삐뚤한 손톱이 눈에 들어오는 날에는 그날의 사고가 떠오르곤 한다. 엄마에게 말해주고 싶다. 엄마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아니 그 누군가의 잘못도 아니었으니 좁쌀만큼의 죄책감이라도 홀연 남아있으면 씻겨내라고. 나 이렇게 잘 크지 않았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