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경험한 쓴 맛
오래된 앨범에서 취학 전 아동 시절 사진을 보면 내 표정은 대부분 무뚝뚝하다. 웃음기 없이 무표정으로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옆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언니와 대조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난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입학 후 사진들을 보면 내 표정은 한결 밝아져 있다. 아니 말괄량이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학교라는 사회생활 공동체는 내가 맘껏 즐길 수 있는 놀이터였고 어린 나 자신이 돋보일 기회들이 곳곳에 있었다. 새 학기가 되면 선생님께 인정받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고 숙제든 체육 시간 피구이든 그밖에 활동이든 뭐든 열심히 했다. 같은 초등학교에서 입학과 졸업을 한 나는 줄곧 반장이든 부반장이든 학급에서 나름 중요했던 요직들을 담당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인기투표에서도 상위권 안에 들었다. 맞다. 다른 아이들이 보기에 충분히 재수 없었을 수도 있었으리라.
3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학교와 선생님들, 그리고 친구들. 모든 것이 완벽했다. 담임 선생님이 다른 반에 심부름을 시키실 때면 줄곧 나를 부르시고는 했고 음악 시간 공기 반 소리 반 리코더 불기의 일인자였던 나는 수행평가가 다가올 때면 다른 아이들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 시절은 또한 제2차 성장이 시작될 초반기 무렵이라 여자아이들 특유의 예민하고도 치열한 내면의 기싸움이 시작될 때였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 반에 새로운 전학생이 왔다. 얼굴도 예쁘고 이름도 예뻤다. 아직도 기억하는 이름, 유정숙. 정숙이는 첫인상 그대로 똑 부러지고 공부도 잘했으며 아이들과도 금방 친해졌다. 시간이 흐르고 정숙이는 더 주목을 받았다. 알고 보니 공부뿐 아니라 체육, 음악, 미술을 통틀어 전 분야에 못하는 게 없었고 리더십도 강했다. 나에게 몰리던 심부름은 정숙이에게 차차 배분되었고 아이들에게도 점점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위협 비슷한 긴장감 같은 것을 느꼈다. 물과 기름처럼 나와 정숙이는 쉽게 친해지지 못하고 서로 주위를 둥둥 흘러 다녔다. 물인 나는 기름인 정숙이를 견제했고 한동안 지속한 눈치 싸움이 지나고 마침내 정적에 이르자 난 깨달았다. 기름은 물 위에 유유히 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러던 어느 날 국어 시간이었던 것 같다. 아마 속담을 배우고 있었나 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라는 구절이 나왔고 담임 선생님은 숨겨진 뜻을 열심히 설명하셨다. 그 순간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나 혼자의 착각일수도 있지만 그 눈빛은 단순히 수업 시간 학생들을 훑어보시는 선을 넘어서 나에게 개인적으로 무엇인가를 말씀하시려는 눈빛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난 깨달았다. 아. 내가 박힌 돌이구나.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었구나.
그 당시 내가 경험했던 건 열한 살 짧은 인생을 살면서 최초로 느껴보는 씁쓸한 패배감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일상에서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그냥 나 혼자 정숙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했을 뿐. 화가 난 건 아니었다. 그저 질투심과 동경심, 그 중간 어딘가쯤의 복합적인 감정이었던 것 같다. 소심했던 나는 아마도 이런 감정들을 그냥 묵묵히 삭여갔다. 스스로 알아서 증발할 때까지. 오랫동안 박혀있던 자리를 내주었지만 난 또 그대로 굴러 굴러 다른 곳에 터를 잡았다. 원래 자리에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서 ‘굴러온 돌’을 바라보면서.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숙이에게 고맙다. 나에게 처음으로 선의의 경쟁자 역할을 해주었던 그녀. 당시엔 쓴 고배를 마신 거나 다름없지만, 다행히도 난 그때 정말 중요한 레슨을 배운 것이다. 세상에는 굴러다니는 돌이 참 많다는 것을. 나보다 뛰어난 이들은 정말 많다는 것을. 그렇다고 나 자신을 비하하거나 하찮게 보자는 것은 아니지만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내가 있는 자리에서 안주하거나 게으르게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사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우는 수두룩하게 많다. 새로운 동료는 나보다 분야 경험이 많고 새로 들어온 인턴은 갓 대학원을 졸업해서 신선한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똘똘 뭉쳐있다.
굴러온 돌이 박혀있던 나를 빼낸다면 기껏 자리를 내어주고 다른 곳으로 굴러가자. 새로운 흙에서 뒹굴며 새로운 돌들을 만나고 경험을 쌓고 깎이고 다듬어져서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고유성을 지니자. 어차피 한 곳에 오래 박혀있으면 모퉁이가 골고루 다듬어질 수 없고 바닥에 닿은 부분은 그대로 눌려 한 곳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법. 그렇게 가끔은 굴러온 돌이 되어보기도 하고 박힌 돌이 되기도 하다 보면 언젠가는 하나님이 나를 골라서 꼭 필요한 곳에 쓰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