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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거봉 Jan 05. 2022

[양거봉의 커머스생존기] #1

박스와 파렛트, 그게 뭣이 중헌디

2017년 3월 6일 clo 업로드 글

https://clomag.co.kr/article/2144


물류는 MD를 모르고, MD는 물류를 모른다

효율은 낮추고 비용은 늘리는 불통, 어디서부터 해결하나



글. 양거봉 미팩토리 물류팀장 / 정리. 엄지용 기자




이커머스 물류, 어떻게 다른가


불통의 시대다. 서로 목소리만 높이다가 목만 아프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회사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전통물류기업 한 곳과 두 곳의 이커머스 스타트업 물류팀을 거쳤다. 거기에서도 불통의 문제를 겪었다. 특히 이커머스 업체에서 일하면서는 MD(Merchandiser)와 자주 부딪쳤다.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언젠가 새로 시장에 뛰어든 몇몇 이커머스 스타트업 관계자와 물류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아무리 찾아도 물류에 대한 정보가 없다”거나 “물류에 관심은 있는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내가 직접 경험한 이커머스 업계의 물류는 교과서 속 물류와는 너무도 달랐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를까?


① 운송/하역보다는 포장/보관

이커머스 물류의 첫 번째 특징은 제품 생산 대부분이 위탁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제품 담당자가 생산업체와 미팅을 거쳐 제품을 주문하면, 제조업체가 생산된 제품을 생산지에서 창고까지 배송해주며, 이렇게 입고된 제품 대부분이 택배나 용달을 작은 단위로 출고되는 구조다. 때문에 이커머스 물류는 기본적으로 ‘운송’과 ‘하역’의 비중이 매우 낮으며, 대신 ‘포장’과 ‘보관’에 그 기능이 집중돼 있다.




② 고객만족과 마케팅 물류 지향

두 번째로 이커머스 물류는 자신만의 특화된 서비스를 통해 ‘고객만족’과 ‘마케팅’ 측면의 물류를 지향한다. 이는 기존 물류가 ‘비용절감’에 초점을 맞춘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때문에 월 5만 건 이상의 제품을 출고하는 대형 이커머스 업체 가운데서도 자사 물류를 수행하는 경우를 흔하게 목격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커머스 업체의 물류팀은 SCM(Social Chain Management)의 중간지점 이후의 업무를 주로 담당한다. 물류 입출고와 관련된 커뮤니케이션은 생산자가 아니라 중간단계의 MD를 통해 진행된다. 때문에 이커머스 물류팀의 실제 업무는 주로 MD파트와 협의 하에 이뤄진다. 그런데 MD와의 커뮤니케이션이란 게 참 어렵다.




커피가 그냥 커피가 아니듯


필자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대학 시절 교양과목으로 사회학을 들었다. 첫 강의 주제가 ‘커피’였다. 교수는 “여러분은 커피라는 단어를 보면 무엇이 연상되나요?”라는 질문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다양한 브랜드의 카페부터, 커피의 향, ‘이뇨작용’, 등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어느 순간이 되니 학생들의 대답이 뜸해졌다. 교수가 정적을 깨고 이야기했다.


“커피에 관한 여러분의 생각은 참 다양하죠. 이제 커피는 하나의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커피를 마시는 행위 자체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커피를 마신다’는 자신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즐긴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타인에게 커피한 잔 하자는 것은 개인적인 자리에서 소통을 요청하는 의미를 내포하기도 합니다.”


커피뿐만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제 밥 한 번 먹자.”, “술 한 잔 하시죠.”와 같은 말을 곧이곧대로 밥 먹자, 혹은 술 먹자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렇듯 사회에서 사용되는 발화에는 여러 의미가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특정 이슈에 관해 유관부서와 논의할 때 각 부서에서 하는 대화에는 업무에 필요한 여러 사항에 대한 요구가 함축돼 있다. 당연히 물류팀의 업무 요청에도 마찬가지다.


가령 물류팀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제품에 대한 입출고 정보를 공유할 때, ‘~톤 차량 몇 대’, ‘파렛트 몇 개’와 같은 말을 사용한다. 이 간결한 정보만으로도 업무의 사전 규모와, 업무와 관련해 준비해야할 사항을 파악할 수 있다.




파렛트 숫자가 왜 중요한가요?

언어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통용된다. 필자는 ‘트럭 몇 대’, ‘파렛트 몇 개’ 같은 언어가 이커머스 물류에도 통용될 것이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MD가 물류팀에 전달하는 정보와 물류팀이 MD에게 원하는 정보.


이커머스 업체는 그 특성상 월단위로 신제품을 출시한다. 신제품 출시 이후 MD는 제품의 입고와 관련된 내용 및 일정을 물류팀에 공유한다. 하지만 MD가 보내준 정보만으로 물류 업무를 준비하기에는 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필자는 한참을 고민하다 말했다. “몇 파렛트로 입고되나요?” 파렛트 수량을 알게 되면 대략적인 보관 용적과 입고예정 차량에 대해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유추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MD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제품 깔판 숫자가 왜 중요한가요?” 앞서 말했듯 커피는 그냥 커피가 아니다. 필자가 파렛트 개수를 물어본 것도, 단순히 깔판 몇 개가 들어오는지 궁금해서 한 질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MD는 이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MD의 대답에 필자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필자가 다른 이커머스 스타트업으로 회사를 옮기고 나서도 발생했다.




물론 이해는 된다. MD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제품 정보는 바로 ‘수량’이다. 제품 몇 개가 들어왔고, 몇 개가 팔렸으며, 또 몇 개가 남았는지가 중요하다. 이 모든 것이 비용과 실적에 관계된다. 잔여 수량과 새로운 판매 계획에 따라 발주 시점을 예측하고, 발주에 따른 비용협의 과정을 거친다. 때문에 MD는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수량에 관한 정보만을 물류팀에 전달하는 것으로 모든 할 일을 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박스가 왜 중요한가요?

하지만 반대로 물류팀에게 입고 수량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천 개든, 만 개든 그 숫자 자체는 실시간 재고현황에 뜨는 4바이트짜리 숫자 조각일 뿐이다. 오히려 물류팀에게 중요한 것은 ‘몇 개의 파렛트가 어떻게 입고되는가’이다. 입고 예정 파렛트의 숫자는 물류팀 입장에서 현재 필요한 적재 공간과 상하역 및 보관 장소를 선정하는 데 실질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박스 숫자도 마찬가지다. 물류팀은 박스에 상품 몇 개가 들었는지 자체는 궁금하지 않다. 하나의 아웃박스에 담긴 제품 수량과 박스 내부 여유 공간에 따라 제품의 관리방법이 달라지고 재고 단위와 사입납품 출고기준을 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물류팀은 MD가 제공한 불편한 정보에 불만을 느낀다. 제품이 입고되기 이전에 제품의 단위와 용적에 관한 사항을 이야기해줘야 하는 데 별 필요 없는 수량정보만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관련된 사례를 하나 소개하겠다. 언젠가 사전 공지 없이 제품의 입수가 달라진 적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박스 당 148개의 상품이 담겨있어야 하는데, 제조사가 납품 기한에 쫓기다보니 박스 당 96개의 상품만을 담아 입고한 것이었다. 박스 속 빈 공간이 커졌고, 박수의 수도 늘었다. 이후 물류팀에게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기존 입고 단위에 맞춰 지정해둔 입고 공간 외에 추가 적재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을 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148개에 딱 맞던 아웃박스 내부에 여유 공간이 생겨, 현장 운반 및 택배 운송 시 제품 파손에 대비해야만 했다. 이에 상당한 노동력과 시간이 들었음은 물론이다.


MD입장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다. MD는 평소처럼 2만 개를 발주했고, 물류센터에 입고했다. 하지만 물류팀 입장에서는 이로 인해 더 많은 작업이 진행됐고, 업무 오류 발생률이 높아졌다.



대화가 필요해

필자는 두 개의 스타트업을 거치며 실무자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파렛트와 박스’ 이야기를 하곤 한다. 물론 이 이야기를 통해 MD가 잘못했으니, MD의 일처리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쪽에서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른 한쪽에서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물류인에게 기초적인 부분이 물류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 입장에서는 어려운 일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서로 필요한 것을 요구하고 명확하게 정보를 주고받는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불통이 초래하는 부작용을 많이도 겪어왔다. 특히 회사에서의 불통은 비효율을 야기한다. 이 비효율은 곧바로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박스의 개수가 왜 중요한지, 파레트의 개수는 또 왜 중요한지 생각해보자. 소통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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