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제대로 쪼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여러분 꿀맛같은 추석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간만에 연휴를 맞아 저도 오늘 영화를 하나 보고 왔는데요.
개봉전부터 뜨겁게 광고했던 <밀정>입니다.
대한민국 장르물을 선도하는 김지운 감독과 송강호, 공유 두 주연에 이병헌, 박희순 카메오까지..!
'어머, 이건 꼭 봐야해!' 라며 벼르고 있었는데요, 일단 재밌게 잘 보고 왔습니다.
요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시대극이 참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과거를 재조명하고 애국심과 민족적 자긍심을 불어넣는 영화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는 것은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리더의 부재, 동력의 부재, 국가경쟁력의 부재 등등...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지 못한 부분들이
역사 속에서 고스란히 나타나 우리에게 꽂히거든요.
하지만 시대극은 관객의 관심을 자아내지만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만큼 진부해 질 요소도 많은데요, <밀정>은 적절하게 균형을 잘 맞춰내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무장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작년에 크게 흥행했던 <암살>과 시대적, 인물적 배경이 겹치는 부분이있습니다만 실존인물과 실존 사건에 모티브를 둔 <밀정>은 <암살>과 분명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밀정>은 의열단의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이라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일단 주연인 이정출(송강호)은 '황옥'이라는 인물로서 실제 조선인으로서 일본 경부까지 올라갔고 의열단과도 활동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어느 쪽 인물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기 힘들지만 이중스파이였다는 점만은 확실하다고 합니다.
또 다른 주연인 의열단의 행동대장 김우진(공유) 역시 의열단의 김시현이라는 실존 인물입니다. 독립운동과 수감생활을 반복하던 김시현은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자 이승만 암살이 진정한 애국이라 생각해 암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합니다. 아마 그 이유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이름을 찾기 힘들어졌죠.
정채산(이병헌)은 김원봉, 연계순(한지민)은 한계옥이라는 실존인물을 연기하는 것이구요. 김원봉이 사회주의자로서 광복 후 북으로 넘어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원봉과 의열단이 독립을 위해 희생했던 역사적 사실까지 우리가 폄훼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실제로많은 독립운동가 분들이 사회주의, 무정부주의자였고, 그분들로 인해서 큰 성과들도 많았었죠. 당시에 이념의 차이로 독립운동이 더 조직적이지 못 했던 이유를 단순히 사회주의 독립운동단체에만 물을 수도 없는 것이고, 어쨌거나 모든 독립운동가 분들의 목표는 이념을 넘어선조국의 독립이었으니까요.
<밀정>은 <암살>처럼 액티브한 영화는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상대에게 들키지 않으면서 원하는 정보만을 빼내려고 하는 밀정, 즉 스파이들의 이야기이다 보니
그 심리전이 주는 긴장감과 재미가 쏠쏠합니다.
단순히 이정출과 김우진의 심리전 뿐만 아니라 이정출의 후배이자 경쟁자로 나오는 하시모토까지 엮여
세 사람이 펼치는 첩보와 심리전이 영화의 클라이막스까지 쉬지 않고 이어집니다.
총격전이나 액션씬이 주는 긴장감도 분명 있지만 이 영화가 가지는 진짜 힘은 정적인 분위기에서 다이나믹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 같습니다. 치고 박고 싸우지 않는데도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치밀한 스토리 구성과 배우들의 연기력, 감독의 연출력이 어우러져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영화에서 이정출의 변절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100% 납득할만큼은 아니라는거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설득할 수 있는 장치들을 영화 내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약간의불완전한 개연성을 분위기, 연기, 연출로 극복해 냅니다.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에서도 입체적인 캐릭터를 능수능란하게 소화했던 송강호는 이번에는 오히려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입체파 연기를 선보입니다. 감히 3D 연기라고나 할까요? 양쪽의 연기는 물론이고, 그 중간지점의 고뇌까지도 아주 멋지게 표현합니다.
몇 년전부터 물오른 연기를 뽐내는 공유의 연기도 충분히 훌륭했지만,송강호의 캐릭터 난이도에 비하면 그 임팩트가 조금 약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차분하고 치밀하게 움직이는 의열단원으로서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송강호, 공유 두 주연 못지않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배우가 바로 이병헌이었는데요, 김지운 감독과 <달콤한 인생>, <놈놈놈>, <악마를 보았다> 등 굵직한 필모그래피를 만들어 온 이병헌이 이번에는 의열단장 정채산으로 특별출연 했죠? 짧지만 강렬한 임팩트, 존재감 압살... 독립, 술, 성공적.
사실 극에서 이병헌의 출연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정채산이라는 존재 때문에 그나마 스토리의 개연성이 탄탄해진 부분은 있습니다. 이병헌, 송강호, 공유 세 명의 배우가 펼치는 원탁의 모닝음주 씬은 아마 이 영화에서 가장 편하면서도 상징적인 장면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박희순(김장옥 역)이 오프닝 시퀀스에 나온 것도 매우 좋았습니다. 박희순 특유의 긴장감 유발 연기 덕분에 쉽게 몰입될 수 있었으니까요. 뭐, 개인적으로 박희순을 좋아하는 것도 있긴 합니다만...ㅎㅎ
<밀정>은 또한 BGM들이 크게 한 몫을 담당합니다. BGM을 들으면서 영화 <킹스맨>이 생각이 났는데요, 장면과는 조금은 상반되는 듯한 음악들이 자주 나오면서 오히려 인물의 심리를 극명하게 대비시키거나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더군요. 특히 파티장 폭파씬에서의 BGM은 정말 굿초이스였던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조금 아쉬웠던 부분을 말하자면, 클라이막스 이후에는 긴장감이 급격하게 줄어든다는 점입니다. 런닝타임이 140분인데, 소설의 5가지 단계(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중에 절정과 결말 사이가 너무 길어 막판에 좀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30분은 거의 이정출 혼자서 극을 끌어가기 때문입니다. 김우진, 하시모토와 2명, 3명이 함께 만들어내던 분위기와 긴장감을 이정출 혼자서는 만들어 낼 수 없으니까요. 지금보다 10분만 더 짧았더라면 보다 밀도있는 구성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한국영화들의 퀄리티가 많이 높아졌습니다.
역사극, 시대극에서도 단순히 애국심과 민족적 자긍심만에 기대려고 하지 않으며, 어설픈 눈물짜내기 감동코드를 넣지 않으면서도 스토리, 연기, 연출로 관객에게 충분히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고 있으니까요. 앞으로도 이런 영화들을 더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지운 감독, 송강호, 공유, 이병헌... 명불허전 <밀정>이었습니다.
(5개: 재미+작품성=어머, 이건 꼭 봐야해!)
(4개: 작품성or재미=딱히 싫어하는 취향이 아니라면 보면 좋을 영화)
(3개: 무난하게 볼 수 있는 킬링타임용)
(2개: 취향을 심하게 타거나 굳이 안 봐도 될...)
(1개: 왜 만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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