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 위의 삶
두려움을 모르는 알프스 등반가 울리 슈텍과 다니 아르놀트.
스위스 알프스 북벽 등반 신기록을 놓고 죽음만이 끝낼 수 있는 경쟁에 돌입한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23년에 공개된 작품이지만, 나는 최근에야 넷플릭스에서 《Race to the Summit》을 봤다.
다큐멘터리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초반 울리 스텍과 다니 아르놀드의 현란한 교차 편집을 보고선 잠시 영화인 줄 착각했다.
그래서 처음엔,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끝까지 보고 나서 느낀 건 다르다.
이 작품은 단순한 “누가 더 빨랐는가”를 보여주는 다큐가 아니다.
우리가 등반이라는 행위를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가, 그 이면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알피니즘은 본질적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산을 오르는 고독한 여정이다.
같은 루트를 오르더라도
날씨, 눈 상태, 체력, 장비, 마음가짐…
그 어떤 것도 완전히 같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산을 바라보는 ‘내면의 태도’는 언제나 다르다.
하지만 이 다큐는 그 고독한 여정을
‘시간’, ‘기록’— 즉 경쟁의 언어로 보여준다.
속도, 순위, 세계기록, 최초, 최단… 이런 말들로.
현대 산악문화는 어쩌면 이런 아이러니에 빠져 있다:
우리는 등반을 ‘기록’으로 기억하고,
대중은 ‘경쟁 서사’에 열광하며,
미디어는 그걸 소비 가능한 이야기로 만든다.
울리 스텍 역시 그 흐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등반을 지속하기 위해 미디어와 타협했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 자기 철학과 스타일에 집중한 등반가였다.
반면, 다니 아르놀드는
그 '기록의 시대'를 철저하게 받아들인 인물이다.
GPS, 사진, 영상… 모든 걸 남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기 존재를 증명한다.
울리 스텍은 ‘스위스 머신’이라 불리며
압도적인 스피드와 고독한 단독 등반으로 명성을 쌓았다.
그러나 2013년, 그의 안나푸르나 남벽 단독 등정은
증거 부족으로 큰 논란을 낳았다.
정상 사진도, GPS 기록도, 목격자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해명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I know I was there. I don’t care what people believe.”
"나는 내가 올라갔다는 걸 안다. 사람들이 뭘 믿든 상관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리고 2017년, 에베레스트에서 훈련 중 추락사하며 세상을 떠났다.
등반은 증명되지 않았지만, 누구도 그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반면 다니 아르놀드는 그의 발자취를 밟아가며 하나씩 기록을 경신했다.
마터호른, 그랑드조라스, 아이거…
하지만 그는 울리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모든 걸 증명 가능한 방식으로 남긴다.
그는 ‘증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알피니스트이다.
"Race to the Summit"은 단순한 “누가 더 빨랐는가”를 묻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등반에서 정말 중요한 건 기록일까?
증명되지 않은 위업은 무의미한가?
우리는 왜 산을 오르는가?
울리는 질문만 남긴 채 떠났고, 다니는 그 질문을 안고 살아간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쟁이라는 서사가 없었다면 이 다큐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경쟁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등반의 본질’을 다시 묻게 된다.
"Race to the Summit"은 단순한 클라이밍 다큐가 아니다.
이건 산을 오르는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이며,
경쟁과 증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알피니스트들의 초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하고, 기록하며, 증명하려 한다.
경쟁하지 않기 위해 산에 오르는 이조차, 어느새 경쟁의 그림자 아래 서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조용히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왜, 이 길을 오르고 있는가?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뒤
느꼈던 점을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분명 나를 위해 기록을 시작했지만,
때로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경쟁하지 않으려는 마음 한편에서
다른 이와 자신을 비교하는 나를 마주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나는 왜 산을 가고, 기록을 남기는지.
이 기록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 물음에 자신있게 대답하려면
아직은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
알피니스트로서 SNS를 통해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그리고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은지를 고민하고
자신만의 철학을 세우는 것.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차세대 알피니스트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