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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드고릴라 Apr 01. 2020

[인터뷰②] 충분히 혼자일 수 있는 사람으로서

카드 리뷰를 넘어, 카드를 사용하는 사람을 인터뷰하다
카드 사용자를 직접 만나는 월간고릴라 인터뷰 코너. 그들이 내민 카드 너머에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카드고릴라 에디터 안순호(Editor WHITE)를 만나다.


>> 월간고릴라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안순호’로서 : 번아웃 & 버닝


Q  이제 에디터 WHITE가 아닌 ‘안순호’로서의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실제 안순호는 어떤 사람인가요. 회사에서의 모습과 혼자, 혹은 친구들이랑 있을 때의 모습이 다른 편인가요.


A  입사 초기에는 많이 달랐어요. 의식적으로 다르게 가져가고 싶었죠. 어느 정도의 심리적 거리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제 진짜 모습을 거의 안 보여줬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때보다는 많이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연차가 쌓여서 편안해진 것도 있고, 생각이나 성향의 변화도 있었어요. 이전에는 업무적인 관계는 딱 그렇게 가자, 이게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지금도 선을 지켜야 한다는 건 변함없는데 그 범위를 좀 더 넓혀도 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내 독서모임도 하고 있고요. 몇 년 전 생각이 그대로였다면 아마 안 했을 거예요. 독서모임은 단순히 사적인 시간을 내서 모인다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을 나누는 과정에서 자기를 많이 드러내게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제가 독서모임을 하게 됐다는 건 한 발을 크게 내딛은 거죠.


Q  마케팅팀 내에서 부장님이라는 칭호(?)를 획득했어요. 많이 오픈했다고 했는데 그러면 부장님이 실제 모습이라는 말이 되나요(웃음). 별명은 마음에 드는지 궁금합니다.


A  갑자기 그런 부분이 나와서 약간 당황하긴 했어요. 그 별명에 당황한 게 아니라 팀원들이 제 모습을 그 정도까지 드러내게 했다는 게. 친구들을 만나도 자주 보여주는 모습은 아니거든요. 별명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네요. 그냥 아, 그런가보다(웃음). 기분이 나쁘진 않고요. 오히려 팀원들이 생각보다 더 재밌어 하는 것 같아서, 그래 재밌으면 됐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Q  독서모임 하니까 생각이 나는데요. 오늘 점심시간에는 대체 무슨 책을 읽다가 그렇게 꿀잠을 잔 건지. 펼쳐 둔 책이 무색하게 엎드려서 자는 모습이 메신저 단체방에 공유되어 한바탕 웃음을 불러일으켰죠.


A  잔 게 아니에요. 집중을 위해 휴식을 취한 겁니다. 10분 정도 집중해서 책을 읽기 위해 30분 정도 잠을 잔 것뿐이죠.


Q  10분의 독서를 위해서는 30분의 잠이 필요하다, 굉장한 철학인데요. 그렇게 집중해서 10분만 읽고 싶었던 책의 정체는 무엇인가요.


A  <마케터의 문장>이라고, 마케터로서 갖춰야 할 글쓰기 역량에 대해 쓴 책이에요. 괜찮다고 해서 한 번 읽어보고 있어요. 이미 아는 기본적인 내용도 많은데, 그 가운데 하나씩 알맹이들이 있더라고요. 다 읽고 우리 팀원들에게 공유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업무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시간을 쓰려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어요. 엄청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지만요(웃음). 실천하기는 어려워도, 마음은 늘 가지고 있죠.


Q  업무적인 성장, 햇수로 4년차 직장인이니 필연적으로 가지는 고민일 것 같아요. 에디터라는 직업은 앞서 언급했듯 믹서기처럼 뇌를 돌려가며 계속 글을 써야 해요. 소진되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가요. 나는 번아웃이 왔다 vs 안 왔다, 어느 쪽인가요.


A  번아웃의 기준을 고통받는 기간으로 본다면, 아직 안 온 것 같아요. 짧게 짧게 지칠 때는 있었는데, 그게 오래 가진 않았거든요. 고통의 깊이를 얘기하는 거라면, 사실 그것도 아직 안 왔어요. 지금까지 그렇게 깊게 괴로웠던 적은 없었어요. 결론적으로는 아직 안 왔다, 네요. 기간이든, 깊이감이든.


Q  사실 번아웃의 개념을 특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모두에게 다 동일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니까요.


A  근데 저는 번아웃에 대한 약간의 호기심이 있어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변화의 계기가 될 것 같거든요. 극복을 하든 못 하든. 번아웃 때문에 지쳐 나가떨어진 후에 정신을 차리면 다른 길에 들어서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평소라면 걱정이나 두려움 때문에 도전하지 못했던 어떤 길 위에요. 그래서 번아웃에 대한 양가감정이 있어요. 두렵기도 하면서, 언젠가 한 번쯤 오면 나는 어떻게 될까 하는.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좀 미쳤다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런 생각 덕분인지 번아웃이 두려워서 주저하지는 않아요. 더 열심히 쏟아 붓고, 달려갈 수 있는 것 같아요.


Q  번아웃까지는 아니어도 잠깐잠깐 지칠 때 회복하는 힐링 방법이나, 개인적으로 나를 챙기기 위해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요.


A  찾아가고 있어요. ‘나를 챙기는 법’이 제 요즘 화두예요. 결국 자기 자신을 챙기려면 일단 혼자가 되어야 하더라고요. 남이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신경을 쓰게 돼요. 그래서 저는 필요할 때는 일부러 환경적으로 저를 혼자 둡니다. 그러다가 너무 지루해져서 가끔 친구들을 만나면 그게 또 기분전환이 되고 힐링이 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나를 챙기기 위해서는 혼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새 혼자 즐길 수 있는 취미생활에 계속 도전하고 있죠. 최근에는 운동이 그래요. 혼자 끙차끙차 하다 보면 ‘나’에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힐링하고 싶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데 전혀 회복이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일단 혼자가 되어 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Q  그러면 하루 중에 제일 위로 받는 시간, 마음이 편안한 시간은 언제인가요. 운동을 할 때일까요.


A  운동을 하고 나왔을 때요. 물론 운동을 할 때도 힘들지만 재밌는데, 운동을 마치고 샤워하고 나온 순간. 그 시간이 굉장히 뿌듯해요. 퇴근을 하고 가니까 끝나면 좀 늦은 밤이 되거든요. 가뿐한 몸으로 어둑해진 하늘을 보면 하루를 알차게 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Q  최근에 가장 힘들었던 일과 가장 좋았던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혹은 가장 기대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A  힘들었던 일… 생각이 바로 안 나는 걸 보니까 없었던 것 같아요. 기대되는 일은 있어요. 새로운 인연이요(웃음). 이제 홀로 있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혼자 있어도 부족하지 않을 때 사람을 만나야 건강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요새 저 스스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일상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런 측면으로 기대감이 있죠.


Q  미래에 대한 고민이나 걱정보다 기대가 더 커 보여요. 회사에서도 요즘 편안하고 안정적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요.


A  고민은 없을수록 좋죠. 사실 옛날에는 완전히 그런 타입이었어요. ‘사서 걱정을 한다’ 그게 바로 저였죠. 그런데 사람이 간절하면 변하더라고요. 제가 너무 괴로우니까, 이렇게 살고 싶지 않으니까, 없던 방법도 찾아내 가면서 변하려고 했어요. 의식적으로요. 요즘은 좀 안정기에 접어든 것 같아요.


Q  올해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요.


A  얼마 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목표가 오히려 나를 제한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는 말이요. 예를 들어 내가 회사에서 어떤 성과를 보여주겠다는 게 목표라면 그 외적인 것은 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는 한 할 수 없겠죠. 개인적으로 책을 내 보겠다, 무슨 활동을 해 보겠다, 같은 다른 도전들이요. 그래서 예상치 못한 경험이나 생각지도 못한 도전을 하고 싶다면 목표를 설정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는데, 어느정도 공감해요. 회사에서 성과를 내서 내 가치를 올리는 건 직장인으로서 가지는 기본적인 목표라고 생각하고, 그 외에 더 큰 목표를 말하라고 한다면.. 사실 잡지 않았어요. 다만 돌발적인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긍정적인 쪽으로요.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재밌는 일들, 뭔가 ‘삼천포로 빠지는’ 그런 일들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아, 올해 안에 연애는 꼭 하고 싶네요(웃음). 아무튼 그런 기대가 있습니다. 일이든, 사랑이든, 다른 어떤 것이든.


Q  마지막으로 가벼운 질문을 하나 해 볼게요. 안순호의 TMI를 하나 말해준다면.


A  TMI요? 너무 많은데… 이게 제일 어려운 질문인데요. 뭐가 있을까요. 아, 이번에 아이폰이 새로 나오면 무조건 바꿀 거예요. 그 때를 위해 할부가 되는 신용카드를 유지하고 있죠. 옛날처럼 작은 크기로 나온다고 했었는데 요즘 아니라는 얘기가 돌아서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어쨌든 바꿀 거예요. 와, 진짜 TMI네요(웃음).


Q  진짜 마지막으로, 나(안순호)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A  “흔들리지 말자.”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지만요.


좌우명과 요즘의 화두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는 최선을 다해서 보내고, 앞으로 펼쳐질 일들을 기대하고. 충분히 스스로에게 집중하면서 나를 챙기고, 그 이후에 타인과의 새로운 관계를 맞이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가운데 그가 반갑게 맞이하게 될 ‘돌발적인 일’이 과연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GO

                                                GO


글, 에디터 PEA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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