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손의 디자이너
1. 온 세상이 도화지였던 시절
세상이 온통 도화지였다.
돌담이든 시멘트 바닥이든, 색이 나오는 돌만 있으면 만족했다.
흙마당에 인형을 그리고 꽃을 그리며 혼자서도 긴 오후를 보냈다.
가장 선명하게 남은 기억은 인형 옷을 만들던 밤들이다.
엄마가 소중히 간직하시던 초록색 벨벳 천을 몰래 꺼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수 시간 동안 바느질을 했다. 상상 속의 타이트한 원피스를 완성하기 위해 비뚤어진 솔기를 뜯고 또 뜯으며 손톱 밑이 빨개지도록 밤을 지새웠다.
마침내 내 손끝에서 하나의 작품이 탄생했다. 선물 받은 마른 인형에게 입혔을 때, 옷이 완벽하게 들어맞던 그 순간. 그 벅찬 만족감은 어린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종이 인형도 마찬가지였다.
목 부분이 너덜거려 풀로도 감당이 안 되면, 직접 새 인형을 그리고 색을 입혀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다.
내가 디자인한 옷과 핸드백과 모자와 빨간 구두와 하얀 카라 양말까지 신긴 종이인형에게 집까지 만들어서 기어이 입주시켰다.
침대와 응접실이 근사하게 갖춰진 이층 집. 단칸방에 살던 꼬마는 종이 인형에게만큼은 자신이 꿈꾸던 그 넓은 집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 안에서 나는 누구보다 자유롭고 당당한 디자이너였다.
2부. 빼앗긴 상장, 묻어둔 꿈.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을 거다.
담임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마치 점심 메뉴를 주문하듯 통보했다. "이번 그림대회에서 네가 상을 받아야 하는데, 이번엔 양보해야겠다"
'학교에 기부금을 많이 내는 집 아이' 에게 내 상이 넘어갔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린아이에게는 그렇게 말해도 된다고 생각하셨던 걸까. 그 한마디가 상흔이 된다는 것을, 꿈을 꺾을 수 있다는 것을, 정말 모르셨던 걸까.
어린 나는 그렇게 세상의 불합리함을 내가 허락하지 않은 '양보'라는 이름으로 배웠다.
내게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잊기로 했다.
그리고 그림 그리는 일은 돈이 필요한 일이라고 선을 그어버렸다.
하지만 그림은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미술 시간이면 여전히 즐거웠고, 툭툭 잘 그려냈다.
사생대회로 산에 올라 풍경화를 그리던 날들, 더 높이 올라가면 더 멋진 풍경을 그릴 수 있을까 더 오르고 올라 자리를 정하고 겹겹이 쌓인 능선의 색깔을 조절하며 완성한 그림이 학교 복도에 걸리던 날들.
준비물이 부족해 친구들 재료를 얻어 쓰며 어설프게 마무리하곤 했지만, 미술 점수는 항상 '수'에 가까웠고, 몇몇은 지금도 나를 ‘그림 잘 그리던 아이’로 기억한다.
나와 상관없다고 외면하려 했지만, 그 꿈은 내 속에 여전히 숨죽인 채 살아있었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준비물을 챙기는 일이 점점 버거워졌고, 그 버거움은 사랑했던 색채들로부터 서서히 멀어지게 했다.
정말로, 미술은 돈이 많이 필요한 일이었다.
널 잊고 간 그 아이도 얼마나 잠 못 이루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