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그리던 고사리 손이 화투를 집어든 사연

흉내 낼 수 없는 우리 만의 빛깔

by 에스더리


3. 6학년, 나일론 머리카락과 숙제 지옥

열세 살,

6학년의 삶은 황당하게 고단했다.

담임 선생님은 우리를 수험생으로 착각하신 것이 틀림없었다.

며칠에 한 번씩 과목당 문제를 50개씩 만들어내야 했다. 새벽에 일어나 울며불며 문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문제지를 짝과 바꿔 풀게 하셨다.


눈을 비비며 채점하던 어느 날, 내 짝이 적은 답을 보고 배꼽을 잡았던 일이 잊히지 않는다.
"질문: 우리 머리카락의 성분은 무엇일까요?

답: 나일론"
그 황당한 답에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우리는 매일 산더미 같은 과제에 치여 '판다' 눈으로 다니곤 했다.

4. 돌공장 단칸방의 알록달록 그리움

심지어 점심시간에도 마냥 밥 먹고 놀 수는 없었다. 학교 옆 친구 오빠의 돌공장 사무실, 거기에 딸린 조그마한 방. 그곳이 아지트가 되었다.


단지 화투가 있었을 뿐이고 집어든 순간 빠져버렸다.
세명은 화투를 치고 2 명은 숙제를 했다.

그렇게 돌아가면서 몇 판을 치고 나면 숙제도 하고 놀기도 하면서 점심시간이 끝난다.


어린 내게 화투는 도박이 아니라 색채의 향연이었다.

손에 촥 감기는 플라스틱의 단단한 질감, 딱딱 내리칠 때의 찰떡같은 소리. 청단과 홍단의 강렬한 대비, 쌀알 같기도 하고 아카시아 잎사귀 같기도 한 섬세한 문양들... 특히 잎사귀 옆에서 저속비행 하는듯한 종달새 문양이 좋았었다.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에 화투장들이 멧돼지처럼, 혹은 붉은 단풍처럼 둥둥 떠다녔다. 그 선명한 원색들은 무채색 같던 숙제 지옥 속에서 내가 붙들 수 있었던 가장 화려하고 재미있는 해방구였다.


오후 시간에 수업받는 것은 더 피곤하고 고단한 일이었다. 졸음을 쫓고 수업을 피하기 위한 도피처로 얼떨결에 합창단에 들어갔다. 화투장의 종달새를 생각하며 꾀꼬리 같이 노래를 불렀다.
그게 사실은 더 피곤했다.


5. 버스 바닥에 쏟아진 비밀


중학생이 되어서도 화투사랑은 이어졌다. 결국 화투장이 내 손에 들어왔다. 책가방 속에 항상 넣어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가방 안의 화투장이 버스 바닥으로 후두두둑 쏟아지고 말았다.


어른들의 혀 차는 소리, 모르는 사람인 척 고개를 돌리던 친구들. 얼굴이 타들어 갈 듯 화끈거렸지만, 나는 그 화투장들을 한 장도 남김없이 다 주워 담았다.

부끄러움보다 그 화려한 무늬들을 잃어버리는 것이 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후다닥 버스에서 내리는데, 모른척하던 친구들이 쏜살같이 함께 내렸다.

내리자마자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대로 빵 터졌다. 목이 빨개지고 눈물이 맺힐 정도로 한참을 깔깔거리며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6. 눈탱이 아주머니와 핫도그의 시간.

수업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눈빛이 별처럼 초롱초롱 살아났다.
그 별 같은 눈빛으로 어김없이 학교 주변 분식집으로 향했다.


주인아주머니는 며칠에 한 번씩 항상 눈에 푸르스름하게 멍이 들어 있었다. 그때는 사실 가정폭력 같은 거는 크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끼리 눈탱이 아줌마라고 불렀다.


눈에 멍이 들은 날은 유독 힘들어하셔서 우리가 장사를 도왔다. 핫도그도 튀기고 오뎅도 튀겼다.
지글대는 기름 소리와 우리의 경쾌한 웃음소리가 섞이던 그 오후의 일들.


어른이 된 지금에야 아주머니의 눈가에 서린 고단함이 얼마나 깊은 상처였을지 짐작하며 뒤늦은 죄송함을 전한다.
그래도 아주머니는 늘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셨고 튀김 자리를 내어 주셨다.


매퀘하고 니글거리는 기름 솥 앞에서 우리의 웃음소리를 끝없이 튀겨내던 날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색 속에 살고 있었음을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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