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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타 Apr 05. 2023

[영화리뷰-#1] 「길복순」

# 규칙과 모순에 관한 이야기

*이 리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 

- 선 영화 감상 & 리뷰구독 추천 

 

■ 작품개요

 장르: 액션(?) / 러닝타임:137분 / 등급:청불 / 감독극본:변성현 / 출연:전도연 설경구 김시아 이솜 구교환 


  3월 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길복순」에서 화려하고 시원-한 액션을 기대했다면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겠다. 영화 초반부에 오다 신이치로(특별출연: 황정민)와의 액션씬, 그리고 인상적인 예고편으로 꽤 화제가 되었던 MK 유망주 인턴(이연)과의 대결씬은 허를 찌르는 전략이 더해져 꽤 흥미로웠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는 한희성(구교환) 등과 친한 동료들에게 청부 살해당할 뻔했던 장면과 복순의 스승이자 MK 대표 차민규에게 '피 묻은 칼'을 보내 목숨을 대결씬이 배치되어 있다. 적당한 분량에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액션 장면은 OTT로 단련된 마니아들의 눈높이를 맞추기에는 다소 역부족한 수준일 수 있다.

  영화 「길복순」은 장르가 액션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그다지 액션에 힘을 줘서 만든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에서 액션이란 복순의 딸 재형과의 식사시간에 항상 빠지지 않는 '햄구이' 같은 것이다. 몸에 나쁘지만 딸이 좋아하는 햄을 어쩔 수 없이 식탁에 올려놓고선 시금치 나물이 담긴 접시를 슬쩍 재형에게 가까운 쪽으로 자리바꿈 하는 엄마 길복순의 마음처럼, 맛있고 자극적인 액션을 미끼로 써서 그다지 맛은 없지만 건강에 이로운 무언가를 제공하려 함이 아니었을까.


  영화 「길복순」을 관통하는 주제를 간단히 두 단어로 요약하자면 '규칙'과 '모순'이다. 영화의 도입부에서부터 복순은 자신에게 배정된 작품을 시나리오대로 처리하지 않는다. 호텔에서 무방비 상태로 잠들어 있던 오다 신이치로를 그냥 죽여버리면 간단할 임무를 굳이 번거롭게도 공사현장의 도로까지 데려와 정당한(?) 대결을 펼친다. 복순은 또 총리 후보자 아들의 부정입학에 대해서는 '자기 새끼 좋은 대학 보내고 싶은 건 당연한 거지. 지들은 안 그럴 거 같아?'라고 말한다. 이러한 일련의 언행을 통해 길복순이 규칙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반대로 복순은 규칙에 매료되어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MK 최고의 킬러다.

  경찰이자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가정폭력 가해자였던 복순의 아버지가 자살로 위장된 청부 살해를 당하려던 그날, 수업을 째고 집에 일찍 귀가한 복순은 '업무중'인 킬러 차민규와 조우한다. 킬러의 규칙대로라면 목격자는 반드시 죽여야 했지만 어린아이는 죽이지 않는다는 또 다른 규칙은 상황적 모순을 만든다. 때문에 딜레마에 빠진 민규에게 복순은 규칙은 명확해야 한다며 '어리다'는 모호한 단어 대신 미성년자라는 명료한 기준을 제시한다. 동시에 복순의 아버지가 천장에 목이 매달린 채 힘겹게 발끝으로 디딛고 있던 의자를 힘껏 걷어차 버린다. 이로써 민규를 도리어 살인의 목격자로 만들어 버리면서 규칙이 상충하는 

모순을 간단히 파훼해 버린다.


■ 규칙 

 혼잡하네. 이거 규칙대로만 하면 금방 맞추는데...


  차민규의 말처럼 규칙은 Rubik's cube를 맞추는 것과 같이 혼잡한 상황이나 문제를 신속하고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규칙은 다양한 선택지 앞에서 고민할 시간을 줄여 주고 행위에 대한 일관성과 정당성도 마저도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규칙이 일정기간 제도권에서 자리를 잡게 되면 당연한 불문율이라는 권위가 생긴다. 신성한 규칙에 감히 '왜'라는 질문이나 의심을 하는 자는 신성모독의 죄명으로 폭력적인 박해를 당하기도 한다(신상사가 그랬던 것처럼). MK의 대표 차민규는 규칙 없이 혼잡한 살인업계를 정비하고 업계 종사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규칙을 제안한다.


첫째, 미성년자는 죽이지 않을 것                                 
(후반에는 '건들지 말 것'이라고 변경됨)

  킬러라는 직업을 고려했을 때 '건들지 말 것'이라는 말은 결국 죽이지 말 것이라는 의미도 포함되는 것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명확하지 못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규칙을 정한 민규는 영화에 나오는 미성년자 모두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민규의 동생인 차민희 이사(이솜)와의 선 넘은 부적절한 장면들과 복순의 딸 재형(김시아)의 친부가 민규일 가능성이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미성년자를 건드렸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생긴다. 복순과의 대결을 앞둔 상황에서 민규는 굳이 자신의 딸 '재형'을 건드려 전화를 걸고, 노트북을 보내 복순이 실제 어떤 사람인지를 폭력적으로 노출시킨다.

둘째, 회사가 허가한 작품만 할 것 

  차민규가 두 번째 규칙을 말하는 동안 먼발치에서 지루한 듯 하품을 하고 있는 한희성(구교환)이 앵글에 잡힌다. 이 장면은 그가 무허가 작품에 손을 댈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복선이다. 한희성이 아버지 병원비를 어떻게 모았는지 이야기하려 할 때 복순이  '내가 신경 쓸 일이면 안 들을래.'라고 했던 것으로 보아 복순도 이런 상황을 대강은 알고 있지 않았나 싶다.

셋째, 회사가 허가한 작품은 반드시 트라이(애를 써서 이루려 하다)할 것 

   여기서 말하는 Try는 주어진 임무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하기보다는 본인이 가진 역량을 총동원하여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MK는 등급에 따라 분류된 작품들을 역시 등급에 맞는 직원들에게 작품을 제안하여 킬러가 스스로 선택하게끔 하는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다. 자유롭게 시나리오를 읽어보고 작품을 선택할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거부할 수도 있는 것 같다. 다만 본인이 작품을 선택한 후, 회사의 허가가 떨어진다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세 번째 규칙이 언급될 때 고개를 사선으로 삐딱하게 돌리고 민규를 바라보는 복순 역시, 배정받은 작품의 실패를 암시하는 복선이다. 

 넷째(?) 신성한 회의 중에 장비 꺼내지 말 것

   작은 회사를 새로 개업한 신상사는 살인 따위에 규칙을 정하는 것이 썩  달갑지 않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이 규칙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으리라는 '의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 회사의 보스들은 이 규칙이 스스로의 목을 죄어 온다는 사실을 인지하긴 했지만 아무도 감히 면전에서 MK 대표 차민규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이미 이 규척으로 작은 회사들의 손과 발이 잘려나가 MK에 대항할 수 없을만큼 쇠락해졌기 때문이다.

  신상사는 차민규가 MK의 직원이 무허가 작품에 손을 댔다면 목을 내놓기로 했던 약속을 기억하고 테이블 위에 칼을 올려 둔다. 신상사는 이 모순적인 상황에서 차민규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싶어 비죽거렸다. 그러나 차민규는 조금도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 애초부터 그는 자신이 '곧 규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규칙을 어길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신상사가 테이블에 올려둔 칼을 맨손으로 쥐고 간단히 그를 제압한 후, 규칙에 종속되어야 하는 객체(회의장에 있던 작은 회사들의 보스)들을 향해  '방금 막 생각한' 네 번째 규칙을 더해 일갈한다.  

  또 합리적 의심이 있으신 분, 계십니까?
혹시 또 제 목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저한테 피 묻은 칼을 보내주시죠.


■ 모순 


  규칙은 무질서한 세상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불필요한 갈등과 혼란을 예방하고 구성원들이 조화롭게 상생할 수 있는 혁신적, 민주적 산물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이면에서는 그 권위에 힘입어 약자를 손쉽게 제압하고 공포를 주입하는 독재적 수단으로도 이용될 수 있다. 그에 더해 규칙에 대해 감히 질문하거나 의심하며 번쩍 든 손목은 정당성의 이름으로 썰어버릴 수도 있다. 권력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규칙은 피지배자들이 스스로와 서로를 통제하며 감시하는 편리하고 효율적인 지배의 수단이다. 게다가 민규나 복순과 같은 권력자는 이러한 규칙 바깥에 설 수 있는 '예외'의 특권을 지니고 있다. 그 둘은 자신이 지닌 힘을 이용해 언제든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지만, 민규에게 미운털이 박혀 A급 실력에도 불구하고 C급으로 낙인찍힌 한희성을 비롯하여 오른팔이 잘린 대폿집 사장, MK 인턴 등 권력을 갖지 못한 다른 '평범한 킬러'들은 회사에서 쫓겨나거나 사소한 실수로도 죽임을 당한다. 이렇듯 두 가지의 상반된 얼굴을 가진 규칙 위에 세워진 세상도 그리고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스스로도 오른쪽과 왼쪽이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영화의 첫 화면에서 나온 오다 신이치로의 문신과 유독 담배를 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왼쪽만 일방적으로 폭행당한 복순의 얼굴은 킬러나 가정폭력범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지니고 있을지도 이중적인 모습과는 또 얼마 다른 것일까.


    영화 「길복순」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이중적이거나 모순적이다. 킬러 길복순은 냉정하고 대범하며,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을 살해함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반면, 집에서 키우던 식물이 조금만 시들어도 속상해하고 고작 중학생인 재형의 한마디에 흔들리고, 고민하는 평범한 엄마다. 곧 살해당할 총리 후보자 아들의 방에서 빈 편의점 도시락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보고  "얜 왜 이런 걸 먹어? 몸 상하게."라고 말하는 복순의 대사는 웃음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부조리하다. 마트에서 누군가의 두개골을 찍어버릴 손도끼와 건강에 좋은 신선한 채소들이 가득한 봉투를 들고 있는 이 영화의 포스터는 이런 부조화를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다. 

  한편, 차민규 대표는 규칙 자체를 1도 신경 쓰지 않는다. 스스로가 정립한 규칙은 물론이고, 불륜을 넘어 난륜에 가까운 동생 스킨십 장면에도 동요하지 않는 민규를 생각할 때 전통적인 규범에도 종속되지 않는 사람이다.(물론 사람 죽이는 킬러에게 윤리가 어떻고 하는 것조차도 모순이지만)

  또한 더욱 골 때리는 것은 민규의 동생 차민희 이사가 복순의 아버지처럼 독실한 가톨릭교 신자라는 점이다. 차이사는 작품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실해 된 피해자의 서류를 파쇄할 때 가톨릭교의 성호를 긋는다. 고해성사를 하면 어떤 죄라도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인지 아니면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신을 믿으려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죽고 나서도 성당에서 장례를 치른다. 



■ 모순의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한다면 끝까지 숨기기

  

거짓말은 끝까지 뻔뻔하게. 그것이 거짓말인지 알고 있는 사람한테도.


  영화 「길복순」에서 이 세상을 유지하게 만드는 것은 불완전한 규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거짓말을 '지키는' 뻔뻔함에 있다고 말한다. 복순은 총리 후보자 아들의 청부살인이 단순한 실수라고 '뻔뻔하게' 주장하며 그 거짓말을 믿지 않는 차민규로 하여금 특별한 예외를 적용할 여지를 만들었다. 또한 자신의 가방에서 총과 위조 여권을 본 딸이 혹시 국정원 직원이냐는 물음에 복순이 침묵으로써 거짓말을 한 것처럼, 그녀의 딸 재형도 민규가 보낸 노트북에 의해 복순이 킬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끝까지 뻔뻔하게 모른 척하며 가정의 안녕을 지켜낸다. 아무것도 모를 때의 재형은 엄마가 원하는 대로 모든 사실을 징계위원호에 이야기하고 사립 중학교에 남을까도 고민했었다. 그러나 차민규가 보낸 노트북에 의해 엄마가 킬러라는 강제로 알게 된 재형은 이 거대한 진실을 감당할 재간이 없다고 느끼고 판도라의 상자를 거짓말로 덮어버린다. 재형은 '거짓말은 끝까지 뻔뻔하게. 그것이 거짓말인지 알고 있는 사람한테도'라는 차민규의 격언을 훌륭하게 실천한다(역시 아빠를 더 닮은 모양). 복순 역시도 차민규의 조언을 따르며 그리고 흐느끼며 힘겹게 평화를 지켜낸다.

비밀은 벽이 생기는 건데, 사람이 벽을 쌓는 데는 다 이유가 있더라.
모르는 척 기다려 주는 것도 방법이야.


마지막 엔딩에서 재형이 쌓은 그 비밀의 벽은 사실 복순과 재형의 사이를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혹독한 진실의 폭풍우를 막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반면, 끝까지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것에 실패한 MK 인턴과 차이사를 만난 한희성이 도구로 이용만 당하다 결국 죽임을 당하는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규칙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순과 그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이중성에 대해 말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모순 뒤에 진실을 보라.

 

  극 중 한희성의 말이다. 우리들의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모습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진실 너머에 있는 뒷모습을 몇번이나 들여다 볼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뒷모습은 아직도 그대로인가. 우리는 스스로 뒷모습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이런 거울 같은 작품들이 우리에게는 아직 많이 더 많이 필요하다.  -끝 



★ 조타의 학점:  별 네개 반. ★★★★☆ (A0)


◆ 다루지 못한 떡밥 나누기

1. 재형의 친부. 민규

# 첫 번째 근거

  "그럼 애한테 아빠를 한번 만들어 줘 보던가."

   민규는 말을 뱉은 직후 마치 실언을 했다는 듯 얼굴을 심하게 찌푸린다. 조금은 무례하다 싶을 수도 있지만 친밀한 사이라면 충분히 농담으로도 이해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민규의 당황스러운 표정은 그가 말한 것처럼 '그냥 평범한 사람'인 재형의 친부를 죽였거나(혹은 살인청부), 본인이 친부일 때 나올 수 있는 반응에 가깝다. 전자의 상황이었다면 복순의 성격상 '피 묻은 칼'을 민규에게 전달해서 결판이 났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 두 번째 근거

  이후 복순에게 실패 소식을 직접 들은 차민규는 첫째도, 둘째도 길복순이 실패할리 없는 작품이라고 단언하면서 '이번 고객이 지 새끼 죽이려는 매정한 아버지라는 거' 때문에 고의적으로 임무를 Try 하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복순이 레전드 킬러라고 한들 결국 인간이라면 언제든지 실수할 가능성은 존재하고 그 경우의 수는 거의 무한하다. 그럼에도 민규가 복순이 실패한 이유를 정확하게 집어낼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가 복순 모녀에게 '지 새끼 죽이려는 매정한 아버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들이야, 애 낳고 나면 다들 관두는데'라는 차이사의 말처럼 킬러에게 자식은 큰 약점이다. 때문에 민규는 복순에게 아이를 지우라(죽이라) 강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복순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자신의 실력으로 딸을 지켜냈다. 일에는 지장을 주지 않기로 한 차민규 대표와 약속을 통해 낮에는 소중한 나의 아이를 보살피는 엄마로, 밤에는 누군가의 소중한 생명을 무참히 빼앗는 킬러로 이중적인 삶을 살아 가게 된다. 


2. 빨간 사과는 무슨 의미인가?

이를 선악과의 상징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선악과는 한번 베어 물면 이전 상태로 되돌아갈 수가 없는 점을 고려하면 이미 선악과를 먹은 재형이 선악을 구분하게 된다거나 성격이 바뀌는 등의 내러티브의 전개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재형에게 선악과는 민규로부터 전달받은 노트북이다.(노트북이 애플이었으면 어땠을까)

 영화의 엔딩에서 복순이 거듭 불러 찾지만 거실에 재형은 없고(한때 사랑했던 애인에게 작별인사 혹은 협박을 하러 학교에 갔었다) 테이블 위에 빨간 사과 하나가 놓여 있다. 베어 물지 않은 사과처럼 보이지만 모를 일이다. 우리는 사과의 뒷면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MK 인턴 김영지가 했던 대사가 더 인상 깊다.

잘못인지 아닌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알아요. 남들이 정하는 게 아니라


3. Rubik's cube

  피 묻은 칼(정확히는 만년필)을 받은 차민규는 사무실에서 복순과의 대결을 기다린다. 평등을 상징하는 삼각 테이블 앞에서 차민규는 이미 완벽하게 정리된 Rubik's cube를 '혼잡하게' 역으로 흩트려 놓는다. 이것은 극도로 불안한 차민규의 심리 상태를 대변한다. 대결이 끝나면 승리한 경우에도, 패배한 경우에도 필연적으로 복순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패배한 차민규는 마지막 순간에서도 '진짜 아니지?'라는 복순의 물음에 끝까지 뻔뻔한 거짓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퍽 차민규다운 죽음이었다.


4. 서울의 도심 한복판, 현대식 마천루들 사이 한가운데서 마치 시공간을 초월한 듯 세워진 전통적 서양식 3층 건축물 MK Ent. 살인 한 번이면 참을 인, 세 번을 면한다는 킬러들의 농담도 재미있었지만 나는 이 부조화속에 우뚝 서 있던 건축물과 그 건축물 간판 아래 있던 the classic value라는 텍스트가 더 인상 깊다.


5.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조연들이 많이 나와서 더욱 영화 감상이 즐거웠다. 소년심판에서 촉법소년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이연(프로필 사진은 너무 여성스럽고 아름다우셔서 놀랐다), 이번생은 처음이라에서 알게된 역시나 통통 터지는 매력을 가진 배우 이솜(요즘엔 섹시 어필하는 작품들이 많은 것 같지만), 말해 뭐해 D.P와 우영우의 구교환, 주로 악역이 많지만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에 외계인으로 나왔던 김성오도! 적재적소의 캐스팅이었다. 



♣ 이 영화를 보고 함께 나누고 싶은 곡

1. Breaking the law - Judas Priest (https://www.youtube.com/watch?v=L397TWLwrUU)

2. 이중인격자 - N.EX.T (https://www.youtube.com/watch?v=0LLmMMQC4R4)


♠ 이 영화를 보고 함께 나누고 싶은 영화

 *밀양 - 감독: 이창동, 주연: 전도연, 송강호 


♥ 이 영화를 보고 함께 나누고 싶은 책

 *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길복순」 공개 스틸컷 및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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