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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Jun 13. 2019

고객님이 바로 맞춤법이다.

때론 맞춤법을 따르지 않는 이유

맞춤법을 검사해야 하는 일이 많다 보니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와 자주 마주칩니다. 맞춤법 검사기에 넣어보면 더 빠르게 답을 찾을 수 있지만, 때로 일부러 국립국어원에서 찾아보기도 합니다. 국립국어원은 재밌는 유래나 사연도 종종 함께 이야기해주거든요. 가끔 아는척할 때 꽤 유용합니다.


무엇보다 재밌는 곳은 '온라인가나다' 페이지인데요. 이 곳에 가면 재밌는 사연을 담은 질문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 전 찾아보게 된 '및'이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요. 



용돈을 올리기 위해 부모님이랑 협상하는 어떤 딸 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슬며시 웃음이 지어졌습니다. 계약서(?)를 적어뒀는데, 아빠는 엄마에게 미루고 엄마는 아빠에게 미뤘나 봅니다. 그래서 씩씩대며 "국립국어원에 물어볼 거야!" 하는 장면도 그려지고요. 꽤 재밌는 게시판이죠? 또 다른 글도 있었습니다. 



질문자는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누군가가 '및'이라는 건 사물에나 쓰이는 것이지 사람에게 '및'을 쓰면 안 된다 해서.."
읽으며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귀빈 및 임직원 여러분'이라고 썼던 것만 같은 과거의 제가 떠올라서요. 순식간에 소중한 분들을 사물로 취급했던 건 아닐까 마음이 조마조마 해졌습니다. 


덧붙여 이런 말도 있었습니다.

"앞에 오는 말이 뒤에 오는 말보다 중심이 된다고 기사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와우. 과거의 저는 그래도 귀빈분들을 더 중시하긴 했었군요. 하여튼 이 질문을 보며, 그동안 써왔던 사례들이 뭐가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국립국어원의 '및'에 대한 답변은 과거의 제 생각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폰트 편집이 좀 아쉽습니다만..


'그리고, 그 밖에, 또'의 뜻으로, 문장에서 같은 종류의 성분을 연결할 때 쓰는 말이라고 합니다. 반드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할 필요는 없으며, 앞에 오는 말이 뒤에 오는 말보다 중심이 되는 근거는 찾지 못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질문자분께서는 이제 그런 문제를 제기한 분에게 이 댓글을 보여드리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네, 제 진짜 이야기는, '및'을 찾아보아야 했던 이유에서 시작됩니다.  



어떤 '및'의 이야기

배달의민족에서는 연초, 사장님들의 가게 운영 부담을 줄어드리기 위해 몇 가지 큰 노력을 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외부 결제 수수료'를 인하하는 것입니다. 외부 결제 수수료는 카드사나 PG사등에 수수료를 지불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희가 받는 것은 아니고요.


그런데 마침 정부에서 이 수수료를 인하하겠다는 방침을 만들었습니다. 오프라인에서요. 온라인으로 결제하는 배달의민족 바로결제에는 적용되지 않는 건이었는데요. 회사에서 열심히 정부 부처와 논의한 끝에 온라인에서도 이 수수료를 낮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너무너무 잘된 일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공지를 통해 이 외부 결제 수수료 인하를 알렸습니다. 카드결제 및 간편결제에 적용된다고요. 카드결제 및 간편결제에 적용된다고요. 카드결제 간편결제...... 요. 그렇게 이 공지는 마무리가 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간편결제만 적용하고 카드결제는 왜 적용을 안 해주느냐는 목소리가 생겨났습니다. 엄청 생각해주는 것 같더니 반쪽짜리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공지에 '카드결제 및 간편결제'라고 쓰여있습니다.) 처음에는 공지를 못 보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공지를 근거로 왜 카드결제는 안 해주냐고 물어보십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다방면으로 고민했습니다. 고민 끝에, 공지했던 문구인 "카드결제 및 간편결제에 적용됩니다."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 말고는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사장님에게 '및'의 사전적 정의에 대해 알려드려야 할까요?



아니요.

그건 최선의 선택이 아닙니다.

공지문이든 카드뉴스든 어떤 콘텐츠든. 글을 쓰기 전, 우리는 타깃이 이해하는 용어를 쓸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타깃이 우리가 한 말을 오해했다면, 그건 무조건 우리의 책임입니다. 고객님은 잘못하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티비프로그램 어쩌다어른에서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 다섯 가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은데요.


첫째,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둘째, 내가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밑줄 쫙!)

셋째,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넷째, 말하지 말고 들어라, 답하지 말고 물어라.

다섯째, 존경은 권리가 아니라 성취다.


고객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대처가 더 중요합니다.

요즘의 고객들은 실수보다 그 이후의 대처로 이 브랜드를 사용할 것인지 사용하지 않을 것인지를 정하는 것 같습니다. 실수는 나도 누구도 할 수 있는 거라고 이전보다 관대해진 반면에, 그 실수에 대한 대처를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에 대해 더 날카로워졌습니다. 심지어 사과문 이후에 정말 행동을 그렇게 했는지 계속 지켜보기까지 합니다.



'및'이라고 쓴 것은, 사과문을 써야 할 정도의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과는, 이렇게 멋진 정책을 사장님들에게 홍보할 수 있도록 정부부처와 논의했던 담당부서에 해야겠지요. 하지만 오해하고 계신 몇몇 사장님을 위해 '카드결제 및 간편결제'는 후속조치가 필요합니다. 수정해야죠.   


그렇게 좀 더 친절한 수정된 버전의 공지문이 나왔습니다. 우리 팀은 이번 일로 '및'에 대해 정말 많은 고민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 다음에 '및'을 쓸 때는 미리 더 이해가 쉬운 다른 글자  도표를 고민해보겠지요. 비단 ‘및’에 대한 사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글에 대해 한번 더 고민해보는 절차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수저'의 경우.

얼마 전, 배달의민족에서 주문할 때는 '수저/포크 안 받을게요'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환경을 보호한다는 취지의 너무 좋은 기능이기에, 사장님들에게 홍보할 때도 기쁜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를 썼었습니다.


기능이 출시된 이후, 전체 주문건의 26%가 이 기능을 사용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이었습니다. 많은 고객님들과 사장님들이 이 기능을 칭찬하셨죠.


그런데 또 당황스러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젓가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거든요. 수저 포크를 주지 말라고 했더니 젓가락도 주지 않는다는 고객님부터, 수저 포크를 주지 말라는데 젓가락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사장님까지.. 의아한 피드백이 생겨났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 ‘그게 뭐가?’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을 거예요. 수저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모두 포함한 단어입니다. 하지만, 평상시에 우리는 ‘수저와 젓가락’으로 지칭해서 많이 씁니다. 충분히 헷갈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수정을 논의했습니다.

하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캠페인 목적과 관련된 일입니다. 수저 포크는 ‘일회용품’을 지칭하기 위한 사례로 든 것입니다. 음식 카테고리에 따라 수저만 줄 수도 포크만 줄 수도, 때로 나이프나 일회용 티슈들도 포함될 수도 있지요.


이 캠페인은 수저 포크라는 대명사를 통해 일회용품 전반의 이용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조금의 오해가 생기는 과정이 초반에 살짝 있더라도, 일일이 하나하나의 항목을 다 적는 것보다는 그대로 두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캠페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반에 잠깐 있었던 이슈는 이젠 없고요. 고객님들도 사장님들도 이젠 안정적으로 이 기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한번 더 배웠습니다.



때로 '편리함을 위해 /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쓸 때의 두 가지 염두 사항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겼는데요.

하나는, 고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쓸 것.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우리 목적을 해치지 않을 것.

두 가지입니다.


얼마 전, 동료에게 이런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이런 일은 자주 있습니다. (참고 동료의 마케팅 글귀를 도와줄 때, 쓰는 방법)  요청받은 문구를 수정하면서 한번 더 위에서 다짐한 두 가지를 생각하며 써보았습니다.


'편리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로 뭉뚱그리는 것'보다 구체적으로 촥- 이해될만한 사례를 넣었습니다. ‘배달 취소에 따른 사장님과 고객의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라고 적었어요. 그리고 그것이 배달의민족이 이 정책을 만든 목표이자 이유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에 한 줄 더 넣는다면, 수정이 필요한 경우 사장님이 할 수 있는 대처방안, 고객센터로 문의하는 것에 대해서 적어주었고요. 


이 정도면 실패에서 배운다는 말, 믿을만하죠?





고백컨데 저는 여전히 실패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띄어쓰기를 틀려 디자이너님께 개인 메시지를 받기도 하고요. 오해가 될만한 문구로, 사장님께 연락을 받은 고객센터로부터 확인 요청이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않고자 합니다. 요즘의 고객들은 실수보다 그 이후의 대처를 더 중요하게 보니까요. 이렇게 적어두면 제 자신에게 한번 더 다짐이 되겠죠? 그래서 씁니다. 오늘도.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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