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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Jul 22. 2021

43년의 시간, 잘가 서울극장

나의 20대와 30대는 종로에서 꽃을 피웠다. 인사동에서 길거리 음식을 먹으며 다채로움을 경험했고, 낙원상가를 둘러보며 소리에 귀를 떴다. 민들레영토에서 소개팅을 하고 피아노거리에서 처음으로 손을 잡았다. 


연인과 손잡고 데이트를 즐기러 찾았던 곳, 종로 3가에 자리한 서울극장이다. 대로변 뒤쪽에 숨은 한적함이 좋았다. 영화사의 과거와 포트폴리오가 늘어선 모습에서 겪어보지 않은 향수를 느꼈다. 그렇게 영화 데이트를 할 때면 서울극장을 찾았다. 


늦은 저녁 영화 감상을 마치고 나올때면 종로 3가의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기울이며 도란도란 대화 꽃을 피웠더랬다. 그 특유의 분위기가 좋았다. 


달이 가고 해가 지나며 혼자가 됐을때도 서울극장을 찾았다. 여전히 한적했다. 2008년 단성사가 문을 닫고 피카디리극장은 롯데시네마를 거쳐 CGV가 됐다. 서울극장은 길 건너 영화사가 문을 닫고 옷을 갈아입을 때도 고고하게 전통 극장 간판을 달았다. 


2021년 7월, 서울극장은 문을 닫는단 소식을 전해왔다. 1978년 합동영화사가 세기극장을 인수하고 이듬해 서울극장으로 설립한지 43년이다. 그간 얼마나 많은 영화가 서울극장을 거쳐갔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서울극장을 다녀갔을까?


서울극장에 들어서면 그 영광이 늘어서있다. 합동영화사 설립자이자 영화감독인 곽정환 감독 얼굴부터 43년 영화사의 굵직한 작품 포스터가 관람객을 맞는다. 


서울극장은 아트 퍼포먼스 공연인 페인터즈 히어로, 예술 영화관 등 그다지 대중적이지 못한 영역까지 품었다. 누군가는 그렇게 얘기한다. '그러니 망하지. 돈 안 되는 것만 골라서 하네.'라고 말이다. 


맞는 말일 수 있다. 대형 멀티플렉스의 저변 확대로 전통극장은 하나, 둘씩 문을 닫았고 서울극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오랜 시간 관람객 부족 현상을 겪었다. 


혼자 서울 극장을 드나들 때도 한산함에 기쁨과 걱정을 안곤 했다. 여유롭고 조용하게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기쁨, 한편으로 이렇게 사람이 없는데 유지가 될까? 서울극장은 버티고 버텨 살아남아줬음 하는 걱정 말이다. 


서울극장의 폐관 소식을 듣고 다시 찾았을땐 그나마 있던 사람마저 빠져나간 모습이었다. 노인들에게 혜택을 제공하며 많은 노인분들이 찾아와 영화관을 채우곤 했는데 노인들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5층에 위치했던 매표소는 텅텅 비었고 1층에서 심플하게 영업을 진행할 뿐이었다. 


에스컬레이드를 타고 오를 때마다 꺼져있는 불빛에 가슴이 아렸다. 43년 동안 켜왔던 불빛이 꺼져버린 기분, 어쩌면 내 일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일이다. 하지만 전통 극장의 동아줄이 끊긴 것 같은 안타까움과 내 과거, 역사가 지워지는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다. 


한때는 찬란했을 서울극장,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진 모른다. 다만 찬란했던 과거가 완전히 지워지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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