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이라는 단어는 아쉬움과 안타까움, 감동을 품고 있다. 무명이라는 단어를 가장 쉽게 접하고 가장 많이 쓰는 곳은 연예계다. 무명가수, 무명 개그맨 등 스타가 되지 못해 생활고를 겪다가 성공했을 때 성공 스토리로 포장된다. 성공하지 못하면 이름조차 없는 존재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도 생각해보면 위인전, 기록상의 업적을 새겨야 한다는 성공 기반 암시가 깔려있다.
이름 모를 누군가의 기부, 무명의 영웅이 사람을 구했다는 뉴스 기사들을 감동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스스로를 감추고 싶어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고, 그런 대상이야말로 진정 ‘무명’이라 칭할법하다. 이름을 알리기 위한 무명이 아니라 스스로의 이름을 감추기 위한 무명.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은 무명이다. 내 직장, 내 가족, 내 동료가 아닌 출근길에서 마주치는 버스기사, 같은 지하철을 타는 직장인,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모두 ‘나’라는 존재에게서 말이다.
어느 날, 가볍게 쓴 글이나 사진이 SNS를 타고 사회적 관심과 이슈가 될 때가 있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그 순간부터 무명의 누군가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본명일 수도 있고 가명, 별명일 수도 있다. 관심과 이슈는 언젠가 시들수도 있겠지만 ‘무명’이었던 그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관심과 이슈 중심에 서야 하고 관심과 이슈의 화살을 맞아야 할 수도 있다.
인간의 본능에는 관심의 본능이 있다고 한다. 흔히 이야기하는 ‘관종’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만약 그런 관심과 이슈를 일으켰던 ‘무명’이 세간의 눈길로 인해 희열이나 만족감을 느낀다면 더 이상 무명이라는 타이틀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스타, 인기인 등은 아닐지라도 사람들 관심을 통해서 행복감을 느끼게 될 테니 말이다.
그에 따른 단점도 감수해야 한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원자 분해되듯 악의적인 말과 글을 받기 때문이다. 질투라는 감정 역시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본능 중 하나기 때문에 질투심에 비방이 달릴 수도 있다. 어지간한 멘탈이 아니라면 다수의 악담과 소문에서 온전한 자신을 지켜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TV에서 보는 많은 이들이 공황장애나 우울증으로 힘겨워하는 모습처럼 말이다. 정신과를 다니며 투약 생활을 하기도 하고 자신을 달래기 위해 방랑벽에 빠지거나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겪어본 적 없는 괴로움이기에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 테다.
물론 그럴수록 힘을 북돋아주고 응원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긍정보다 부정이라는 감정에 쉽게 손을 내민다. 잠깐의 안식을 얻었다가 또 우울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다가 잠깐의 안식으로 웃음을 보이면 세간에서는 ‘쇼’였다던가? 문제없네. 등으로 가볍게 치부해버리거나 또다시 물고 뜯어버린다.
무명에서 유명으로 입장이 달라진 당사자는 그런 상황 속에서 선택에 놓이게 된다. 선택의 종류는 많고 절차는 복잡하다. 타인이 보기에는 단순하고 간단하다고 말하겠지만. 때론 맞서 싸움으로써 방법을 찾아내고 때론 도망치기도 하고 때론 모든 것 내려놓기도 한다. 중요한 건 어떤 선택을 하던 그 결과는 흉터만 남긴 결정이 된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 어떤 결정조차도 유명에서 무명으로 치부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