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교사의 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사 이야기
“선생님, 피곤해 보이네요. 요즘 무슨 일 있어요?”
복도에서 우연히 만난 A 선생님에게 말을 건넸다.
“어제 악몽을 꾸고 잠을 좀 설쳤거든요. 1년에 한두 번씩 이런 꿈을 꾸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나 봐요.”
“어떤 꿈인데요?”
내 질문에 A 선생님이 망설이는 듯했다. 잠시 주춤하더니 곧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반 아이 한 명이 저한테 덤비는 꿈이었어요. 고학년을 맡을 때면 가끔씩 그런 꿈을 꿔요.”
A 선생님의 이야기가 몹시 당황스러웠다. 평소 반 아이들과 허물없이 지내기로 유명한 A 선생님에게서 그런 이야기가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랑 스스럼없이 잘 지내잖아요. 선생님도 그런 꿈을 꿔요?”
“네. 고학년을 맡으면 아무래도 부담이 있나 봐요.”
A 선생님의 마음속에도 그런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런 두려움은 A 선생님만의 고민일까? 내색하지 않을 뿐, 교사라면 다들 비슷한 고민들을 갖고 있지 않을까? 나 역시도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작년에 처음으로 6학년 담임을 맡았다. 올해도 같은 학년을 맡아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고학년 지도 경험이 없어서, 작년에 처음 6학년을 맡게 되었을 때 몹시 긴장을 했다. 얼마나 긴장이 되었으면 새 학기 시작 전에 <6학년 담임해도 괜찮아!>라는 책까지 사서 읽었을까? 내가 담임을 맡기 전까지 상상했던 6학년의 모습은 이랬다.
‘성인처럼 몸집이 큰 아이들의 무리가, 수업 시간마다 고개를 삐딱하게 숙이고는 눈을 치켜뜨고 나를 째려본다. 수업 시간에 내가 수없이 질문을 하지만, 아무도 발표를 하겠다며 손을 들지 않는다. 한 아이를 지목해서 발표를 시키면, 기분 나쁘다는 듯 책상을 툭 치고 일어나서는 나를 노려보며 말없이 서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삼삼오오 모여서 담임의 험담을 한다. 우리 담임 진짜 꼰대라고, 담임 진짜 싫다고...’
물론, 실제 6학년 학생들이 내가 상상한 모습 같지는 않았다.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내가 만들어낸 6학년에 비해서, 실제 6학년 학생들은 순수하고 아이다웠다.
한편, 초등학교 교사들이 선호하는 학년은 몇 학년일까? 물론 교사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중학년인 3,4 학년을 선호하는 편이다. 저학년인 1학년과 고학년인 6학년은 인기가 별로 없다. 1학년은 유치원을 갓 졸업한 아이들이라, 학교생활의 기초부터 하나하나 알려줘야 한다. 또한 아직 한글을 모르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교사가 말로 직접 설명해야 한다. 1학년은 아직 너무 어려서 지도하기가 어렵다.
반대로 6학년은 너무 커서 지도하기 힘들다. 6학년 학생들은 몸은 어른만큼 크지만, 사춘기에 접어들어서 감정적으로도 불안정하다. 불안정한 감정 때문에 친구 사이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가 종종 발생한다. 그런 측면에서 다들 6학년 담임을 맡지 않으려고 한다. 나도 6학년을 지도하며 앞에서 언급한 동료 교사 A처럼, 막연한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고학년 아이들이 작정하고 내게 덤비면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물론 교사라는 직위도 있고, 그리고 물리적인 힘도 아이들보다 내가 더 셀 것이다. 하지만 혹시라도 교사인 내게 덤비거나 무작정 반항하는 학생이 생긴다면 몹시 당황스럽고 또 마음이 아플 것 같다. 내 과거 학창 시절 경험을 떠올리면서 학생들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졌다.
중학생 시절, 영어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당시 영어 선생님은 갓 발령받은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처음부터 친절하게 아이들에게 다가가려고 애썼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이 그런 영어 선생님을 무시했다. 영어 시간은 ‘자유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많은 아이들이 수업 시간이 되면 삼삼오오 모여서 웃고 떠들며 대놓고 도시락을 먹었다. 어떤 친구들은 컵라면을 가져와서는 뜨거운 물을 붓고 먹기도 했다. 친구들은 쉬는 시간보다 더 자유롭게 교실을 돌아다녔다. 심지어 교실 뒤에서 말뚝박기를 하기도 했고, 서로 몸을 부대끼며 심하게 장난도 쳤다.
처음 몇 번은 선생님이 우리 반 아이들을 제지하려고 했었다. 소리도 질러보고, 부드럽게 타일러 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언제부턴가는 선생님도 지쳤는지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혼자서 수업을 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혼자 수업을 하다가, 교실 밖에 나가서 종종 울음을 터뜨리던 선생님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수업 시간에 통제가 전혀 되지 않는 아이들을 매일같이 만나야 했던 영어 선생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만약 내가 영어 선생님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그 상황을 태연하게 견뎌낼 수 있을까?
몇 해 전 한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학생이 고함을 지르고 욕설을 하며 빗자루로 교사를 폭행한 사건이 뉴스를 통해 전해졌다. 언론 매체에서 다루지 않을 뿐, 현재도 많은 선생님들이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로부터 크고 작은 일로 교권 침해를 당하고 있다. 오죽하면 ‘교권 침해 보험’도 나왔을까? '골목 식당'이란 TV 프로에서 백종원 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식당 종업원이 불친절하다고요? 그 종업원이 원래부터 불친절한 게 아니라, 과거에 특정 고객들로부터 숱하게 상처를 받다 보니 보호막을 쳐서 불친절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면 학생과 동료 교사들에게 마음의 문을 닫은 채 혼자 지내는 교사들이 종종 있다. 그런 선생님들도 백종원 씨의 말처럼, 학교 현장에서 학생을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여러 번 받아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것은 아닐까?
교사가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면, 교사 자신에게도 또 학급의 수많은 학생들에게도 엄청난 피해가 돌아간다.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그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그들이 상처를 받고 있을 때, 또는 상처 받은 이후라도 그들의 문제에 함께 공감해 주고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한다면 어떨까? 상처가 더 깊어지고 벽이 더 곤고해지기 전에, 그들 스스로가 문을 열고 나올 수 있도록 우리가 도울 수 있다면 좋겠다.
오늘도 교실 한편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고 있는 교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들을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일과 더불어, 선입견 없이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모습이 아닐까? 자신이 교권 침해를 당했다며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쏟아내었을 때, 나는 그들의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또 공감해 줄 수 있을까? 또 그들을 위해서 발 벗고 나설 준비가 되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