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요양보호사
최근엔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상담일을 18년이나 하던 내가 처음 요양원에 일을 나간 것은 나를 찾아오던 고객(내담자)의 요구로 가게 되었다.
그 가족과 상담이 끝이 나고 한참 지나던 어느 날 다급하게 SOS를 치며 사정을 한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고 말한 것을 새겨 두었나 보다. 그녀가 운영하는 요양센터가 행정적으로 인원이 부족해서 그런다며 통사정을 하였다. 겸사겸사 경험도 얻을 겸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당시 코로나로 실습 없이 자격증을 받았었기 때문에 내부 시스템이 궁금했었다. 원래 학부 때 사회복지사 자격증 따 놓은 터라 대략은 알고 있었지만 호기심도 있고 어차피 요양보호사의 업무도 배울 겸 해서 일해 보겠다고 하였다.
24년 2월 1일 요양센터에 서류를 제출하고 나서 요양보호사용 건강검진을 받고 나서 이튿날부터 출근을 하게 된 게 시작하여 어느덧 1년 반이다.
형편이 어려워진 이유는 박사 동기들은 다 소논문을 준비하며 박사를 준비하였는데 늦은 나이(46세)에 대학부터 시작해서 16년 걸렸다. 62세에 상담학 박사 수료했지만 척추 협착과 노안이 오는 것이었다.
박사를 가려면 3년 정도는 더 걸린다. 나는 어느 날부터 부동산에 관심이 갔다.
식목일 나무 한그루 심는다는 심정으로 매년 집을 사서 세를 줬줬다. 논문을 쓸 수 없는 대신...
그렇게 하다 보니 임대사업자가 되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너무 여러 개를 산 것이었다. 더욱이 나중에 산 게 오피스텔이었는데 신규 분양받은 게 화근이었다.
신용불량자가 될 것 같은 불안감으로 막연하게 기다릴 때가 아니었다. 닥치니 어쩔 수가 없었다. 앞이 깜깜했다.
오피스텔을 살 때는 그곳을 접근성 좋고 쾌적한 상담센터로 할 마음으로 준비했었다. 5억 5천 주고 등기 치느라 빌린 돈이 4억 2천이고 세금 5000만 원(취득세 2580만 원과 대출받는 과정에서 주택으로 바꾸게 되어 부가세 환급받은 것을 도로 세무서에 반납해야 된다)에 정말 세금에 압사당할 것 만 같다.
요양보호사로 기관에 출근을 하니 매월 200만 원 정도 나오다가 가정집으로 파견되는 시간제 요양보호사가 되어보니 어떤 달은 100만 원정도 인데 그것도 교통비 제하고 나면 턱도 없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삶의 고단함으로 우왕좌왕한다. 결국 큰마음먹고 고향을 떠나 요양 일자리 앱을 깔고 서울로 와서 일자리를 구했다. 그게 작년 10월 경이다.
하는 수없이 입주요양보호사로 취업을 하여 96세 어르신과 둘이서 살게 되었다.
첫 번째는 외출이 안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시장가는 외출은 가능하다.
반찬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돌보는 것을 좋아하는 일이라 감사하다 위로해 본다.
하지만 상상밖의 내 운명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펼쳐지는 것 같다. 가끔 감정이 탄다.
이 나이에... 내가... 남의 집 살이를 한다고? 빚이 무서운 건 당연하지만 헤쳐나가다 보면 될 거야. 어차피 지출은 줄고 수입이 더 크니까 몸만 건강하면 안 될 게 없다.
다행히도 어르신이 여성이고 체중 40킬로에 특히 인성이 좋으신 분이다. 이것도 은혜이고 감사할 일이라 생각하여 그동안 못해 왔던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큰 감사이다.
그동안 못해본 글쓰기와 브런치가 있어 읽을 게 매일 쏟아지니 시간이 없어 많이 읽지는 못해도 마음은 이미 풍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