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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시골 백수가 되었는가?

왜 세계일주를 시작했지?

한국을 떠나 온지 192일째 이다. 이때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2년가량 혹은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르는 세계일주를 계획하면서 무엇이 가장 선결과제일까? 생각해 보았다. 루트 짜기? 경비 마련하기? 배낭 사기? 모두 다 중요하지만, 다 필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왜 떠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자기만이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일주를 관광목적으로 그냥 심심해서 떠나는 사람은 없다. 무언가 찾거나, 무언가 얻기 위해서를 떠난다. 그것이 유형의 것이든, 무형의 결과이든 자기만의 스피릿이 있어햐 한다는 것이다.



세계일주의 계획을 짜기 이전에, 내가 떠나야 하는 진짜 이유에 대해서 확신이 들어야 한다. 그래야 여행의 방향도  결정될 것이고, 테마도 정해지고, 기간도 방향도 그리고 루트도 정해진다. 많은 선배 여행자들을 만나고, 선배 여행자들의 여행기를 보면서, 저 사람은 왜 떠났을까? 그리고 무엇을 찾으려고 할까? 고민해 보아야 한다. 내 머릿속에  마음속에 그 스피릿이 살아있지 않다면 여행 중간에 목적이 전치될 것이고,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스스로에게 위로를 권하며 귀국해야 할지도 모른다.


유학생활 혹은 외국인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노력 중인데, 다들 처음과 많이 달라진다. 공부하기 위해서  왔다기보다, 즐기러 왔다. 여행하러 왔다. 고 자위한다. 참 안타깝다. 여행을 하다가도 사람들이 내가 왜 하게 됐는가를  잃어버린다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강한 신념을 먼저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 것은 나의 주장이 아니라. 어느 정도 사실이라 봐도 무방하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목적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뭔지 방향을 잃었기 때문이다. 나의 꿈이라면 꿈이라 할 수 있는 신념은 사람으로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이었다. 어디서 들은 것 인지, 들은 것을 내가 바꾸었던 것인지, 내가 만든 말 인지 모른다. 아무튼 이런 말을 좋아했다. '천재가 되기보다, 천재를 내 사람으로 만들라, 성공한 사람이 되기보다, 성공한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라' 아무튼 사람이 내 인생의 목적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대 가족  속에서 자랐다. 5남매, 부모님 7남매, 외가 6남매? 인가 그렇다. 옆집이 큰집이고, 건넛집이 고모집이고, 아랫집이 사촌집인 동네에서, 큰집에 제사 한번 지내면 수십 명이 왔었다. 누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나는 그렇게 자랐고, 친구들도 자연스레 많아졌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 거리낌이 없었다. 어느 순간 철이 들면서 나는 사람이 좋구나라는 것을 깨달았고, 부모님께 배운 대로 '내 돈이 절반은 내 돈이 아니다.' 가난하지만 베풀며 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꽤 순탄한 인생을 사는가 싶었는데, 여러 번의 연애 끝에, 자주 싸우지만 그래도 내 마음 이해해주려고 하는 여자를 만났고, 나는 성공에 대한 집착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내 마음을 숨긴 채로 그 여자를 만났고, 내 마음이 확인 하고 싶어 하는 행동들 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화를 내었었다. 그렇게 싸웠고, 수 백번의 사귀는 중의 이별처럼 그녀를 잠시 혼자 두게 했다. 군대에서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해줄 수 없어 내 친구에게 공부도 좀 시키고, 무슨 일 생기면 나 대신 좀 챙겨달라 부탁했다. 


그런데, 한국 드라마에서 있는 일이 생겼고, 내가 조금 더러운 꼴을 봐버렸다. 지금이야 뭐 담담하지만, 당시로서는 왼손과 오른손을 다 잃은 느낌이었고, 세상에 혼자 된 느낌이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내 기대 이상으로 강했던 터였다. 그런와 중에 집안 문제가 발생했다. 

 

집안에 큰형 노릇을 했던, 당시에 큰 매형이 15년? 동안 사기를 친 것이었다. 사업가 인 줄 알았지만, 백수였고, 두 집 살림을 철저하게 해서 틀키지도 않았었다. 문제는 없는 우리 집 살림을 제일 잘 알면서도, 여기 저기서 돈을 빌리고, 아버지한테도 2억이 넘는 돈을 빌려갔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 누나한테 이 소리를 들었을 때는 장난일 줄 알았다. 우리 집에 그만한 돈이 있을 리가 없는데, 당연히 장난이라 생각했다.  몇 년간 수 십 번에 걸쳐서 통장 내역을 확인한 게 그 정도 란다. 농사에도 은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그 사람께서 그 은퇴자금을 사기 친 거였다. 

(그 와중에 어머니는 나 장가 보낼 때 밑천이라 말씀하셨는데... 어머니 원래 장가는 제 힘으로 갈 생각다.)


너무 믿어버린 부모님도 잘 못이 있지만, 이제는 매형이라 부르지도 않는 그 사람이 돈 뜯을 때도 없어 왜 하필 우리 집에서 빌려갔냐가 가장 큰 화두였다. 매주 주말에 나와서 같이 농사지어서 잘 알 텐데, 순진한 농사꾼을 이용한 그 놈이 대단한 것도 있지만, 그 정도 사이즈 밖에 안 되는 사기꾼이라 우리 집을 노린 거였다. 


우리 가족 모두가 분노했지만, 나는 나름 침착했다. 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알아보니 처벌 방법이 없었다. 친족 간에 금융거래는 사기죄가 성립이 안된단다. 친족상도례라고 부모 자식 간에 주고받는 돈은 거래가 아니라는 유교사회의 전통을 존중하는 법이다. 


그리고 실망했다. 내가 무능했구나, 내가 믿는 신념, 사람이 뭐지? 


군대에서 장교로서, 업무 중에 대대장님께 매일 같이 혼나면서 당당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너 요즘 왜 이래, 무슨 있느냐' 들었을 때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살아온 과거가 흔들린 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을 잃었다. 꿈이 없어졌다. 인생에서 사람의 의미가 무엇이고, 꿈이 뭔가를 생각하던, 내가 바보 같았다. 


속고 속이는 게 인생이고, 믿는 놈이 바보가 돼버렸다. 마음의 바닥을 찍고 나니, 문제는 잠잠해졌고, 내 마음도 평화를 찾았다. 그리고 취업 대신 여행을 선택했다. 군대에서 어디 어디 합격했냐 그리고 왜 안 가느냐 물었을 때 '그냥 일하기 싫다'고 했다. 내 이야기를 다 할 수가 없었다 차마. 그리고 이제는 용기를 낸다. 아무에게도 표현하지 못했고, 그냥 놀러 나간 줄 아는 친구들에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숨겨봐야 좋을게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내 여행의 목적은 다시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내 꿈에 확신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열고 싶다. 세상사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고,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걸 해결하고 돌아갈 계획이다. 그 전에 돌아간다면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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