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온 몸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고흐만큼 치열하게 살지 못한 자의 부끄러움이라고나 해야 할까. 죽을 때까지 평생 그림과 혼연일체가 되어 자신의 그림에 완벽히 몰입하며 삶을 불태운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정신병원에 갇혀 있던 자신을 향해 ‘왜 화가라고 생각하느냐’는 신부의 질문에 ‘자신은 평생 그림 밖에 그릴 줄 몰랐고, 그래서 내가 그림이고, 그림이 바로 나다.’고 설명할 정도로 자신의 온 열정을 그림에 담았던 타고난 화가였다. ‘비운의 천재’ 고흐는 고독한 삶 속에서도 자신이 사라지더라도 자신의 작품이 영원이 존재할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그의 작품이 살아생전 단 하나 밖에 팔리지 않았다니. 믿기지 않는 미스테리다. 상당수의 작품들이 밥값, 술값, 집세, 생활비 등으로 지불되었다니 어이가 없을 정도다. 수십, 수백억에 이를 그의 그림을 받아둔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보관하다가 결국 유실된 작품도 많을 것이다.
과연 우리가 천재를 알아보기나 할까. 조금만 기행적 행동을 해도 우리는 참지 못하고 사람들을 멸시하고 박해한다. 늘 누군가의 눈치를 보니 창조적 발상을 하기가 어려운 것도 그런 풍토가 한몫하지 않을까 싶다. 고흐는 오랫동안 머물며 자신이 사랑했던 도시 ‘아를’에서조차 수도 없이 정신병원 신세에 내몰린다. ‘다시는 아를에 발을 돌일 수 없다’는 주민들의 청원을 듣고야 마을을 떠난다.
미술도구를 살 수 없을 정도의 가난과 사람들의 야유에도 불구하고 잠시도 멈출 수 없는 그림에 대한 열정은 그를 거리로 숲으로 자연으로 뛰어들게 만든다. 글씨를 단숨에 죽 써 내려가는 것을 일컬어 일필휘지(一筆揮之)라고 하는데 고흐의 화법이 그랬다. 다른 화가들은 대체로 구상을 하고, 데생을 하고, 차근차근 천천히 완성해나가는 화법을 구사한다. 극중 유일한 친구화가였던 고갱 역시도 늘 구상부터 좀 하고 그리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고흐는 물감이 채 마르기도 전에 다시 덧칠을 반복하며 한 번에 순식간에 그려내는 화법을 구사한다. 그래서 그림이 아니라 마치 조각과 같이 입체감이 그림의 생동감을 불어넣는 독특한 그 만의 불타는 화법으로 남았다.
2018년에 개봉했던 <러빙 빈센트>가 고흐의 죽음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시각으로 고흐의 삶과 여러 작품들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구성되었다면 이번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철저히 고흐 그 자신의 시각으로 시작부터 끝까지 영화는 나아간다. 그런 측면에서 고흐 그 자신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나는 늘 천재의 머릿속이 궁금했다. 내게는 그런 궁금증을 가장 적나라하게 풀어줬던 책이 심리학자 칼 융의 자서전이었다. ‘아, 천재는 이런 방식으로 생각으로 살아가는구나’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던 적이 있었다. 이번 영화는 비록 가상일지라도 천재화가의 머릿속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는 작품이었지 않나 싶어서 좋았다.
모두 감독과 연기자와 시나리오 작가가 꾸며낸 허구일 수 있겠지만 충분히 천재의 생각을 잘 표현해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보는 내내 감탄했다.
고흐 역을 맡은 주인공 윌렘 데포는 대개 악역배우로 인상 깊다. 배우 초창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상당수의 배역이 악역이었다. 그래서 1988년에 출연했던 <예수의 마지막 유혹>에서 엄청난 열연을 펼쳤음에도 악역전문배우가 예수 역할을 맡았다며 엄청난 비난세례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연기력은 놀랍다. 그가 분한 빈센트 반 고흐와 윌렘 데포의 싱크로율은 95%에 가깝다. 고흐가 불과 37살의 젊은 나이에 죽은 것에 비해 주연을 맡은 윌렘 데포가 환갑을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색하지 않아서 그저 놀라울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로 주인공 고흐를 연기한 윌렘 데포는 [앳 이터너티스 게이트(우리나라에서는 ‘고흐, 영원의 문에서’라는 이름으로 개봉했다]로 베니스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 속 악역을 맡았던 배우들의 놀라운 변신과 성공에 대해서도 글을 한 번 써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역할이든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것은 역시 중요하다.
영화 보는 내가 화면이 흔들거려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는 카메라를 직접 들고 찍는 핸드헬드 기법이라고 하는데 카메라를 고정하지 않고 들고 움직이면서 찍기 때문에 화면이 요동쳐 보인다. 이는 고흐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보여주기 위한 감독의 의도된 연출이다. 주인공인 데포가 고흐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달리며 찍기도 했다고 한다. 거기다 서리가 끼인 듯한 화면 때문에 불편하게 느낄 관객들도 많을 터이다. 이는 하나의 이미지에 두 개의 다른 심도로 어지러운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심도 분리 디옵터를 렌즈에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모두는 고흐의 입장에서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보이기 위한 감독의 의도된 연출이라는 것을 알고 보면 조금 더 마음이 편하리라 싶다.
그래서 요즘처럼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젠틀(?)한 영화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그렇게까지 재미와 감동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어쩌면 그래서 이런 영화는 영화관을 찾아서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IP TV를 통한 영화나 PC나 모바일로 보는 영화는 언제든 마음에 안 들면 중지해버릴 수 있으니 마음 깊이 담기에는 영화관이 역시 안성맞춤이다.
그림을 좋아하거나, 때로 그림은 좋아하지 않더라도 잔잔한 감동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꼭 추천 드리고 싶은 영화다. 조금은 안타깝고, 조금은 안쓰러울 수 있지만 고흐로부터 작은 위안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천사는 늘 가난하고, 불안하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 곁에 있으니까.
우리나라에서 오래전에 유행했던 가왕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도 가사를 읽어보면 고흐의 삶을 다루며 현대인들에게 위로를 전해주는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 1985년도, 출처: 멜론뮤직
먹이를 찾아
산 기슭을 어슬렁 거리는
하이에나를 본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 다니는
산 기슭에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장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는
눈덮힌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나면 위대해지고
자고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묻지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중략)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영화를 평가할지 몰라도 내게는 감동 그 자체였다. 다만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부분은 고흐의 작품 중에 ‘별이 빛나는 밤’ 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이 스토리는 워낙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고, 이전에 고흐에 대해 다룬 영화들이 많으니 기존 작품과 차별화하기도 해야 하고, 또 한편으로 CG가 아니고는 별 헤는 밤을 연출하기 힘든 부분도 있고, 고흐의 삶에 집중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빠트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고,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는 너무 깊은 감동이 있기에 글을 남겨보고 싶다.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들의 단점을 쉽게 본다. 그것도 뛰어난 사람들의 경우 흠집만 보면서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며 다른 사람들의 뛰어난 점은 쳐다보지도 않으려는 어리석음을 흔하게 범한다. 이번 영화의 리뷰를 봐도 아니나 다를까 “고흐는 왜 멀쩡한 귀를 잘랐데?“라는 댓글이 있다. 사실 꽤 많은 사람들이 천재들의 기행을 입방아에 올리며 비꼬길 좋아한다.
하지만 고흐는 평생토록 불안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한 번 즈음은 두통을 앓아봤을 것이다. 고흐는 평생토록 그런 극심한 두통으로 매일 시달렸다고 하니 그 정도면 어느 정도 비슷한 상상이 될까. 고흐는 그렇게 자신의 귀를 자를 때까지 단 한 순간도 불안증세가 멈춘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귀를 자른 후 캔버스에서 별빛 터지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평범한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해할 수 없다고 천재의 기행을 입방아에 올리며 우쭐해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살아생전 아무도 고흐의 진가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누구도 고흐를 모르지 않을 정도로 고흐는 영원히 살아남았다. 오늘이 아니라 정말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내 삶의 혼과 열정을 조금이라도 불태워 나가면 좋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런데 그러지 못할까하는 부끄러움에 온 몸이 불타오르는 열기가 타올랐던 것이다.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 후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내용으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그가 그린 작품 ‘별이 빛나는 밤’을 생각하면서 귀를 자른 후 아를의 강변에 있던 고흐의 생각을 읽어보면 더 깊은 감동이 있다. 사실은 이 글은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글이다. 하지만 이 긴 글을 읽어준 독자 분들에게 드리는 마지막 선물이다.
“나는 지금 아를의 강변에 앉아있다. 욱신거리는 오른쪽 귀에서는 강물소리가 들려. 별들은 알 수 없는 매혹으로 빛나고 있지만, 저 맑음 속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숨기고 있는 건지.
두 남녀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린다. 나는, 이 강변에 앉을 때마다 ,목 밑까지 출렁거리는 별빛의 흐름을 느낀다. 나를 꿈꾸게 만든 것은 저 별빛이었을까?…
고통스러운 것들은 저마다 빛을 뿜어내고 있어. 별은 심장처럼 파닥거리며, 계속적으로 빛나고, 캔버스에서 별빛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트와일라잇 블루, 푸른 대기를 뚫고 별 하나가 또 나오고 있어.”
*twilight - (해뜨기 전·해진 후의) 여명, 황혼, 땅거미, 어스름, 박명 , 해가 지고 밤이 되려고 할 때, 땅거미가 내려앉은 황혼 무렵,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시간
오늘도 불꽃 퐈이야~^^
*글쓴이 정철상은
인재개발연구소 대표로 대구대, 나사렛대 취업전담교수를 거쳐 대학, 기업, 기관 등 연간 200여 회 강연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진로백서>, <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심리학이 청춘에게 묻다> 등의 다수 도서를 집필했다. 대한민국의 진로방향을 제시하며 언론과 네티즌으로부터 ‘젊은이들의 무릎팍도사’라는 닉네임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