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조금씩 쌓이면 나중에 큰 결과가 나타난다는 말로, 주로 저축이나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쓰이는 속담이다. 요즘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몇 년 전 호주에서 한 유명 칼럼니스트가 신문에 “청년들이 아보카도 브런치를 매일 먹는 돈만 아껴도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글을 써서 논란이 된 적 있다. 집값이 너무 비싸 집을 못 산다는 밀레니얼세대의 불만은 핑계라는 것이다.
이 칼럼에 대해 청년들은 크게 반발했다. 시드니 시내 평균집값 계약금은 아보카도 샌드위치 5,000개의 가격과 같고, 무려 48년간 주말 브런치를 포기해야 시드니에 집 하나를 살 수 있는 계약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둘러싼 세대 논쟁이 불붙은 것이다.
일명 ‘아보카도 논쟁’으로 상징되는 밀레니얼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갈등은 단지 호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17년에 밝힌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청년실업률이 13.1%로 사상 최고 수준에 육박했다. 게다가 고령화 사회로 청년이 취업하기 쉬운 일본조차 정작 밀레니얼세대를 위한 좋은 일자리는 부족하다. 좋은 일자리가 없으니 한 회사에 정착하지 못하고, 프리터족이 청년 취업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대학 등록금 1,000만 원 시대가 열린 지 이미 오래다. 게다가 청년 실업자 수는 수년째 100만 명을 넘어섰다. 국가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개인적으로도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그나마 최저 시급이 올라 나아졌다고는 해도 좋은 직장 들어가긴 더 어려워져 프리터 족으로 살아가는 청년들도 많다.
그러다 보니 일부 기성세대들은 ‘밀레니얼은 가장 무능한 세대’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어렵고 힘든 일은 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명품을 사고 비싼 음식을 먹기 위해 돈을 낭비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청년들이 무기력에 빠지는 이유
우연히 한 20대 취업 준비생에게 그녀의 친구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친구는 만화가가 되겠다는 확고한 꿈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음에도 만화학과가 있는 전문대학에 들어갔죠.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친구가 졸업한 후 다시 한 4년제 대학교의 세무학과에 들어가더니, 얼마 뒤 세무 공무원이 됐다는 거예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가고, 또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꿈을 접었다 펼쳤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야말로 오늘날의 밀레니얼세대가 처한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꿈을 접으면서까지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으려 애쓰는 이 시대 청춘들의 삶이란 얼마나 고달픈가.
실제로 오늘날의 청년 실업은 단순히 한 개인의 무능력 탓으로 돌리기에는 구조적인 문제와도 연관이 깊다. 일을 하고 싶어도 좋은 일자리 자체가 현저히 모자라고 취업문은 나날이 높아지니, 고급 인력조차 번번이 고배를 마시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한 취업 컨설턴트는 명문대 학생들조차 9급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을 정도라고 한탄한다. 그만큼 일자리가 줄어든 탓이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 아래에서 무한 성장만 할 것처럼 보였던 대한민국의 성장 신화도 경제 위기가 닥치자 균열을 일으키며 무너져 내렸다. 그럼에도 사회는 청년 실업을 한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며 면죄부 찾기에 급급하다. 조언이라고는 그저 눈높이를 낮추고 더 열심히 살라는 게 전부다. 하지만 밀레니얼세대는 이렇게 되묻는다.
눈높이를 낮추라고요? 얼마나 더?
“우리는 주말에도 도서관에 나와서 공부를 해요. 도대체 얼마나 더 열심히 준비해야 합니까? 눈높이를 낮춰 지원하라고해서 그렇게 했어요. 그러자 최저 시급 수준의 일자리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수준 높은 영어 실력에 제2외국어까지 요구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반대로 눈을 돌려 생산직에 지원했더니 이번에는 ‘오래 일하지 못할 것 같다’고 거부하기 일쑤예요.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겁니까?”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을 찾지 못하는 상황은 밀레니얼세대가 무기력에 빠질 수밖에 없게 만든다. 취업시장에서 반복적인 좌절을 경험한 청년들은 자신을 무능력하다고 느끼고, 더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는 생각에 빠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 때문에 발생한 무기력증이 밀레니얼세대를 잠식하면, 그것은 결국 우리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다.
작지만 반복적인 성취 경험을 만들어라
나 역시 직업 전문가로 살아온 지난 20여 년간 이 정도로 청년들에게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건 처음이다. 게다가 갈수록 고용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일렁인다.
이미 수많은 좌절을 경험한 밀레니얼세대는 더는 “열심히 하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열심히 해도 결국은 안 된다는 실패를 학습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점점 더 도전하기를 주저하고 꿈을 가지지 않으려 한다.
이런 학생들이 상담을 요청해 오면 나는 대책 없이 “그래도 꿈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고 선뜻 말하지 못한다. 내가 아니라도 수많은 미디어와 사회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신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고민했다.
밀레니얼세대는 집은 살 수는 없었지만 아보카도를 살 수 있었다. 소소해도 지금 당장 확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찾은 것이다. 아보카도는 나만의 가치다. 누구나 인정하는 큰 성공은 아니더라도 나에게는 기꺼이 돈을 쓸 가치를 가진 아보카도처럼 ‘작은 성취’를 꾸준히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무엇이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을 것이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때는 무리하지 말고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을 집중적으로 해 보자. ‘한 달에 10만 원 모으기’ ‘한 달에 책 세 권 읽기’ ‘일주일에 운동 3회 하기’처럼 누군가에겐 쉬운 일이라도 괜찮다. 아무리 작은 성취라도 그 경험이 반복되면 ‘유능감’이 학습된다. 적어도 지금 밀레니얼세대를 좀먹고 있는 사회적 무기력에서 벗어나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다. 잘안 되더라도 그것을 시도하고 부딪쳐본 경험이 남아 나의 자산이 된다.
시작은 조금 더뎌도 좋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나아가며 ‘자기 것’을 만드는 일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이 해야만 하는 과업을 꾸준하게 이어나가며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보자.
도서 <아보카도 심리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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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정철상은...
인재개발연구소 대표로 대구대, 나사렛대 취업전담교수를 거쳐 대학, 기업, 기관 등 연간 200여 회 강연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진로백서>, <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아보카도 심리학> 등의 다수 도서를 집필했다. 대한민국의 진로방향을 제시하며 언론과 네티즌으로부터 ‘젊은이들의 무릎팍도사’라는 닉네임을 얻으며 맹렬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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