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사람들은 진로가 정해져있다고 믿을까?
진로는 특정하게 정해진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진로의 모습은 실로 다양하다. 진로를 ‘선’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모양일까? 직선일까? 곡선일까? 누군가는 큰 변화가 없는 일직선이라고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작은 파동으로 잔잔한 변화만 있는 곡선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엄청난 파동의 상승과 하향을 오르내리는 파도 모양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고, 하향으로 내려갔다가 수직 상승으로 올라가는 등 다양한 형태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살아생전에 삶은 수많은 점과 점의 연결이라고도 말했다. 결국 어느 하나 똑같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특정한 경로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젊은 날의 나는 대학만 들어가면 진로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 들어가도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취업전선에서 계속 미끄러지고 있었다. 이번엔 어디든 취업만 되면 모든 갈등이 다 해결될 거라 믿었다. 좋은 직장만 다니게 된다면 그곳에서 한평생 생활하면서 더 이상의 진로 갈등이 없을 거라는 순진한 환상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들어간 첫 직장에서부터 갈등이 시작되었다. 비정규직이 드물던 시대에 나는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급여는 잘 나가는 동기들에 비교해 반 토막 수준이었다. 주 6일 근무에 하루 평균 15시간이나 근무를 했고, 퇴직금이나 4대 보험조차 없었기에 여간 열악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나만 직업적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당시에 그토록 가고 싶던 대기업에 다니는 정규직 직원들조차 고민이 많았다.
내가 그토록 열망하던 학벌과 학위와 조건을 가지고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마저 진로갈등을 겪는 모습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젊은 날의 나뿐 아니라 오늘날의 많은 학생들조차 좋은 직장이나 직업만 가지면 진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순진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해보면 그럴 수 없는 현실을 뒤늦게 깨닫는 경우가 많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사람들조차 진로갈등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늦은 나이에 입사하기 위해 다시 취업사이트에 들락거리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낯선 사람과 마주하며 면접을 보고, 그렇게 입사한 회사에서조차 또다시 이직을 고려해야 할 경우에는 이 모든 과정이 여러모로 기쁜 경험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 이동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과연 안정적인 곳을 찾으면 진로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실제로 안정적인 직장이 있기는 한 것일까? 더 나아가 대부분 안정적이라고 말하는 공무원, 교사, 대학교 교직원, 의사, 판사, 변호사, 대기업 임원, 군 장성이 된다면 진로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던 한 고등학교 교감 선생님이 계셨다. 마지막으로 교장생활을 하고 명예롭게 은퇴하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사립학교 설립자가 돌아가시고 젊은 이사장이 새롭게 취임하면서 자신의 계획이 틀어졌다.
새로운 이사장이 계속해서 압박을 줬고 도저히 학교에 남아있을 수 없는 형국에 이르자 참을 수 없는 모멸감에 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사람들이 대기업보다 더 선호한다는 대학교 교직원은 어떨까. 갑자기 총장실에 불려가 실적을 지적받은 한 교직원은 반강제적으로 사표를 쓰라는 말에 수치심을 느꼈고 참다못해 20여 년 넘게 다니던 대학에 결국 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실제로 인구감소로 대학마다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20년도부터는 대학정원 48만 명에도 못 미치는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2021학년도에는 대학신입생이 5만여 명이나 부족해 수치상 28개 사립대가 사라질 판이다.
직업군인이라면 군대 있는 걱정을 안 하고 살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계급 정년제라는 것이 있어서 기간 내에 진급을 못 하면 군복을 벗어야 한다. 남들이 부러워한다는 대기업 직장인이라면 어떨까. 그들 역시 직급 정년제가 있어서 진급을 못 하면 나와야 한다. 진급경쟁도 얼마나 치열한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라고 그 어려움을 호소한다. 만일 그렇게 경쟁을 뚫고 대기업 임원이 되면 안정을 누릴 수 있을까. 오히려 그들은 정규직이 아니다. 임원이 되는 순간 계약직이 된다. 언제든지 해고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휴일도 없다. 주말에도 경영진의 전화 한 통화면 어디든 달려 나가야 한다. 그렇게 악착같이 버텨도 직장생활은 결국 끝나기 마련이다.
이처럼 누구도 진로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진로의 중요성을 잘 알면서도 왜 그토록 미리 준비하지 못 하는 것일까. 진로 문제가 복잡하고 오랫동안의 시간과 종합적인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힘들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진로의 기본기는 역량이다. 본질적으로 자기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역량부터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번의 진로 선택으로 끝내려고 하지 말고 꾸준하게 진로를 설계하고, 건축하고, 리모델링을 반복하며 다듬어 나가야 한다.
출처: 정철상교수의 진로수업, 도서 <대한민국 진로백서> 중에서
* 글쓴이 정철상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한 커리어 코치로, 대학교수로, 외부 특강 강사로, 작가로, 칼럼니스트로, 상담가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KBS, SBS, MBC, YTN, 한국직업방송 등 여러 방송에 고정출연하기도 했다. 연간 200여 회 강연활동과 매월 100여명을 상담하고, 인터넷상으로는 1천만 명이 방문한 블로그 ‘커리어노트(www.careernote.co.kr)’를 운영하는 파워블로거로도 활동하며 ‘따뜻한 카리스마’라는 닉네임으로 불리고 있다.
나사렛대학교, 부산외국어대학교, 대구대학교에서 취업전담교수로 활동했으며, 현재 인재개발연구소 대표, 동아대 강의전담교수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 진로백서>, <따뜻한 독설>, <심리학이 청춘에게 묻다>, <가슴 뛰는 비전> 등의 다수 저서를 집필했다. 사단법인 한국직업진로지도협회를 설립해 부회장으로서 대한민국의 진로성숙도를 높이고자 힘쓰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가슴 뛰는 꿈과 희망찬 진로방향을 제시하며 ‘젊은이들의 무릎팍도사’라는 언론으로부터 닉네임까지 얻으며 맹렬히 활동하고 있다.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취업진로지도 전문가 과정을 운영하며 400여명의 전문가를 배출해왔다. 궁극적으로는 진로성숙도를 높여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힘쓰고 있다.
과정안내: https://careernote.co.kr/notice/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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