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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정 May 05. 2016

전문성과 충성도

면접을 본 뒤

지난 5년간 수십 번의 면접을 보았다. 국내 대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 사회적 기업, 외국계 기업 등 웬만한 형태의 기업들은 다 본 것 같다. 산업군도 제조업부터 서비스업까지 다양한 업종군을 넘나들었나 보다. 좋게 보면 디지털 마케팅이라는 내 업무의 특수성이 준 일종의 혜택인 것 같다. 면접을 보면 배우는 게 많다더니 면접을 통해 어깨너머로 많은 업종이나 회사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이는 지금 일을 하면서 배경이 다른 상대방과 빨리 친해지는 무기이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면접을 보았다는 것은 합격의 순간보다는 탈락의 고배가 더 많았고, 괜찮게 보았을 때 보다는 무언가 명쾌하게 표현하기 어렵지만 아쉬움이 남았던 적이 더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없이 많이 떨어졌지만, 감히 나도 '회사를 골랐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 많은 면접 중에 회사에서 나에게 주는 답변을 받기 전에 면접 중에서부터 '저 회사를 가야 하는가' 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회사들이 있다. 이번에는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아무리 잘 나가는 회사라거나 평판이 좋은 회사라고 할 지라도 나는 안 맞을 것 같았던 회사들 이야기이다.



 나의 첫 직장은 서울이 아닌 곳에 있었다. 학생 때 막연하게 기대하던 회사원의 삶은 전혀 아니었다. 오죽하면 소원이 점심시간에 테이크아웃 커피 마시는 것이었을까. 그래서 회사의 위치나 사무실의 인테리어 혹은 면접 중에 나눠주는 음료의 종류 (물 한잔도 안주는 곳도 있고, 원하는 음료를 가져다주는 곳도 있다.)는 면접을 보던 초기에 매우 나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드는 요소들이긴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것들보다는 면접관의 분위기나 태도 그리고 그들이 물어보는 질문의 의도가 더 중요하기 시작했다. 물론 한 5년간 꾸준히 이직을 준비하면서 내 경력도 늘고 실제 업무를 하며 아쉬운 부분이 새로 면접을 보는 회사에 가면 해결이 될 수 있으려나 확인하고 싶어 지는 마음이 커진 것도 있다.



 이런 내 경험이 모두에게 해당되지는 않는다. 디지털 기업들을 (다음카카오, 네이버,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을 의미함) 제외하고는 기업에서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우선순위에서 종종 밀리기도 하는 시장에서는 앞서 가지 않아도 회사 내에서는 앞서가는 분야인 디지털 마케팅이라는 내 업무의 특성도 생각하고 읽어주면 좋겠다.



 면접 중에 받는 질문들은 정답이 없다, 생각한 바를 소신 있게 이야기하라고 한다. 하지만 '충성심' 혹은 'loyalty'와 관련한 영역의 질문은 다른 것 같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그 답만 말해'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처음엔 그 뜻도 모르고 너무 내 소신만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면접관이 면접 중에 내 대답에 반박을 하면서 머리가 하얗게 된 적이 있었다.

(면접 1)

 면접관 : 탐정 씨, 탐정 씨는 3년 후, 5년 후, 10년 후 모습이 어떨 것 같습니까?

 나 : 저는 디지털 마케팅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제 이력을 쌓아 전문성을 기르고 싶습니다.

 면접관 : 그 모습에 우리 회사는 없습니까? 회사에서 임원이 되거나 그런 마음은 없어요?


(면접 2)

면접관 : 탐정 씨 우리 회사 CEO가 누굽니까?

나 : ㅇㅇㅇ씨입니다

면접관 : ㅇㅇㅇ씨? 회장님! 회장님 책 읽은 거 제목 좀 대봐요

나 : 네? 회사와 관련된 책은 읽었는데 회장님 책은 회장님이 쓰신 건가요?

면접관 : 면접 보러 온 자세가 안 돼있네? 회장님 책도 안 읽고 마음가짐도 안 잡고 오나?



 이런 질문들은 회사의 충성심을 먼저 보였어야 하는 질문이었다. 그 회사를 잘 알고 오래 다녔으며 그래서 여러 가지 고민 중에서 결국 선택한 것이 그 회사인 면접관이 이제 고작 면접에 와서 그 회사 사람을 처음 만나 본격적으로 탐색을 시작한 나에게 동일한 눈높이를 요구하는 건 좀 억울하다. 내가 이직을 하려고 한다고 해서 반드시 면접을 보는 회사에 회사 때문에 꼭 가고 싶은 것이 이직의 최우선 목표는 아니다. 경력 사원들에게 회사에 대한 로열티는 앞으로 입사를 하면 쌓아 나가야 하는 것이지 필수 장착하고 들어와야 하는 아이템도 아니다. 회사에 대한 충성도보다는 본인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으로 낯선 환경에서 잘 적응하겠다는 마음이 더 크다. 로열티의 근원이 다른 것이다. 하지만 몇몇 회사들은 '왔으면 말뚝을 박아야지?' 라거나 '우리가 1등인데 우리가 널 뽑으면 네가 복 받은 거 아니심?' 이런 태도로 면접에 임하는 면접관들이 있다. 물론 업계 1등이라는 자신감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1등이라는 자신감과 열정이 아니라 회사가 1등인 것을 자기가 1등이라고 생각하는 면접관들을 만나는 경우에는 마음이 복잡했다. '내가 일을 하면서 저 사람들에게 내 전문성을 존중받을 수 있을까' 혹은 '내가 이직을 하게 되면 일을 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아니면 '처음에 적응을 하려면 도대체 무슨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하는 걸까' 면접 후에도 생각이 많아졌다.




 또 한 가지는 전문성 측면이다. 회사에서 경력사원을 뽑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이다. 대체인력 확보, 갑자기 규모가 커져서 동일 업무의 양이 많아질 경우, 아니면 신사업이나 미개척 분야에 대한 전문가 확보.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나도 이전 회사의 사내공모로만 겪어 보았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세 번째의 경우가 대부분 나더러 면접을 보러 오라는 경우에 해당되니 그 부분에 집중해서 이야기하겠다. 회사에서 새로운 일을 할 사람을 뽑을 때 전문가를 뽑는다고 하는데 전문가는 무엇인가... 면접을 진행하면서 나도 회사를 고르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항목에 대한 질문들 때문이다.


 전문성을 평가하는 질문들은 극단적으로 두가지로 나뉘는데 한쪽은 '지식'을 물어보고 또 한쪽은 '경험'을 물어보는 것이다. 지식을 물어본 적은 나의 경우 디지털과 관련된 최근 이슈가 되는 단어들을 주루륵 늘어놓고는 설명을 해 보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또 한번은 디지털 마케팅과 관련한 구루(?)같은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주고는 이 사람들 가운데 아는 사람이 있느냐, 이 사람들이 주장하는바가 무엇이냐 등을 물어본 적도 있다. 같은 개념 (LBS-location based service)을 가지고 진행한 마케팅 케이스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었음에도 본인이 아는 용어가 아니라면서 (구현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지 LBS의 개념에서 마케팅을 진행한 것은 맞다.) 전문가는 아니시네요 하는 이야기도 들었다. 


 또 다른 쪽은 경험이 있는데, 그 경험에 대한 질문은 대부분 케이스를 물어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경우도 회사마다 후속 질문을 풀어가는 방향이 다른데, 케이스를 물어보면서 (대부분 성공한 이야기들을 인터뷰이들이 말 하지만) 케이스 자체에 집중하는 경우가 있고 케이스를 풀어가는 방법에 대한 질문으로 나뉜다. 예를 들면 케이스에 집중하는 쪽은 그 마케팅을 하기 위해서 에이전시를 누구를 썼는지, 어떤 기술을 썼는지, 돈이 얼마나 들었는 지, 그래서 성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를 물어본다. 케이스를 풀어가는 방법에 대하여 물어보는 쪽은 왜 그 케이스를 하기로 했는지, 에이전시를 썼다면 왜 에이전시를 쓰게 되었는지, 에이전시 선택 기준은 무엇이었는지, 성과 측정을 위하여 '성공'의 목표는 무엇이었는지, 수행하기 위해 나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한건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면접들을 보고, 또 회사를 옮기면서 나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전문성'이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충성도'에 있어서는 눈치껏, 상대방이 기대하는 답을 대충 맞춰 가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특히 그 자리나 회사가 내가 한 번 쯤은 가 보고 싶은 곳이라면 더 그랬던 것 같다. 내 마음이 원하는 답변을 못 하게 되었다면, 아... 이 회사에 가게 되면 이 부분은 포기해야겠다. 그렇게 일찍 마음을 정리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그리고 인터뷰어의 질문의 종류에 따라 나도 이 회사에서 일을 할 만한 환경인가 판단을 하게 되었다. 아울러 이렇게 '대화'형식으로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쯤에는 마지막에 '질문이 있어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 한 두가지 정도는 정말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면접을 보다가 이 회사는 되도 못 다닐 것 같다... 라는 판단이 서면 질문을 자제했다.) 이상적인 회사를 만나본 적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사람을 뽑을 기회가 왔을 때, '전문가'를 뽑아야 한다면 이 인터뷰들의 경험으로 질문을 꾸려나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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