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이 질문을 자주 받는 편인데, 그때마다 나는 오래전 직장선배와의 대화가 생각난다.
백오피스에서 일하던 예전, 선배와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던 도중, 오랫동안 고민하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당시에 하는 일이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점점 익숙하게 손에 익어가고 있었고,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싶었다. 앞으로의 경력을 어떤 식으로 디자인해야 할 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지만, 주변에 털어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나보다는 몇 년 더 앞선 사회 경험이 있는 선배의 의견이 궁금했고, 부서이동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한참 커피잔을 바라보던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었다.
안타깝지만 이미 백오피스로 경력이 쌓여서 프론트로 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대규모 공채로 입사해서 프런트에서 백까지 여러 부서를 거치는 순환근무가 있는 우리나라 기업과는 달리 외국계에서 수시채용으로 입사한 경우에는 부서 이동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 편은 아니었기에, 지금 생각해봐도 어느 정도 현실적인 답변이긴 했다. 사실 백오피스에서 프런트뿐만 아니라 프런트에서 백으로 가는 것도 쉬운 건 아니다. Generalist 보다는 Specialist로서, 부서별 전문성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강하기 때문이다. 선배의 이야기에 당시에 나는 살짝 주눅이 들었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경력보다 앞으로 쌓아갈 시간들이 더 많이 남아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만약 누군가가 지금의 나에게 똑같은 질문은 묻는다면 나는 불가능하다고 확신하기보다는, 쉽진 않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커리어 디자인은 운과 타이밍도 무시할 수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노력을 하면서 준비하고 있어야만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노력으로 부서이동 준비를 할 수 있을까.
1) 하고 싶은 일이 뾰족하고 뚜렷할수록 좋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왜? 하고 싶은지 이다. 왜 굳이 지금 잘하고 있는 분야, comfort zone을 벗어나고 싶은 걸까.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싶은가를 먼저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뭔지는 모르지만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그냥 시도하다가 막상 가보니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 원하는 일 인지 여부는 다른 사람이 아닌, 오롯이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단순히 재미있을 것 같아서,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서 같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조금 더 깊이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프론트 오피스 중에서도 여러 가지 업무가 있는데 각 업무별로 성격도 제각각이다. 왜 그토록 많은 자리들 중에서 나는 그 일이 하고 싶은지 뚜렷한 동기부여가 되어야 한다. 내가 나를 설득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 역시 설득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2) 직무전환은 지금 다니는 곳에서 하는 것이 유리하다.
회사 내 인트라넷을 보면 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구인공고가 있다. 직무전환을 위해 아예 회사를 이직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사실 회사 내에서 사내 이동을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지름길이다. 아예 전혀 다른 문화의 타 회사보다는 이미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익숙한 회사 내에서 부서이동을 하는 것이 나의 reputation을 증명하기도 비교적 쉬운 편이기 때문이다. 원하는 부서가 있다면 그 부서에서 공석이 났을 때 사내 이동을 지원하는 것이, 회사 외부에서 찾는 것보다 가능성이 높다.
3) 마이크로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어보기
상사가 시킨 주어진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도움이 되고, 가치를 제공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유리하다. 만약 프론트 오피스에서 관심 있는 부서일이 있다면, 내가 먼저 그 부서의 입장에서 필요한 자료가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나름대로 정리한 콘텐츠를 사람들과 나누는 것도 나의 존재감, 즉 visibility를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아주 작은 나만의 프로젝트지만 그렇게 조금씩 회사 내의 브랜딩을 쌓는 것이다. 특정 토픽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이 쪽 분야 전문가로 떠올릴 수 있는 go to person이 되는 것이 유리하다.
4) 업무공부는 실무지식 위주로
흔히 CFA, FRM 같은 자격증이 있어야 프런트 오피스로 갈 수 있지 않을까요 라고 질문하는데 공부라는 것은 꼭 자격증으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자격증이 있으면 물론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실무 지식이고, 이것은 굳이 자격증이 아니더라도 업계에서 쓰는 인터스트리 리포트를 읽어보거나, 뉴스, 잡지와 같은 매체를 통해서도 쌓을 수 있다. 면접 시에 질문이 오더라도 현재 마켓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것에 대해 나만의 의견을 녹인 인사이트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인사이트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꾸준하게 마켓 뉴스를 읽고 그를 바탕으로 한 아웃풋을 나름대로 발행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콘텐츠가 쌓이면 내가 기회를 쫒아가지 않아도 기회가 오히려 나를 찾아올 수 있다.
5) 회사 내부, 그리고 회사 외부에서 네트워킹
네트워킹은 정말 중요하다. 회사 내에서 전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 (예를 들면 브라운백 세션 같은 행사)에는 되도록 참여해서 부서 내뿐만 아니라 부서 밖에, 특히 내가 원하는 부서 사람들과 알고 지내는 것이 좋다. 만약 가고싶은 부서에서 이미 일하는 동료가 있다면 그와의 커피챗을 신청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하는지 알아가는 것도 좋다. 또한 나의 사내 부서 이동을 이해해주고 서포트해줄 수 있는 회사 내 선배, 스폰서가 있으면 더더욱 유리하다. 회사 밖에서는 업계 네트워킹 이벤트, 마켓 인사이트 포럼과 같은 행사들을 참여하면서, 업계 사람들과의 네트워킹을 형성하고, "나"라는 브랜드를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마케팅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가고싶은 부서가 있긴한데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고, 프론트 오피스에 아는 지인도 전무하다면 네트워킹 이전에 우리에겐 유튜브가 있다. A day in a life 시리즈라고 해서 금융계 회사에서 특정 부서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브이로그처럼 올라온 영상들이 수두룩하다. 또한 대학시절 전공이 꼭 금융관련이 아니라고 해서 주눅들 필요도 없다. 요즘에 diversity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글로벌 회사들은 다양한 배경의 후보자들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했던 방법들을 간단하게 적어봤는데 어떻게 부서이동을 하나요 라는 질문에 대해서 모범답안은 없는 것 같다. 개개인이 처한 상황이 다르고 회사마다 부서별 수요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주관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