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수많은 면접들을 마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질문들은 대체로 무난하게 예상하던 범위 내에서 나왔던 터라 술술 거침없이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중간에 나를 멈추게 한 질문이 하나 있었다.
그래서, 원하는 연봉은 얼마인가요? 그리고 왜 본인의 가치가 그 정도인지 이유를 말씀해보시겠어요?
직장인에게 연봉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이제는 그냥 아무 금액이나 상관없으니 일만 시켜주시면 무조건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패기 있게 외칠 수 있는 신입사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는 영리 조직이고 지원한 부서는 매출과 직결된 영업을 하는 포지션에 있기 때문에 숫자는 더욱 중요한 개념이기도 했고, 아무 금액이나 받아도 상관없다는 건 거짓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보통 연봉 문제는 대면 면접에서 드러내 놓고 흔히 이야기하는 주제가 아니라서 순간 당황했다. 그것도 범위도 아니고 정확하게 금액을 제시해보라고 하는 질문은 처음이었다. 보통 구체적인 연봉 이야기는 면접이 끝난 후에 실무진이 아닌 인사부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옛날에 <가을동화> 드라마에서 원빈이 하는 대사 "얼마면 돼"가 문득 생각났다. 내 눈앞에는 원빈이 아닌 임원 분이 앉아계신다는 차이가 있을 뿐. 숫자를 제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왜 그 숫자가 타당한지 이유를 대는 것도 논리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쉬운 질문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세일즈 포지션이기 때문에 협상력을 테스트하신 것 같기도 한데, 당시에는 솔직히 예상치 못했던 질문에 조금 놀랐다.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회사에서는 어느 정도의 수준을 제시할 수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여쭤보았지만, 그분은 그런 것 상관없이 지원자로서 원하는 수준이 궁금하다고 하셨다.
내가 회사에 가져올수 있는 가치들이 무엇인지 회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원하는 숫자를 무턱대고 이야기하기보단 왜 그 숫자가 타당한지 Why라는 질문이 핵심인 것 같았다. 협상은 win win 이어야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상대방 입장에서도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어야 한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부서의 목표를 이전의 경력들과 연결해서 이야기해나갔다. 어차피 커리어 스토리는 직접 겪은 경험에서 시작해야 했고 당시 나는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그동안 내가 이해하고 있던 마켓의 희망 연봉 수준을 이야기했다. 물론 협의가 가능하다고 끝에 덧붙이면서.
그 이후 최종 합격소식을 듣고 인사부와 본격적인 협상이 여러 번 오고 간 끝에 꽤 나쁘지 않은 수준으로 결정이 되었지만, 물론 100% 만족할 만큼은 아니었다. 그래도 앞으로 본격적으로 일 하면서 면접 때 말로만 표현한 나의 가치를 눈에 보이는 실적으로 증명해보고 성과급에 희망을 걸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오늘 승진 후의 연봉협상이 끝나고 공식 오퍼 레터를 받았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그날 면접 볼 때 떨리는 마음을 안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한 숫자를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노력이 떠오르면서 나의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뿌듯함과 함께, 동기부여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연봉은 사실 상대적인 개념이라 엄청난 금액을 받은 사람들 입장에선 별로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제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의미가 없음을 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수준에 따라가거나 혹은 무조건 많은 게 장땡이 아니라, 내가 만족할 수 있는 나만의 연봉 기준은 필요한 것 같다. 지난날의 나와비교해서 현재의 내가 이룬 성장과 변화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묵묵하게 하지만 단단하게 나만의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은 결과이기도 하니까.
몇 년 전 다이어리에 적어둔 목표가 이루어진 걸 보니 신기했다. 시크릿류의 책을 별로 믿는 편은 아니지만, 말하는 대로 쓰는 대로 이루어지는 건 꽤 근사한 일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치를 다른 사람이 인정한다는 것도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안겨주는 것 같다. 이제는 나의 다음 목표를 적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