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가 문득 외국계 거래처에서 한국사람으로 보이는 메일주소를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든다.
보통 성이 Kim, Park, Lee (사실 Lee는 중국계 사람들도 많이 있는 성이기 때문에 헷갈리긴 하지만) 인 경우인데, 아무튼 그렇게 눈에 익은 익숙한 성을 보면, 그리고 영어이름이 아닌 한국어 이름으로 된 메일주소를 보면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다른 회사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혹은 비록 메일 내용은 영어로 써 있다고 하더라도 반가운 마음에 활짝 웃는 이모티콘을 왕창 달아서 답변을 보내고 싶기도 하다. ^^
마치 망망대해를 표류하다가 반가운 고향사람을 본 듯한 느낌이랄까, 외국에서 일하는 외노자로서 왠지 공감대가 왠지 많을 것 같아 한국어로 수다 보따리를 풀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이름만 한국이름이고 교포여서 한국말을 아예 못하거나 서툰 경우도 있고, 거래처와 주고받는 메일이다보니 나중에 내용 증빙을 위해, 혹은 첨부된 다른 외국인 동료들을 위해 영어로 메일을 주고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을 꾹 누르고, 영어로 프로페셔널하게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답변을 보낸다. 사실은 앗, 저도 한국사람이에요, 그곳에서 지내시는 건 어떠세요라고 오지랖 넓게 말 걸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서 말이다.
현재 회사에서 팀 사람들은 다들 국적이 다양하고 팀에서 유일한 한국인은 나 혼자다. 물론 다양성을 포용하고 존중하는 국제적인 분위기에서 일하는 것이 장점도 있지만, 가끔 일에 치이거나 마음이 허전할 때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통할 듯한 초코파이같은(?) 고향사람인 한국동료가 그리울 때가 있다. 예전 회사에서는 부서가 다르더라도 한국분들이 몇 분 계셔서 한국사람들끼리 모여서 함께 점심이나 저녁으로 한식을 먹으러 가고 편하게 한국어로 수다타임을 갖기도 했다. 그때가 참 좋았는데, 한국사람들 사이에서 느낄수 있는 "정"이 그리운가 보다.
언젠가 본 드라마 <미생>에서 주인공 장그래를 챙겨주던 상사 오과장의 대사가 생각난다. "너 때문에 우리 애만 혼났잖아." 부하직원을 우리 애라고 감싸주다니 그 장면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비즈니스적으로 무미건조하게 이해관계에 의해서 모여있는 조직이라기 보다, 가족처럼 서로 챙겨주고 버팀목이 되어주는 든든한 상사가 있는 회사라니, 한국의 직장생활은 저런 곳인가. 아직 한번도 한국에서 일해본 적이 없어서, 그리고 드라마라서 현실과 차이가 있는 픽션일지도 있겠지만, 그런 따뜻한 인간미 있는 정이 느껴지는 곳이라니 부러웠다.
회사에서 하루종일 영어만 쓰다보면 긴장감있게 팽팽하게 당겨진 줄을 걷는듯 하다. 모국어가 아니다보니 혹시라도 내가 쓰는 단어나 문장에서 오해가 생길까봐 걱정되기도 하고 업무하다가 실수가 나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한국어를 쓰면 긴장감이 풀리고 편안한 우리집에서 엄마가 해준 따뜻한 집밥을 먹는듯한 느낌이 든다. 회사에서는 한국어로 말할 기회가 잘 없어서 점점 한국어가 퇴보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운 한국이 생각날 때마다, 그 마음을 달래려고 이렇게 한국어로 글을 쓴다.
한국어 이름이 담긴 거래처의 메일주소를 보면서 반가운 마음을 내색하진 못했지만, 문득 상대방도 그렇게 느끼실까 궁금해진다. 아마 개인적으로 갑자기 한국사람이냐고 반갑다고 업무내용과는 상관없는 한국어로 메일보내면 좀 이상한 푼수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코로나 시기를 보내고 있느라 한국이 너무 그리운가보다. 오랜만에 한국 사람을 이메일 주소로 만나서 말걸고 싶은 반가운 마음을 달래며 점심식사는 한식인 김치찌개로 정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