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요가를 배우던 시절, 나무토막처럼 뻣뻣한 몸을 풀어야 한다고 선생님께서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라고 하셨다. 긴장된 상태로 잔뜩 힘을 주고 있으면 자세가 전혀 나오지 않았는데 요즘엔 몸이 아닌 마음에서 그런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막상 원고를 쓰려고 하다 보니 자꾸만 힘이 들어가서 글이 더 안 써지는 것 같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쓰는 아무 말 대잔치의 글은 부담이 없는데 워드 파일에서 새하얀 화면 위에 커서가 깜빡이는 것을 보니 단어 하나를 쓰는 것이, 문장 하나로 말문을 여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일 줄이야.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이다. 며칠 동안 책상 앞에 앉아서 한참 동안 끙끙대다가 그만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설마 다시 슬럼프가 오려고 하는 것일까. 작년 한국에 방문하고 서점에 갔을 때 시간이 떠올랐다. 너무나 대단하게 보이던 작가님들, 그리고 빛나는 필력이 담긴 책들 사이에서 작가의 꿈에 한껏 부풀었던 나의 기대감이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 가운데서 나도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으로 바뀌어갔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은 것일까. 나에게 이것은 어떤 의미 또는 가치가 있는 것일까. 코칭 대화에서 나올법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조용히 마음속을 들여다보니 그냥 그저 그런 글을 쓰고 싶지 않은, 잘하고 싶은 마음이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읽는 사람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고 가치를 전하는 의미 있는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점점 눈덩이처럼 커져서 어느새 나의 어깨 위를 짓누르고 있는 듯하다. 이직을 한 이후 마음 상태와도 비슷하다. 빨리 적응해서 성과를 보여주고, 나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고작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조급해지고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는 내가 너무 느린 것 같아서 답답함이 올라오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제 지인으로부터 용기 한 스푼이 담긴 따뜻한 말을 들었다. 뻣뻣한 자세로 낑낑대는 나에게 힘을 빼도 된다고 부드럽게 말씀해주시는 요가선생님처럼- 그분은 나에게 충분히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당연히 해낼 것이라는 다정함이 담긴 격려를 건네주셨다. 동공지진을 겪으며 흔들리고 있는 상태에서 나보다 더 큰 확신을 담은 따뜻한 말 한마디에 다시 힘을 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자주 있는 흐물흐물한 두부를 닮은 듯한 멘탈의 소유자이기도 하지만 목표나 계획하는 일이 있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떻게든 해내고야 마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면서 지나치면 스스로를 짓누르는 부담감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어깨 위에서 묵직하게 자리 잡은 부담감이 빨리 달리고 싶은 나의 마음과는 정반대의 속도로 발끝에서 대롱대롱 매달린채 질질 끌려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때일수록 천천히 나만의 리듬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도달하고 싶은 상태가 100%라고 하면 아직 1%에 머무른 현재 상태에서 마음이 자꾸 급해지는 게 당연하니까. 원고를 당장 완성해야 하는 것이 아니니까, 오늘 내가 쓸 수 있는 딱 한 페이지만 생각을 집중해야겠다. 그래서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한시간만 집중해서 쓰는 것이다. 너무 멀리 보지 않고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단기 목표로 정해야지만 길게 봤을 때 지치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새로운 도전들 앞에서 너무 긴장하거나 잘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토닥여주는 것, 그리고 힘을 빼는 연습을 하는 것이 필요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