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없는 것 같았던 것을 해냈을 때
"네? 제가요?"
요즘 외부 연사로 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요청받은 패널 주제와 연사 리스트를 보고 상사님께 되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함께 서는 패널 리스트들이 모두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유명한 분들이었다. 이제까지 했던 모든 자리들에서도 멋진 분들이 많았지만, 이번만큼은 조금은 부담이 되었다. 연사 중 한 분은 활발한 활동 덕분에 미디어에서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분이었고 다른 분은 유명 빅 테크 기업 출신이었다. 과연 내가 감히 그런 분들과 나란히 서서 업계에 대한 지식을 나누고, 산업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란 잠시 망설여졌는데 상사님은 고민하던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말을 이어가신다.
"괜찮아. 업계 전문가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으니까 자신감을 가져."
매번이 나에겐 도전이자 의미 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서 주어지는 기회들이 어렵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영원히 알 수 없는 세계이기 때문에 최대한 모든 자리들을 수락했다. 아무리 화술 관련 수업을 듣는다고 해도 결국엔 실전으로 부딪히지 않으면 소용없는 지식이기에 많은 연습들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수락하고 나서부터 였다. 매번 짧은 시간 내에 준비를 하느라 피 말리는 공부를 거쳐야 했다.
마치 시험 전에 벼락치기를 하듯,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주제에 대해서 다각도로 분석해보고 원고를 준비해야 한다. 바로 전날까지도 밤늦게까지 공부하면서 이걸 왜 한다고 해서 사서 고생인가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미 내공이 보통이 아니신 상사에 비해 아직 병아리 수준인 나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그래도 떨리는 무대에서 자신감 있게 이야기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바탕화면에 설정한 나의 공부 폴더에 점점 저장한 자료들이 많아지고 있다. 쌓여가는 리서치 자료들 속에는 방대한 데이터들이 한가득이다. 시간은 없고, 알아야할 것들은 많아서 그냥 읽는 즉시 머릿속에 외워졌음 좋겠는데 하루종일 일하고 나서 퇴근한 이후에 하는 공부는 만만치 않다. 자료를 읽고 나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준비한 원고를 아무리 읽고 또 읽어봐도 항상 부족하단 생각이 든다. 내가 혼자서 리드하는 기조연설보다 패널토론은 대화식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흐름이 자연스러워야 해서 아무리 사전 준비를 한들 100% 완벽하게 모든 돌발 질문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에 참여한 시간이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패널 토론은 그럭저럭 넘어갔는데 쏟아지는 방청객 질문들 중에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그래서 대답하기에 어려운 질문들이 꽤 많았다. 그래서 답변을 하는 와중에도 생각을 정리하느라 떠듬거리게 되었다. 겉으로는 표정관리를 하고 있었지만 내 모습이 바보같이 느껴져서 마음 속에서는 비명이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방청객들이 왠지 나를 비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은땀이 나던 돌발질문들과 긴장되는 시간이 끝나고 나니 다행이다란 생각보다는 깔끔하고 만족스럽게 발언하지 못한 스스로의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난 언제쯤이면 말을 잘할 수 있을까?"
행사가 끝나고 나서 한숨이 푹푹 나오는 가운데,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뛰어난 화술과 유머러스한 진행 실력 덕분에 자주 무대에 서는 친구였다. 말을 잘하는 능력이 필요한 요즘, 친구에게 가끔 조언을 구하곤 하는데, 그는 시무룩한 나에게 뜻밖에 답변을 했다. 쉽지 않은 무대에 서서 해낸 것을 축하한다고 말이다. 결국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고, 말을 잘하기 위한 비법은 다른게 아니라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연습보다 중요한건 예전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들에 도전하고 해낸 나 자신을 칭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나를 비난한 적이 없는데 내가 스스로 설정한 기대치를 맞추지 못했다고 앞장서서 나를 꾸짖을 필요는 없다. 매 순간이 배움의 기회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연습을 이어가야겠다. 지금은 비록 떠듬거리고 서툰 모습이지만, 공부 폴더에 쌓아가는 자료들이 하나둘씩 쌓여가는 만큼, 내공도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단단해지겠지.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반성하는 대신 조금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어제의 나를 칭찬해줘야겠다.
"괜찮아! 다음에 더 잘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