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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보다 멀티플레이어가 더 필요하다

한 번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면서 “자신의 고용 안정성을 높이고 가치를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가장 많이 나온 의견은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었다.

많은 직장인들이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자신이 맡고 있는 직무와 관련한 책을 읽고,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딴다. 어떤 직장인들은 아예 직장을 휴직하거나 퇴사한 뒤 관련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도 한다. 이처럼 자기계발에 대한 직원들의 관심이 커지자 기업들도 직원들의 자기계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이 직장인들이 고용 안정성을 높이고 자기 가치를 키우는 유일한 방법일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물론 있다. 어쩌면 이것이 더 빠르고 손쉬운 방법일지도 모른다. 바로 멀티플레이어가 되는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전문가를 원한다. 깊이 있는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전문적 식견을 갖춘 전문가를 선호한다. 이 때문에 직장인들이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면 웬만한 경기침체의 한파가 불어닥쳐도 직장을 잃어버릴까 염려할 필요가 없다. 특히 탁월한 역량을 탑재한 전문가가 되면 평범한 직장인들보다 몸값이 몇 배, 심지어는 몇 십 배가 높아진다. 이렇게 높은 연봉의 안정적 직장이 보장되기 때문에 직장인들이 너도나도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다.

문제는 전문성을 쉽게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가 되려면 무엇보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석박사 과정을 밟거나 자격증을 따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석박사 과정이 끝난 뒤에도 대학에 남거나 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해당분야의 공부를 계속하기도 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공부를 해야 전문가 반열에 오를 수 있으니 직장인들이 전문가의 꿈을 이루기가 어렵다. 게다가 직장에서 전문가는 수요가 많지 않다. 모든 사람이 박사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일을 하는 과정에서 전문가가 한두 명 있으면 된다. 

직장에서 정작 필요한 사람은 이것저것 두루 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다. 각 분야에 전문가를 모두 고용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방면에서 웬만큼 역할을 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가 각광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를 테면 여행사에서 여행상품 기획을 담당하는 어떤 직원이 영어회화를 하고 소형버스를 운전할 수 있다면 그는 매우 중요한 직원으로 대접을 받게 된다. 그의 기본 직무는 여행상품 기획이지만, 가끔씩 걸려오는 외국인들의 전화문의를 응대할 수 있고 일주일에 한두 번 공항에 내리는 손님을 소형버스에 태워 호텔에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없다면 회사는 영어 회화를 할 수 있는 직원을 뽑아야 하고 버스 운전기사를 고용해야 한다. 작은 회사에서 역할이 많지 않은 사람을 고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1인 3역을 할 수 있는 이 직원은 매우 중요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자신이 주로 하는 직무 외에 다른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면 그의 직장 내 위상은 높아지게 된다. 고용이 안정되는 것은 물론이고 가치까지 뛰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멀티플레이어가 되는 것은 자신의 직무와 관련된 전문성을 키우는 것보다 훨씬 적은 노력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길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직원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키우는 것 이상으로 멀티플레이어 능력을 갖추는 것을 적극 권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직원들이 혼자서 여러 역할을 수행하면 업무효율이 높아질 뿐 아니라 회사의 비용절감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기업이나 직장인들이 자기계발을 너무 전문성 강화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회사와 직원들의 작은 노력으로 회사의 생산성과 직원의 가치를 높일 수 있고, 그래서 직원들의 고용 안정성을 강화할 수 있는데 너무 어려운 전문성 강화에만 관심을 두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멀티플레이어가 되려면 회사와 직원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직원들의 능력을 평가하고 계발할 수 있는 도구와 환경, 그리고 기회를 제공하는 책임은 회사에 있다. 그러나 자신의 경력을 관리하는 것, 특히 경력관리가 회사의 목표에 부응하도록 하는 것은 전적으로 직원의 몫이다. 회사와 직원의 노력이 일치할 때 회사는 생산성을 높여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고 직원들은 취업능력을 키워 갈수록 매서워지는 고용한파를 견뎌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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